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청색의 색층 사이 실제 LED를 품은 나비…중심에서 사방으로 번지는 빛의 결
2017년 시작한 ‘별과 별사이’, 광원과 안료의 병치에서 서로 스며드는 ‘빛의 회화’로

[KtN 박준식기자]나비킴(Navikim·김현정) 작가의 2024년작 ‘별과 별사이 2402’는 캔버스 중앙의 작은 나비에서 시작한다. 나비 안에는 실제 LED 광원이 들어 있고, 주변에는 청록과 청색의 색이 수십 겹으로 쌓여 있다. 밝은 중심에서 뻗어나온 가느다란 빛의 결은 바깥으로 갈수록 짙은 색층 속으로 스며든다. 광원이 따로 떠 있고 회화가 그 주변을 장식하는 구조보다 빛과 물감이 하나의 깊이를 만드는 쪽에 가깝다.

나비킴(Navikim·김현정), ‘별과 별사이 2402(Interstellar 2402)’, 2024, 캔버스에 LED·혼합재료, 60×60㎝. 중심의 나비와 실제 광원 주변에 청록·청색 계열의 색을 수십 차례 반복해 쌓았다. LED의 밝음과 안료의 물성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겹쳐지는 ‘별과 별사이’ 연작의 2024년작.

작품의 중심은 밝다. 작은 원형에 가까운 빛이 응축되고, 나비의 형상은 그 밝음과 겹쳐 있다. 중심을 둘러싼 청록은 일정한 단색으로 퍼지지 않는다. 짙은 청색, 녹색을 머금은 푸른색, 밝게 떠오르는 청록이 여러 방향의 붓질을 따라 겹쳐지며 중심과 외곽 사이에 깊이를 만든다.

가까운 부분의 색은 빛에 밀려 밝아지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청록과 짙은 푸른색이 교차한다. 그 사이로 가느다란 선들이 중심에서 사방으로 뻗는다. 빛을 흰색이나 노란색으로 한 번 그어 표현한 방식보다, 여러 차례 색을 올리고 다시 겹치면서 실제 광원이 물감 사이로 번지는 감각을 회화적으로 이어간 구성이다.

김현정 작가는 ‘별과 별사이 2402’에서 중심에서 발산하는 빛줄기를 수십 차례 반복해 채색했다. 붓이 지나간 횟수가 그대로 색층(色層)이 되고, 색층의 두께가 캔버스에 물질적인 밀도를 만든다. 실제 LED가 만들어내는 비물질적인 밝음 곁에 손으로 반복해 쌓은 안료의 시간이 나란히 놓인다.

이 대목에서 2017년작 ‘별과 별사이 1705’와의 차이가 선명해진다. 두 작품은 모두 정사각형 캔버스에 LED와 혼합재료를 사용하고, 중앙의 나비와 빛이 주변으로 확산되는 구조를 갖는다. 2017년에는 LED를 회화의 내부로 끌어들여 실제 빛 자체를 조형 요소로 삼는 실험이 앞에 섰다면, 2024년에는 그 빛을 받아내는 회화의 표면이 훨씬 촘촘해졌다.

‘1705’에서 중앙의 광원이 넓은 청록 공간을 가르는 작은 별처럼 자리했다면, ‘2402’에서는 광원 주변의 색이 여러 겹으로 움직인다. 붓의 흔적이 중심을 에워싸고, 색이 서로 겹치며, 빛이 안료의 틈을 지나 바깥으로 퍼지는 듯한 깊이를 만든다. LED와 캔버스가 함께 있다는 사실보다 둘 사이에서 새로운 색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광원과 안료는 성질부터 다르다. LED의 색은 스스로 빛을 내며 주변으로 퍼지고, 물감은 외부의 빛을 받아 표면에서 색을 드러낸다. 김현정 작가는 두 종류의 색을 한 작품 안에 겹쳐 놓는다. 중심에서는 실제 빛이 발생하고, 주변에서는 붓질과 색층이 그 빛의 방향과 농도를 이어받는다.

그래서 ‘별과 별사이 2402’에서는 실제 광원이 어디에서 끝나고 그려진 빛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경계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LED에서 나온 밝음이 청록의 색층 위에 닿고, 붓으로 만든 방사형의 선은 다시 광원의 확산을 이어간다. 물리적인 빛과 회화적으로 만든 빛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나비 역시 이전보다 작게 응축돼 있다. 2006년 ‘첫 만남’에서는 꽃 위에 내려앉은 나비의 몸과 날개가 작품의 주요 형상이었고, 2009년 ‘날으는 빛’에서는 나비 자체가 여러 광색의 조각으로 바뀌었다. ‘무한’ 연작에서는 나비 안에 LED를 넣어 점멸과 시간성을 끌어들였다. ‘별과 별사이’에 이르면 나비는 세부 묘사를 앞세우기보다 빛이 발생하는 중심으로 압축된다.

