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설작가 「존재의 시작(The Threshold of Being)」
기억할 수 없는 기억, 예술로 환기하다

홍설작가 「존재의 시작(The Threshold of Being)」기억할 수 없는 기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설작가 「존재의 시작(The Threshold of Being)」기억할 수 없는 기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지만, 태어나는 순간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출생의 경험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사건이지만, 언어 이전의 경험이기에 기억으로는 남지 않는다. 바로 그 ‘잃어버린 기억’을 시각화하려는 시도가 홍설작가의 작품 「존재의 시작(The Threshold of Being)」이다.

작품은 탄생 직전의 문턱을 형상화한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하나가 현실로 선택되고, 그 선택이 ‘나’라는 존재로 연결되는 찰나를 그려낸다. 화면은 단순히 생물학적 장면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능성과 현실, 잠재성과 존재 사이의 긴장을 조형적으로 번역한다. 그 결과 작품은 생명의 기원을 개인적 기억과 철학적 사유로 확장하는 장치가 된다.

화면 구성: 문, 자궁, 방, 구슬

작품의 화면은 구조적으로 명확하다. 가장자리에는 아치 형태의 윤곽이 자리하여 전체 이미지를 포털처럼 보이게 한다. 이 포털은 내부와 외부, 미지와 현실을 구분하면서도 연결하는 장치다.

아치 내부의 상부에는 보랏빛 주름 조직과 그 위를 따라 이어지는 연둣빛 구슬 군집이 자리한다. 구슬들은 동일한 패턴을 따르지만 크기와 간격의 차이를 지녀 무수한 가능성을 상징한다. 좌우로는 암실 같은 공간이 펼쳐지며, 미세한 소용돌이 패턴이 깊이를 만든다. 각 암실의 바닥에는 하나의 구슬이 놓여 있어, 상부의 다중 가능성과 대칭적 관계를 이룬다.

가장 중심부에는 열쇠구멍 같은 통로가 뚫려 있으며, 그 안쪽에 둥근 방이 자리한다. 방의 내부에서는 밝은 원형이 스스로 발광하며 맥동하는데, 그 중심에서 방사형으로 뻗어나오는 싹은 존재가 시작되는 최초의 흔적을 암시한다.

전체 구조는 자궁이자 문이다. 우리 모두가 지나왔으나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탄생의 순간을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셈이다.

색채의 질서: 푸른 심연과 연둣빛의 점화

홍설작가는 색채를 감정과 생명의 언어로 활용해 왔다. 붉음은 본능과 열정을, 푸름은 고요와 무의식을 상징한다는 작가의 체계가 이미 확립되어 있는데 , 이번 작품에서는 그 스펙트럼을 푸른 계열로 집중시켰다.

화면 전체는 청색과 남청이 지배하며, 깊고 차가운 울림을 낸다. 이 배경 위로 연둣빛이 구슬 형태로 점멸하는데, 이는 가능성이 현실로 선택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중앙 방사의 싹은 하얀빛과 연둣빛의 혼합으로 처리되어, 화면의 에너지를 집약한다.

표면은 매끈하고 그라데이션은 섬세하여, 색의 경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좌우 암실은 미세한 텍스처로 심연 같은 깊이를 확보했고, 구슬의 하이라이트는 작은 렌즈처럼 주변의 색을 반사한다. 청색의 차가움과 연둣빛의 점화가 만들어내는 긴장은 작품을 안정적이면서도 긴장감 있는 상태로 유지시킨다.

도상의 상징: 구슬, 암실, 방사

작품 속 도상은 간단하지만 상징성은 깊다. 상부의 구슬 군집은 가능성을 의미하며, 통계적 우연과 필연의 얽힘 속에서 태어나는 생명의 조건을 드러낸다. 좌우 암실의 고독한 구슬은 다수 속에서 선택된 단일성을 상징한다. 중앙의 방사형 싹은 현실로 발화하는 존재의 순간을 표현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 요소가 서로 다른 층위에 있지만 같은 계열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즉, 가능성의 구슬, 선택된 구슬, 존재로 발화한 싹은 모두 같은 물질적 기호의 변주다. 홍설은 이를 통해 생명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가능성에서 현실로

작품은 잠재성에서 현실성으로의 이행을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잠재태와 현실태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데, 수많은 가능성 중 단 하나가 현실로 전화되는 순간이 바로 화면의 중심이다.

