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유성영화 전환기를 1952년 MGM 뮤지컬로 재구성…마이크·카메라·배우의 목소리부터 더빙까지, 기술 변화가 제작 시스템을 흔든 시간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Jay's Classic Movie

[KtN 최유식기자]1927년 할리우드. 무성영화 스타 돈 록우드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리나 라몬트가 상대역으로 선다. 감독의 지시가 촬영장에 그대로 울리고 촬영 중간에는 배우에게 연기 방향을 말해도 문제가 없다. 완성된 영화에서는 배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뒤 같은 스튜디오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리나의 의상 속에 마이크를 숨기자 옷감이 스치는 소리까지 녹음된다. 마이크를 꽃장식에 옮기면 배우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목소리가 멀어진다. 리나는 녹음기사의 지시를 따라 대사를 말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장비는 연기를 방해한다. 시사회에서는 영상과 음성이 어긋나면서 남자의 목소리가 여자의 입에서 나오고 여자의 목소리가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1952년 ‘Singin’ in the Rain’이 웃음으로 만든 대목이다. 과장은 섞였지만 출발점은 실제 1920년대 말 영화산업이 겪었던 기술 변화에 닿아 있다.

1927년 10월 공개된 ‘The Jazz Singer’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빠르게 유성영화 제작으로 움직였다. ‘The Jazz Singer’ 자체는 대부분 무성영화 형식을 유지하면서 일부 노래와 대사를 동기화한 작품이었다. 1928년 ‘Lights of New York’이 장편 최초의 전면 유성영화로 등장했고, 스튜디오와 극장들은 녹음시설과 음향장비를 갖추는 작업을 이어갔다.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IMDB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IMDB

영화에 소리가 들어오자 배우가 말하기 시작한 것만은 아니었다. 촬영장 전체의 구조가 바뀌었다.

초기 녹음장비는 영화 카메라가 돌아가는 기계음까지 잡아냈다. 카메라와 촬영기사를 방음 부스 안에 넣어 소음을 차단하는 방법이 사용됐다. 거대한 방음 상자 안에 카메라와 촬영기사가 함께 들어가 촬영하는 방식도 등장했다. 

카메라가 상자 안으로 들어가자 무성영화 말기에 발전했던 자유로운 움직임은 제약을 받았다. 마이크도 지금처럼 배우를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웠다. 촬영장 곳곳에 마이크를 숨기거나 배우가 정해진 위치에서 말하도록 동선을 맞춰야 했다. 초기 유성영화에서 카메라와 배우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배경 가운데 하나였다. 

‘Singin’ in the Rain’은 기술 변화의 혼란을 리나 라몬트라는 인물에게 집중시킨다.

진 헤이건(Jean Hagen)이 연기한 리나는 무성영화에서는 얼굴과 몸짓으로 스타의 조건을 갖췄지만 마이크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강한 억양과 높은 목소리가 그대로 극장에 전달된다. 대사를 소리와 함께 전달하는 능력이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들어오면서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가 가진 자산과 유성영화 시대에 필요한 조건 사이에 틈이 생긴다.

실제 전환기의 배우들이 모두 목소리 때문에 몰락했다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후 영화와 대중문화가 무성영화 스타의 몰락을 목소리 문제와 결부해 단순화한 측면도 있다. ‘Singin’ in the Rain’ 역시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옮긴 기록물이 아니라 여러 제작상의 변화를 한 스튜디오와 배우들의 이야기로 압축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기술 변화는 배우 한 명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돈 록우드와 리나가 출연한 무성 시대극 ‘The Dueling Cavalier’는 유성영화 열풍이 시작되면서 대사가 들어간 작품으로 바뀐다. 첫 시사는 참담하게 끝난다. 녹음 수준과 대사 전달, 연출 방식, 영상과 소리의 동기화가 함께 흔들린다.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IMDB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IMDB

제작진은 이미 촬영한 영화를 뮤지컬 ‘The Dancing Cavalier’로 바꾸기로 한다. 데비 레이놀즈(Debbie Reynolds)가 연기한 캐시 셀든의 목소리를 리나의 목소리 대신 사용하는 더빙도 계획한다.

영화산업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실패와 수정, 재촬영과 장르 변화가 연달아 일어난다.

