홍설작가 「무애(Caress)」
삶은 끝없는 접촉의 연속
[KtN 박준식기자]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접촉과 관계의 형성으로 이루어진다. 타인과의 만남, 환경과의 조우, 사소한 스침까지도 우리 존재를 구성하는 흔적이 된다. 홍설작가의 작품 「무애(Caress)」는 이 복잡한 관계의 과정을 하나의 유기적 덩어리로 시각화한다.
화면 속 둥근 구체들은 얼핏 세포나 분자 구조를 닮았다. 그러나 과학적 재현이 아니라 관계의 은유다. 구체들은 서로 맞닿으며 응집하고, 이탈하며 흩어진다. 질서 없이 모였다 흩어지는 과정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경험하는 관계의 불규칙성과 닮아 있다. 제목의 ‘무애’는 애무와 무시라는 상반된 감각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며, 관계의 양면성을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형상: 불규칙한 구체의 집합
작품의 중심에는 수십 개의 구체가 모여 있다. 각 구체는 매끈한 표면 위에 미세한 돌기를 품고 있어 촉각적 긴장을 유발한다. 구체들은 크기와 색의 농도, 표면의 질감이 모두 제각각 달라, 화면 전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구체들이 맞닿은 부분은 붉게 물들어 있다. 이 붉음은 접촉의 흔적이며 관계가 남긴 상호작용의 흔적이다. 붉음은 때로는 따뜻한 교감처럼, 때로는 상처나 자극처럼 읽힌다. 홍설은 관람자가 그 불명확한 지점을 각자의 경험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색채와 감각: 회색의 중립, 붉음의 감정
작품은 차가운 회색조를 배경으로 한다. 회색은 관계의 무수한 가능성과 중립성을 상징한다. 그 위에 덧입혀진 붉은 흔적은 감정의 순간을 강렬하게 부각한다.
회색은 일상의 표면이고, 붉음은 그 위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색채의 대비는 감정의 양가성을 드러낸다. 붉음은 애무일 수도 있고, 무시일 수도 있다. 애무는 따뜻한 교감을 의미하고, 무시는 차가운 단절을 의미한다. 두 감정은 언제나 겹쳐 존재한다. 작품은 그 복잡한 감정의 층위를 하나의 표면 위에 동시에 새겨낸다.
철학적 층위: 관계는 애무이자 무시다
홍설작가의 「무애」는 관계의 본질이 언제나 상호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우리는 타인과의 접촉 속에서 친밀감을 얻기도 하고, 동시에 무관심과 단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고, 끊임없는 교차와 상호작용 속에서 성립한다.
구체들의 집합은 이 상호성을 시각적으로 은유한다. 어떤 구체는 깊게 결합하고, 어떤 구체는 가볍게 스치며 지나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지고, 또 다른 형태가 해체된다. 결국 삶은 이 불규칙한 접촉의 기록이 켜켜이 쌓여 하나의 형태로 완성되는 과정이다.
동시대 미술과의 접점
「무애」는 동시대 미술의 주요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199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은 관계와 상호작용 자체를 예술의 핵심 주제로 삼아왔다. 홍설의 구체적 형상들은 비록 회화적 이미지이지만, 관계의 구조와 본질을 은유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화면 속 구체들은 세포나 분자 구조를 연상시키지만, 단순히 과학적 재현에 머물지 않고 인간 경험과 감정의 은유로 전환된다. 이는 최근 미술에서 생명과학적 이미지가 심리적·사회적 문제와 교차하는 경향과도 맞닿아 있다.
작품은 구체적 이야기를 제시하지 않지만, 추상적 형상과 색채의 대비를 통해 관람자에게 감정적 경험을 직접적으로 환기한다.
해석의 여백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은유적 모호함에 있다. 구체들은 명확한 이름을 갖지 않지만, 그 형상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구체적 생명체 같기도 하고, 무기물적 구조 같기도 하다. 이 애매함은 오히려 해석의 여백을 넓힌다.
회색과 붉음의 대비는 교감과 단절, 애무와 무시라는 감정의 양가성을 드러낸다. 관람자는 자신의 경험을 투사하며 작품을 각기 다른 언어로 읽는다. 그 결과, 작품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다층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표면에 남겨진 붉은 흔적은 육체가 감정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인간의 몸이 감정을 기록하듯, 화면 속 구체들도 접촉의 흔적을 지닌다.
반복의 가능성
그러나 이 작품의 형식은 반복될 경우 관습화될 수 있다. 구체와 붉은 흔적의 결합은 강렬한 은유지만, 과도하게 사용되면 상징의 신선함이 퇴색할 수 있다. 향후에는 새로운 색채나 구도의 실험을 통해 문법을 확장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K-ART와의 접속: 감정과 관계의 한국적 해석
한국 현대미술은 오랫동안 단색화의 절제와 비움의 미학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세대의 작가들은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언어로 관계와 감정을 탐구한다. 홍설의 「무애」는 바로 이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하다.
작품에는 한국 사회 특유의 정서가 스며 있다. 개인의 영역과 집단의 경계, 친밀함과 단절의 교차는 한국 사회의 복잡한 관계망을 반영한다. 동시에 보편적 감정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어, 국제적인 공감대 역시 확보한다. 세계 미술계가 K-ART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보편성과 특수성의 교차다.
관계라는 덩어리
「무애(Caress)」는 삶의 본질이 곧 관계의 덩어리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타인과 끊임없이 접촉하며, 과정에서 친밀함과 단절을 동시에 경험한다. 삶은 불규칙한 접촉의 흔적이 쌓여 하나의 형태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홍설작가는 구체적 형상과 붉은 흔적을 통해 감정과 관계의 본질을 시각화했다. 작품은 관계의 복잡성과 상호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감정의 기록이 어떻게 형태로 남는지를 보여준다. 관계는 언제나 애무와 무시를 동시에 품고 있으며, 이중적 경험이 모여 인간 존재를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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