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8월19일 마감
1937년 촬영했지만 이번 작품은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정확한 인화 시점은 특정되지 않아
1983년 인화본부터 1990년대 대형 인화까지 거래…같은 이미지도 제작 조건 따라 다른 가격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KtN 임민정기자]1937년 촬영된 코코 샤넬(Coco Chanel)의 흑백 초상이 추정가 6000~8000달러에 경매에 나왔다. 호르스트 P. 호르스트(Horst P. Horst·1906~1999)의 'Coco Chanel, Paris'다. 시작가는 5000달러이며 경매는 미국 동부시간 기준 8월19일 오후 1시11분 마감된다.

샤넬은 곡선형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대고 오른쪽 위를 바라본다. 검은 리본을 두른 머리와 여러 줄의 목 장식, 담배를 든 손이 흑백의 강한 명암 안에 놓였다. 얼굴과 목, 의자의 밝은 등받이가 검은 옷과 짙은 배경 사이에서 분리된다. 촬영연도는 1937년이지만 이번 경매에 나온 종이 사진은 촬영 당시 제작된 인화본이 아니다. 후대에 제작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gelatin silver print)다.

이미지 크기는 24.76×23.5㎝, 용지는 35.56×27.94㎝다. 앞면 여백과 뒷면에는 호르스트의 연필 서명이 남아 있다. 액자를 포함한 크기는 71.12×60.96㎝다. 정확한 인화 시점은 특정되지 않았다.

6000~8000달러라는 추정가는 1937년이라는 촬영연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진은 하나의 네거티브에서 여러 차례 인화할 수 있다. 같은 구도의 이미지도 촬영 시기와 가까운 인화인지, 수십 년 뒤 제작된 후대 인화인지에 따라 물리적인 작품이 달라진다. 크기와 인화 방식, 서명과 스탬프, 보존 상태와 소장 경로도 개별 인화본의 거래 조건을 구성한다.

회화에서 제작연도는 대체로 작품이 실제로 만들어진 시점과 일치한다. 사진에서는 셔터를 누른 날과 종이 위에 작품이 만들어진 날이 서로 다를 수 있다. 'Coco Chanel, Paris, 1937'이라는 같은 제목 아래 제작시기가 다른 여러 인화본이 존재하는 이유다.

촬영 시기와 가까운 때 제작된 사진은 통상 빈티지 프린트(vintage print)로 구분된다. 이후 다시 제작된 사진은 후대 인화(later print)로 거래된다. 후대 인화라고 해서 작가와 무관한 복제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호르스트의 경우 생전에 과거 네거티브를 다시 인화한 작품들이 시장과 미술관에 남아 있으며, 같은 이미지가 서로 다른 시기와 크기, 재료로 제작됐다.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이번 인화본 아래쪽에는 호르스트의 연필 서명이 있다. 서명은 개별 사진의 중요한 구성 정보지만 1937년이라는 촬영연도와 인화시점을 동일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촬영연도와 실제 인화연도를 따로 살펴야 하는 사진 매체의 특성이 서명이 있는 후대 인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같은 'Coco Chanel, Paris'가 최근 경매에서 어떻게 거래됐는지를 보면 가격 구조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2024년 Leitz Auction에는 1983년 제작된 젤라틴 실버 인화본이 나왔다. 이미지 크기는 24.3×23㎝로 이번 작품과 비슷했다. 뒷면에 호르스트의 연필 서명과 작품명, 촬영연도가 있었고 앞면 여백에는 드라이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호르스트 에스테이트에서 취득한 이력도 붙었다. 추정가는 8000~1만유로였고 거래가는 구매자 수수료를 포함해 7800유로였다.

1983년이라는 인화연도가 특정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인화본과 조건이 다르다. 같은 크기대의 젤라틴 실버 사진이라도 제작 시점과 소장 이력이 개별 작품의 성격을 나눈다.

