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등 12개 품목 역대 최대…해담의 프랑스 샘플·베트남 상담에서 계약·재주문까지
[KtN 박준식기자] 2025년 한국 농식품 수출액이 104억1000만달러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어섰다. 라면은 단일 품목 가운데 처음 15억달러를 돌파했고, 조제품 기타와 소스류, 김치, 아이스크림, 포도, 딸기 등 모두 12개 품목이 역대 최대 수출액을 기록했다. 2026년 상반기 농식품 수출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5.0% 늘어난 53억8000만달러로 최고치를 다시 썼다.
수출 실적이 커지는 속도와 지역 식품기업이 해외 매출을 만드는 속도는 같지 않다. 바이어가 관심을 표시하고 제품 샘플을 받아보는 단계부터 현지에서 판매가 이뤄지기까지 성분검사와 제품 등록, 가격 협상, 포장 변경, 국제운송과 통관이 이어진다. 첫 물량이 현지 매장에 들어간 뒤 다시 주문이 들어와야 수출은 일회성 거래에서 반복 매출로 넘어간다.
엄수현 ㈜해담 대표는 프랑스와 관련한 제품 설명이 나오자 판매 여부부터 바로잡았다.
“프랑스에서 판매된 것은 아니고 샘플만 전달했습니다.”
프랑스 측 관계자가 홍배즙을 시음한 뒤 관심을 보였지만 현지 판매로 이어진 단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해담은 베트남을 비롯한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홍삼과 한방식품 관련 문의를 받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판판면세점에서는 대추홍삼절편을 외국인 관광객에게 판매하고 있다. 샘플 전달과 바이어 문의, 공항 판매가 각각 해외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이지만 정식 수출 매출과는 구분된다.
라면이 넓힌 시장, 건강식품에는 다른 진입 조건
2025년 라면 수출액은 15억2140만달러로 전년보다 21.9% 증가했다. 건강기능식품 등이 포함된 ‘조제품 기타’는 7억4480만달러로 9.5%, 소스류는 4억1190만달러로 4.6% 늘었다. 농식품 수출이 라면 한 품목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 유통망과 반복 구매 기반을 먼저 갖춘 제품이 성장세를 주도한 흐름은 수치에서 읽힌다.
라면은 제품의 성격과 조리법을 전달하기 쉽다. 가격대가 비교적 낮고 한 번 소비한 뒤 같은 상품을 다시 고르기도 수월하다. 현지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몰에 판매망이 구축되면 소비자는 한국을 방문하지 않고도 반복해서 구매할 수 있다.
홍삼절편과 한방 음료는 다른 경로를 거친다. 홍삼과 대추, 지황 같은 원료가 현지 소비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경우 제품의 맛과 섭취 방식부터 설명해야 한다. 일반 식품인지 별도의 기능성·보충제 기준을 적용받는지도 수입국 제도에 따라 달라진다. 국내에서 사용한 상품 설명과 포장 문구를 그대로 옮기기 어려운 이유다.
해담의 대추홍삼절편은 인천공항에서 제품을 직접 보고 구입하는 관광객을 만났다. 홍삼 형태가 남아 있어 원료를 알아보기 쉽고, 포장을 열어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점도 공항 판매와 맞물렸다. 해외 수출에서는 제품을 직접 설명하는 판매자가 없는 상태에서도 포장과 상품 정보만으로 원료와 섭취법을 전달해야 한다.
공항에서 판매된 제품이 관광객의 여행가방에 담기는 것과 현지 유통업체를 통해 매장에 입점하는 것은 서로 다른 사업이다. 공항 판매는 국내에서 가격과 포장에 대한 외국인 반응을 접할 수 있지만, 현지 시장에서는 수입업체와 유통업체의 가격 조건, 국가별 표시 기준, 소비자의 반복 구매까지 통과해야 한다.
문의 뒤에 붙는 검사·등록·포장 비용
해외 바이어가 관심을 보이면 식품기업은 샘플 제작과 국제배송부터 시작한다. 상담이 구체화되면 영양성분과 원재료 검토, 수입국 제품 등록, 현지어 표시와 포장 변경이 이어진다. 계약 이후에는 수출용 생산과 국내 운송, 국제물류, 통관 비용이 붙는다. 현지 수입업체와 유통업체의 마진까지 반영하면 국내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수출 공급가격을 정하기도 어렵다.