실제 1920년대 말에도 유성영화의 확산은 영화 뮤지컬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대사가 가능해졌다는 사실만큼 노래와 춤을 직접 들려줄 수 있다는 점이 새로운 상품이 됐다. 초기 작품들은 포스터에 ‘All Talking’, ‘All Singing’, ‘All Dancing’을 내걸었다. 1929년 공개된 MGM의 ‘The Broadway Melody’는 초기 영화 뮤지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23년 뒤 만들어진 ‘Singin’ in the Rain’은 바로 이 시기를 이야기하면서 당시 음악까지 다시 불러왔다.

프로듀서 아서 프리드(Arthur Freed)는 MGM 뮤지컬 제작을 대표했던 인물이면서 작사가였다. 베티 컴든(Betty Comden)과 아돌프 그린(Adolph Green)은 프리드와 작곡가 나시오 허브 브라운(Nacio Herb Brown)이 만든 기존 노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제목과 같은 ‘Singin’ in the Rain’도 1952년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든 곡이 아니었다. 1929년 MGM 작품 ‘The Hollywood Revue of 1929’에서 이미 사용됐다. 

‘You Were Meant for Me’, ‘Good Morning’, ‘Broadway Rhythm’ 등도 1920~30년대에 발표된 곡이었다. 주요 곡 가운데 영화 제작 과정에서 새로 쓰인 노래는 ‘Make ’Em Laugh’와 ‘Moses’ 두 곡이었다. 

1952년의 MGM이 1920년대 말 MGM과 할리우드의 기억을 기존 노래로 다시 조립한 셈이다.

1929년의 노래가 1952년 영화 속에서 다시 등장하고, 무성영화가 유성영화와 뮤지컬로 이동하던 시기를 이미 완성기에 들어선 MGM 뮤지컬이 재현한다.

진 켈리(Gene Kelly)와 스탠리 도넌(Stanley Donen)이 공동 연출했고, 아서 프리드가 제작했다. 촬영은 해럴드 로슨(Harold Rosson), 편집은 에이드리엔 파잔(Adrienne Fazan)이 맡았다. MGM이 1940~50년대 구축한 대형 뮤지컬 제작 체제가 작품을 뒷받침했다. 

아서 프리드가 중심이 된 MGM의 제작진은 ‘Meet Me in St. Louis’, ‘An American in Paris’ 등을 연이어 내놓으며 1940~50년대 미국 영화 뮤지컬의 주요 흐름을 형성했다. ‘Singin’ in the Rain’도 같은 제작 환경에서 완성됐다.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IMDB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IMDB

영화는 스튜디오 시스템을 찬란하게 복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할리우드가 스타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도 희극의 대상으로 끌어들인다.

초반 돈 록우드는 프리미어 현장에서 자신의 성공 과정을 설명한다. 품위와 예술을 강조하는 말이 이어지는 동안 실제 과거는 술집과 작은 공연장, 위험한 스턴트 현장으로 나타난다. 관객 앞에서 만들어진 스타의 공식 전기와 실제 노동 사이의 차이를 말과 영상의 충돌로 드러낸다.

리나와 돈이 실제 연인이라는 스튜디오의 홍보도 같은 구조다. 대중에게는 완벽한 스타 커플로 판매되지만 실제 관계는 전혀 다르다. 영화산업이 배우의 작품뿐 아니라 개인 이미지까지 만들어 판매하던 스튜디오 시대의 구조가 코미디 안으로 들어온다.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목소리’는 스타 이미지에 또 하나의 층을 추가한다.

리나는 얼굴을 숨길 필요가 없지만 목소리는 숨겨야 한다. 캐시는 얼굴을 드러낼 수 없지만 목소리는 사용된다. 한 배우의 몸과 다른 배우의 목소리를 결합해 새로운 스타 이미지를 만드는 설정이다.

실제 제작 과정에서는 목소리의 주인이 한 번 더 뒤집혔다.