상부의 구슬 군집에서 하나가 선택되고, 그 선택이 통로를 거쳐 방사형으로 발화한다. 이는 탄생의 과정이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을 넘어 존재론적 사건임을 암시한다.

몸의 기억과 현상학

이 작품은 또한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사유와도 연결된다. 인간은 세계를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몸으로 먼저 경험한다. 작품 속 아치 구조, 곡선 통로, 구슬의 광택, 암실의 소용돌이는 관람자의 촉각적 기억을 자극한다.

관람자는 화면을 멀리서 볼 때 포털의 기하학적 질서를 인식하고, 가까이 다가서면 구슬의 질감과 암실의 미세한 패턴을 따라가며 몸으로 반응한다. 이때 경험되는 것은 단순한 시각 정보가 아니라 촉각적 이미지다. 이는 작가가 관람자가 자신의 감정을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려 한다는 입장과도 이어진다 .

홍설작가 「존재의 시작(The Threshold of Being)」기억할 수 없는 기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설작가 「존재의 시작(The Threshold of Being)」기억할 수 없는 기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동시대 미술 트렌드

최근 미술계에는 생명과학의 언어를 차용하는 ‘뉴 바이오 아트’ 흐름이 부상했다. 세포, DNA, 미생물, 장기 등을 예술로 번역하는 작업들이 등장했지만, 홍설은 과학적 정밀함보다는 정서적 은유로 접근한다. 회화라는 매체 안에서 생물학적 기호를 보편적 감정의 언어로 전환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팬데믹 이후 미술이 ‘정서적 전환’을 겪으면서, 관람자가 예술에서 치유와 몰입을 찾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이 작품은 과격한 서사를 거부하고, 안정된 리듬과 명료한 구조로 관람자의 호흡을 맞추는 공간이 된다.

구조적 명료성

작품은 포털–통로–핵이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구조를 통해 시선의 흐름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화면의 중심으로 이끌린다.

상징 체계의 일관성

색채와 도상은 작가가 밝힌 상징 체계와 충돌하지 않으며, 기존 작업군과의 연속성을 확보한다 .

과장 없는 서정성

출산이나 생식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탄생의 사건을 담담하게 환기한다. 해석의 여백을 남기는 태도는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

상징의 고정화 위험

열쇠구멍, 구슬, 방사 구조가 지나치게 명료해 반복될 경우 도상이 관습화될 가능성이 있다.

도상의 익숙함

세포·수정·자궁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동시대 시각문화에서 널리 소비된 만큼, 작품 고유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 갱신이 필요하다.

색조의 균질성

차갑고 안정된 청색 톤은 장점이지만, 전시 단위에서 동일 톤이 누적되면 장면 간 긴장이 약화될 수 있다. 명도·채도의 변화를 통한 다이내믹 조정이 요구된다.

 

KtN 리포트

홍설작가의 「존재의 시작」은 잠재성에서 현실성으로 넘어가는 문턱을 시각적으로 응축한 작업이다. 포털과 구슬, 방사형 싹의 명료한 조형 질서는 감각적 몰입을 이끌고, 푸른 심연과 연둣빛의 대비는 긴장과 안정의 균형을 만든다. 작가는 과장된 서사나 과도한 사실주의를 피하면서 탄생의 사건을 보편적 기호로 환원한다.

상징의 반복 가능성과 색조의 균질성은 향후 연작 전개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지만, 구조적 명료성과 해석 여백의 균형은 장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생명과 존재의 문제를 회화적 언어로 풀어내려는 홍설의 일관된 태도는 이번 작품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