농식품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현지화 지원사업도 수입등록·검사, 라벨링 현지화, 전문기관 자문, 해외 지식재산권 보호를 각각 별도 항목으로 두고 있다. 수출기업 상담 분야 역시 위생·검역, 해외 인증, 계약·분쟁, 외환·환위험, 물류·운송 등으로 나뉜다. 제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영업비보다 규정 대응과 행정·물류비가 먼저 발생하는 구조를 반영한 것이다.
라벨 변경은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머물지 않는다. 영양성분 표시 순서와 단위, 알레르기 유발 성분, 제품 전면에 사용할 수 있는 표현, 별도 식품검사 여부를 수입국 규정에 맞춰 다시 구성해야 한다.
홍삼과 한방 원료를 사용한 제품은 건강과 관련한 설명도 조정해야 한다. 국내 소비자에게 익숙한 한방 원료의 이미지나 제품 개발 배경이 해외 광고와 포장에서 같은 문구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수입국에서 인정하는 식품 유형과 표시 범위 안에서 원료와 제품 특성을 다시 설명해야 한다.
한 국가를 위해 포장을 별도로 제작하면 생산 단위도 달라진다. 바이어가 요구한 최소 주문수량이 적으면 포장 제작과 검사 비용을 제품 가격에 나눠 반영하기 어렵다.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생산을 늘린 뒤 현지 판매가 예상보다 느리면 재고 부담은 제조기업으로 돌아온다.
국내산 원료와 자체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바이어가 요구하는 공급가격을 맞추는 일도 쉽지 않다. 원료와 포장 가격을 낮추면 제품의 특성이 약해질 수 있고, 기존 구성을 유지하면 현지 소비자가격이 올라간다. 지역 원료를 사용한 중소기업 제품이 대량생산 상품과 같은 가격대에서 경쟁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상담액보다 계약, 첫 선적보다 재주문
국가 전체의 수출통계에는 거래금액과 물량이 집계된다. 자체 브랜드로 판매됐는지, 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공급됐는지, 현지 유통업체가 가져간 몫은 얼마인지까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첫 주문 뒤 같은 바이어가 다시 제품을 들여왔는지도 수출 총액만으로는 알 수 없다.
중소 식품기업에는 첫 선적보다 두 번째 주문이 더 중요하다. 제품 등록과 검사, 포장 변경에 들어간 초기 비용을 회수하려면 현지 매장에서 판매가 이어져야 한다. 첫 물량이 홍보행사나 시험 판매에 그치면 수출 실적은 발생해도 안정적인 판로로 남기 어렵다.
2026년 상반기 농식품 수출은 북미와 중화권뿐 아니라 중동과 중남미, 유럽에서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판매 지역은 넓어지고 있지만 권역별 성장률이 곧 모든 수출기업의 매출 증가를 뜻하지는 않는다. 현지 유통망을 갖춘 기업과 샘플·상담 단계에 머무는 기업 사이에는 제품 등록과 가격, 물류, 마케팅 역량의 차이가 놓여 있다.
정부가 발표하는 K-푸드+ 수치도 농식품 수출과 나눠 읽어야 한다. 2025년 K-푸드+ 수출액 136억2000만달러에는 농식품 104억1000만달러와 농기계·농약·비료·동물용 의약품 등 농산업 수출 32억2000만달러가 함께 들어 있다. 지역 식품기업의 해외시장 규모를 분석할 때는 농식품 수출액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
공항 구매에서 현지 재주문까지
해담은 인천공항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직접 만났고, 프랑스 측에는 샘플을 전달했으며 베트남을 비롯한 해외 바이어와 제품을 협의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세 경로는 해외 소비자와 제품이 만나는 과정이지만 매출이 형성되는 구조도 각각 다르다.
공항에서는 관광객이 제품을 보고 바로 구입한다. 샘플은 바이어가 상품의 맛과 구성을 검토하는 단계다. 수출 상담은 가격과 주문량, 등록 조건을 맞추는 협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계약을 맺고 제품을 선적한 뒤 현지 매장에서 판매돼야 해외 매출이 발생한다.
해담의 해외 진출도 관심을 보인 국가의 수보다 계약 조건과 실제 주문에서 결정된다. 대추홍삼절편과 홍배즙을 어느 식품 유형으로 등록할지, 현지어 포장과 성분 표기를 어떻게 바꿀지, 공급가격과 최소 주문수량을 어느 수준에 맞출지가 먼저 정리돼야 한다.
공항에서 나타난 외국인 구매가 해외시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첫 자료라면, 정식 수출의 성과는 선적과 현지 판매, 재주문에서 쌓인다. 100억달러를 넘어선 K푸드 수출의 다음 폭은 라면과 대기업 제품의 성장만이 아니라, 지역 식품기업이 샘플과 상담을 반복 주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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