극중에서는 캐시가 리나의 대사와 노래를 대신한다고 설정돼 있지만 일부 더빙 부분에서는 진 헤이건의 실제 목소리가 사용됐다. 캐시가 리나의 말소리를 더빙하는 대목에서 데비 레이놀즈의 목소리 대신 헤이건이 자신의 캐릭터 목소리를 다시 녹음했다. 캐시가 리나를 더빙하는 영화 속 상황을 실제로는 리나 역 배우가 다시 더빙한 셈이다.

영화가 다루는 ‘누구의 목소리인가’라는 문제가 제작 현장에서도 그대로 겹쳐졌다.

기술 변화는 배우의 연기에도 영향을 줬다. 무성영화에서는 표정과 몸짓이 대사의 상당 부분을 대신했다. 유성영화에서는 말의 속도와 억양, 호흡이 연기에 들어왔다. 동시에 배우가 마이크 위치를 의식해야 했고 촬영과 녹음 부서의 협업 방식도 달라졌다.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IMDB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IMDB

영화 속 발성 수업은 변화를 코미디로 압축한다. 돈은 발음 교사와 함께 정확한 발성을 연습한다. 도널드 오코너(Donald O’Connor)가 연기한 코스모가 들어오면서 수업은 ‘Moses’의 노래와 탭댄스로 변한다. 새로운 기술에 맞추기 위한 훈련이 뮤지컬 넘버로 전환된다.

‘Singin’ in the Rain’은 기술의 실패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패를 노래와 춤의 재료로 바꾼다.

가장 널리 알려진 ‘Singin’ in the Rain’ 솔로에서도 이야기와 음악은 떨어져 있지 않다.

돈은 캐시와 마음을 확인한 뒤 비가 쏟아지는 거리로 나온다. 우산은 비를 피하는 도구에서 춤을 위한 소품으로 바뀌고, 물웅덩이는 발로 차며 지나가는 무대의 일부가 된다. 가로등과 인도, 빗물까지 안무에 들어온다.

1920년대 말 유성영화가 카메라 움직임을 제약했던 시간을 다룬 영화가 1952년에는 카메라와 음악, 배우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결합한 장면을 내놓는다. 초기 유성영화가 기술에 맞춰 움직임을 제한해야 했다면 MGM 뮤지컬의 완성기에는 소리와 움직임을 하나의 연출로 묶을 수 있게 됐다.

‘Singin’ in the Rain’이 촬영된 1951년과 개봉한 1952년은 영화 속 시대와 20여 년 떨어져 있었다. 유성영화는 이미 완전히 정착했고 MGM 뮤지컬도 전성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최신 기술을 소개하는 영화가 아니라 기술이 산업을 뒤흔들던 시간을 충분한 거리를 두고 되돌아본 작품이었다.

개봉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의 중심에 선 영화도 아니었다. 1953년 제2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진 헤이건의 여우조연상과 레니 헤이턴(Lennie Hayton)의 뮤지컬 음악상 등 2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IMDB
[영화 인사이트④] ‘Singin’ in the Rain’, 소리가 들어오자 달라진 카메라와 스타의 조건. 사진=IMDB

평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국가영화등기부가 출범한 1989년 첫 선정작에 ‘Singin’ in the Rain’을 포함했다. 

1920년대 말 영화에 소리가 들어오자 카메라는 방음 상자 안으로 들어갔고 마이크는 배우의 동선을 제한했다. 스튜디오는 촬영장을 개조해야 했고 극장은 음향 설비를 갖춰야 했다. 배우의 목소리는 스타를 평가하는 새로운 조건이 됐으며 노래와 춤은 영화산업의 새로운 상품으로 성장했다. 

1952년 ‘Singin’ in the Rain’은 20여 년 전의 혼란을 웃음으로 바꿨다. 마이크를 어디에 둘지 몰라 헤매고, 카메라의 자유가 줄어들고, 스타의 목소리가 문제가 되고, 영상과 소리가 맞지 않는 시행착오를 지나 영화 속 스튜디오는 뮤지컬이라는 돌파구를 찾는다.

소리의 등장은 영화에 대사를 추가하는 기술 변화에 머물지 않았다. 촬영 방식과 극장 설비, 배우의 연기, 스타 시스템, 장르까지 함께 움직였다. ‘Singin’ in the Rain’이 돌아본 1920년대 말 할리우드는 영화가 목소리를 얻으면서 제작 산업 전체를 다시 짜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