2022년 Christie’s Paris에서는 이미지 크기 24.6×23.5㎝의 또 다른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본이 거래됐다. 이번 작품과 크기가 거의 같다. 앞면과 뒷면에 연필 서명이 있었고 뒷면에는 작품명과 촬영연도도 적혀 있었다. 2010년 Artnet Auctions에서 거래된 이력이 이어졌다. 추정가는 5000~7000유로였고 거래가는 1만2600유로였다.

1만2600유로를 이번 작품의 가격 기준으로 그대로 가져오기는 어렵다. 이미지와 크기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인화본이고 제작시점과 보존 상태, 소장 이력도 동일하지 않다. 경매회사마다 결과 가격에 구매자 수수료가 포함되는 방식도 달라 단순히 거래가만 놓고 순위를 매기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크기가 커진다고 거래가격이 같은 비율로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2024년 Doyle에는 이미지 크기 46.99×45.09㎝의 대형 젤라틴 실버 인화본이 등장했다. 1990년대 인화로 추정된 작품으로 앞면에는 호르스트의 드라이 스탬프, 뒷면에는 연필 서명과 'Chanel, Paris 1937' 표기가 있었다. 추정가는 3000~5000달러, 거래가는 구매자 수수료를 포함해 6400달러였다.

24㎝ 안팎의 1983년 인화본, 비슷한 크기의 후대 인화본, 47㎝에 가까운 1990년대 추정 인화본이 모두 같은 1937년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추정가와 거래가격은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진시장에서는 크기 하나만으로 가격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미술관에도 다른 조건의 인화본이 남아 있다. 디트로이트미술관(DIA)이 소장한 'Coco Chanel, Paris'는 이미지 크기가 약 47×45.1㎝인 후대 젤라틴 실버 프린트다. 호르스트 재단을 거쳐 미술관에 들어갔으며 뒷면에는 작품명과 촬영연도, 작가 서명 등이 남아 있다.

같은 이미지를 담은 사진이 경매시장에 여러 장 등장하고 미술관에도 별도의 인화본이 존재한다고 해서 어느 한 장이 자동으로 ‘복제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네거티브에서 복수의 인화물이 만들어질 수 있는 매체다. 시장에서는 각 인화본의 제작시기와 크기, 재료, 작가의 서명과 제작 이력을 구분해 거래한다.

인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현재 경매품은 젤라틴 실버 방식이지만 'Coco Chanel, Paris'에는 플래티넘 프린트도 존재한다. Christie’s에는 약 1990년 제작된 플래티넘 인화본이 거래된 기록이 있다.

젤라틴 실버는 20세기 흑백사진에서 널리 사용된 방식이다. 같은 공정을 수십 년 동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재료명이 같다고 인화시점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1937년 촬영 이미지를 1983년에 젤라틴 실버로 다시 만들 수도 있고, 1990년 무렵 플래티넘 방식으로 제작할 수도 있다. 사진의 제목과 촬영연도 뒤에 인화연도와 재료가 함께 따라붙는 이유다.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현재 인화본의 서명도 시장에서 구분되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앞면 여백의 연필 서명은 사진 아래 흰 여백에 놓여 있다. 같은 이미지의 다른 인화본에서는 드라이 스탬프와 뒷면 표기, 제작연도 등이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사진시장에서 서명과 스탬프는 작품의 제작 이력과 작가 또는 스튜디오와의 관계를 판단하는 자료로 사용된다.

보존 상태도 가격을 갈라놓는다. 젤라틴 실버 프린트는 빛과 습도, 보관 환경에 따라 표면의 변색이나 긁힘, 주름, 실버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미지와 크기, 제작시기가 비슷한 사진이라도 종이와 유제의 상태가 다르면 같은 가격을 전제로 하기 어렵다.

