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과 도약이 공존하는 풍경
정체된 내수, 가속하는 해외

최휘영 문체부 장관, 이현세 등 창작자·업계 관계자와 간담회.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최휘영 문체부 장관, 이현세 등 창작자·업계 관계자와 간담회.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2025년 1분기 한국 콘텐츠 산업의 성적표는 이중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으나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오히려 줄어들었다. 반면 해외 수출은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새로운 고지를 열었다. 국내 소비 기반은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세계 시장에서는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산업별로도 흐름이 갈린다. 음악,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영화와 게임, 출판은 뒷걸음질쳤다. 방송과 영상은 내수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으나 수출에서 압도적인 성장률을 기록하며 주목을 끌었다. 산업 구조가 안으로는 움츠러들고 밖으로는 팽창하는 모순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경기 변동이나 계절적 요인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국내 소비의 포화, 세대별 취향의 급격한 전환, 글로벌 플랫폼 중심의 생태계 변화가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산업 전반에 균열과 도약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내수 소비의 둔화

올해 1분기 영화 매출은 전년 대비 9.8퍼센트 감소했고, 게임은 8.3퍼센트 줄었다. 출판 역시 미미하게 하락했다. 전통적으로 국내 기반이 강했던 산업들이 동반 부진을 겪으면서 내수 시장의 활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구독경제가 이미 일상에 자리 잡으면서 더 이상 가입자 확장이 어렵고, 경기 둔화와 생활비 부담은 여가 지출을 압박했다. 문화 소비가 지갑에서 후순위로 밀린 것이다.

영화 산업은 팬데믹 이후 극장 관객 수가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OTT 플랫폼 시청이 보편화되면서 극장 기반의 수요는 구조적으로 줄었고, 블록버스터 중심의 제작 관행은 제작비 부담을 키워 산업 내 균형을 무너뜨렸다. 게임 역시 이용자층 고령화와 규제, 해외 판호 문제 등이 겹치며 활력을 잃고 있다.

영화 한 편 ‘천 원’ 시대…문체부, 6000원 할인권 450만 장 푼다  사진=2025 07.23  용산 cgv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화 한 편 ‘천 원’ 시대…문체부, 6000원 할인권 450만 장 푼다  사진=2025 07.23  용산 cgv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해외 시장의 확장

수출은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 올해 1분기 콘텐츠 수출은 전년보다 18.8퍼센트 늘어났다. 게임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며 여전히 주력 산업으로 자리했고, 음악과 방송·영상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했다.

게임은 북미, 동남아, 유럽 등에서 꾸준히 점유율을 유지하며 내수 침체를 상쇄했다. 음악은 신인 그룹의 해외 성과와 더불어 버추얼 아이돌, 인공지능 음악 제작 같은 새로운 실험이 부가적 성장을 이끌었다. 방송과 영상은 글로벌 OTT 플랫폼을 매개로 드라마와 예능 포맷이 대거 수출되며 159퍼센트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 콘텐츠가 단발적인 한류 특수를 넘어 세계 콘텐츠 시장의 주요 공급자로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 트렌드가 드러내는 명암

최근 흐름은 산업의 성격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세계 시장에서의 성과는 한국 콘텐츠가 지닌 확장성과 문화적 매력을 입증한다. 음악과 영상이 국경을 넘어 팬덤을 형성하며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내고, 인공지능 기술은 제작 효율을 높여 산업의 비용 구조를 바꾸고 있다. 증시에서도 콘텐츠 상장사가 불황 속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며 다른 업종의 부진을 완화했다.

그러나 내수 기반의 약화는 생태계의 내부 순환을 흔들고 있다. 영화와 게임처럼 오랫동안 주력 산업이었던 분야가 신흥 세대의 취향 변화와 제도적 제약을 극복하지 못하며 하락세에 놓였다. 인공지능의 확산은 효율성을 높이지만 고용 창출 효과를 제한해 성장의 사회적 파급력을 약화시켰다. 무엇보다 글로벌 OTT 종속이 심화되면서 판권과 수익 배분에서 국내 기업의 협상력이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가 뚜렷해졌다.

2025 K-엑스포.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5 K-엑스포.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제적 함의와 구조적 과제

이번 분기의 성적표는 한국 경제 전반에 중요한 의미를 던진다.

산업 구조 측면에서 콘텐츠는 한국의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도체와 제조업이 둔화되는 국면에서 콘텐츠가 증시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고용 창출 효과가 낮아 ‘성장은 있지만 일자리는 없는’ 산업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 사회적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고 산업 성장의 공공적 정당성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거시경제적으로는 산업 다변화라는 의미가 있다. 전통 제조업 중심의 수출 구조에서 벗어나 문화 산업이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는 것은 경제 안정성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내수 침체가 길어질 경우, 산업 내부의 투자 선순환이 막히고 창작 역량의 장기 지속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해외 성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는 글로벌 경기 변동이나 플랫폼 정책 변화에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정책적 차원에서는 보다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수출 지원에 집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내수 소비를 진작시킬 새로운 정책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노동 구조 변화를 관리할 전환 교육과 안전망 강화도 요구된다. 글로벌 OTT 의존도를 줄이고 자국 플랫폼과 지식재산권 관리 역량을 키우는 전략이 병행돼야 산업의 장기적 균형이 확보된다.

반쪽 성장을 넘어 균형으로

한국 콘텐츠 산업은 2025년 1분기에 분명한 성과를 거두었다. 세계가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 게임을 즐기며 수출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소비 기반은 정체돼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는 지금의 구조는 글로벌 환경 변화에 따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내수 기반이 취약하면 창작 역량과 혁신 지속력이 떨어지고, 고용 창출이 제한되면 산업 성장에 대한 사회적 지지도 약해질 수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해외에서의 확장을 이어가되 국내 시장을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효율성 향상을 넘어 고용과 사회적 파급력을 함께 고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글로벌 플랫폼 의존을 줄이고 자국 생태계를 강화하는 노력도 절실하다.

수출만을 동력으로 삼는 성장은 반쪽에 그친다. 내수와 수출, 효율성과 고용이 함께 어우러질 때 한국 콘텐츠 산업은 비로소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미래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