2022년 Christie’s에서 거래된 인화본은 반무광 Agfa 인화지에 제작됐고 모서리의 미세한 눌림 등을 포함한 상태 기록이 공개됐다. 이번 작품은 사진과 액자 전·후면, 서명까지 확인되지만 인화지 표면의 미세한 상태까지 공개 사진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이미지가 갖고 있는 출판 이력과 개별 인화본의 이력도 따로 봐야 한다. 'Coco Chanel, Paris'는 1944년 'Horst: Photographs of a Decade', 1971년 'Salute to the Thirties', 1984년 'Horst: His Work and His World', 1986년 'Horst: Sixty Years of Photography' 등에 수록됐다.

여러 출판물에 같은 이미지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호르스트의 사진 가운데 해당 구도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소개됐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책에 실린 이미지의 역사와 이번 경매에 나온 한 장의 인화물이 언제 만들어지고 어디를 거쳤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사진시장에서는 널리 알려진 이미지의 역사와 특정 인화물의 물리적 이력이 동시에 가격에 관여한다.

1937년 당시 호르스트는 Vogue를 중심으로 패션과 인물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독일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1930년대 Vogue 작업을 이어갔고 이후 미국에서도 활동했다. 'Coco Chanel, Paris' 역시 해당 시기의 패션·인물사진 작업 가운데 하나다.

다만 경매 소개에 붙은 촬영 일화를 작품가격의 근거처럼 사용할 필요는 없다. 샤넬이 사진 촬영을 꺼리다가 호르스트를 촬영자로 지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당시 촬영이 어느 Vogue 판본을 위한 것이었는지 등 세부 설명은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작품의 시장 조건은 이런 일화보다 촬영연도와 인화시기, 재료와 크기, 개별 인화물의 이력에서 더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시각 정보도 그 선에서 보는 편이 적절하다. 샤넬은 정면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고 옆얼굴을 드러낸 채 의자에 기대 있다. 검은 옷과 배경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얼굴과 목, 의자의 밝은 등받이가 명암의 중심을 만든다. 리본과 여러 줄의 목 장식, 담배가 인물 주변에 배치돼 있다.

샤넬의 내면이나 호르스트의 의도를 사진 한 장으로 단정할 근거는 없다. 인물의 자세와 조명, 장신구와 의자의 배치는 확인할 수 있지만 ‘위엄’, ‘카리스마’, ‘당당함’ 같은 평가가 인화본의 시장가치를 설명하는 근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사진=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co Chanel, Paris', 1937. 후대 젤라틴 실버 인화, 24.76×23.5㎝. 경매 출품 자료

최근 거래된 같은 이미지의 추정가만 놓아도 범위는 일정하지 않다. 2022년 Christie’s의 후대 인화본은 5000~7000유로, 2024년 Leitz의 1983년 인화본은 8000~1만유로, Doyle의 대형 1990년대 추정 인화본은 3000~5000달러였다. 이번 작품에는 6000~8000달러가 책정됐다.

피사체와 촬영연도가 모두 같아도 가격표는 달랐다. 사진시장이 거래하는 대상이 ‘코코 샤넬의 유명한 사진’이라는 이미지 자체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네거티브에서 언제 인화됐는지, 어느 크기로 제작됐는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서명과 스탬프가 어떻게 남았는지, 어떤 소장 경로를 거쳤는지가 한 장의 사진을 다른 인화본과 구분한다.

이번 'Coco Chanel, Paris'는 1937년에 촬영됐고 후대에 젤라틴 실버 방식으로 인화됐다. 이미지 크기는 24.76×23.5㎝이며 앞면과 뒷면에 호르스트의 연필 서명이 있다. 정확한 인화 시점은 특정되지 않았다. 추정가는 6000~8000달러, 시작가는 5000달러다.

경매는 8월19일 미국 동부시간 오후 1시11분 마감된다. 낙찰가 외에는 구매자 프리미엄과 세금, 배송비 등이 별도로 붙는다. 1937년에 만들어진 하나의 이미지가 수십 년 동안 서로 다른 크기와 재료, 제작시기의 인화본으로 이어졌고, 각각의 사진은 별도의 조건과 가격으로 시장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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