작아진 나비와 넓어진 빛 사이의 관계가 작품의 공간감을 바꾼다. 한 마리 나비가 캔버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신 작은 생명체의 내부에서 시작된 에너지가 주변 전체로 확산된다. 나비의 물리적인 크기보다 나비가 만들어내는 빛의 범위가 작품을 지배한다.

‘Interstellar’라는 제목도 이 구조와 맞물린다. 별과 별 사이에는 막대한 거리가 놓여 있지만 멀리서 바라본 별은 작은 광점으로 들어온다. 김현정 작가는 광대한 우주 풍경을 묘사하는 대신 작은 중심과 그 주변으로 번지는 색을 이용해 거리와 깊이를 만든다. 중앙의 나비는 한 생명체이면서 동시에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하나의 별과 겹쳐 읽힌다.

정사각형이라는 외곽 형태도 중심성을 강화한다. 어느 한 방향으로 긴 직사각형보다 사방의 거리가 비교적 균등한 60×60㎝ 캔버스 안에서 빛은 중심으로부터 여러 방향으로 퍼진다. 중앙의 광점을 기준으로 청록과 청색의 흐름이 사방으로 이어지면서 작품 전체가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응축된다.

‘무한 7’과 ‘무한 8’에서는 LED의 점등과 점멸, 색 변화가 시간의 흐름을 직접 만들었다. 빛이 밝아지거나 색이 달라질 때 작품의 상태도 변했다. ‘별과 별사이 2402’에서는 시간성이 다른 곳에 쌓인다. 수십 차례 반복된 채색이 붓질의 시간으로 남고, 실제 광원은 그 축적된 색층 한가운데에서 계속 빛을 낸다.

하나는 전기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손의 시간이다.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LED의 빛과 여러 차례의 붓질을 거쳐 형성된 색의 두께가 한 작품에서 만난다. ‘2402’의 물성이 강해진 이유도 이 두 시간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변 밝기에 따라 작품의 인상도 달라진다. 밝은 공간에서는 청록과 청색의 겹침, 붓질의 방향과 표면의 질감이 먼저 살아난다. 주변이 어두워지면 중앙 LED의 존재가 강해지고 빛이 주변 색을 다시 물들인다. 같은 작품이 놓인 환경의 조도에 따라 안료와 광원의 비중이 달라지는 구조다.

작품은 벽에 걸린 캔버스의 경계에서도 조금씩 벗어난다. LED에서 나온 빛은 안료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변으로 확산될 수 있고, 설치 환경의 밝기와 표면에 따라 반사의 정도도 달라진다. 캔버스 안에서 시작된 밝음이 작품이 놓인 실제 공간과 관계를 맺으면서 회화와 공간 사이의 경계까지 넓어진다.

김현정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빛나는 색채(Vital Color)’도 ‘2402’에서는 한층 구체적인 물성을 얻는다. 초기에는 물감으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맑은 투과광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색의 한계를 경험했고, 이후 RGB 광원과 플렉시글라스, LED를 사용하면서 실제 빛을 작품에 끌어들였다. ‘별과 별사이 2402’에서는 실제 광원을 사용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광원의 밝음과 손으로 쌓은 안료의 색을 하나의 회화 안에서 결합한다.

빛을 얻기 위해 물감을 떠난 뒤 다시 물감으로 돌아왔다는 점도 흥미롭다. 2009년 ‘날으는 빛’에서는 안료만으로 얻기 힘들었던 맑은 광색을 찾아 RGB LED를 사용했다. 이후 실제 빛을 작품 안에 넣었고, 2024년 ‘2402’에서는 그 빛을 둘러싸고 다시 수십 번 붓을 움직인다. 기술을 회화 대신 놓기보다 기술로 얻은 빛을 다시 회화의 언어 안으로 가져온 셈이다.

이 과정에서 ‘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가 말하는 밝음도 시각적인 광도만으로 머물지 않는다. 캔버스 중앙의 LED는 실제로 빛나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힘은 광원의 세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청록의 겹침과 붓질, 나비의 작은 형상, 중심과 외곽의 거리, 주변 조도에 따라 달라지는 지각이 함께 밝음의 깊이를 만든다.

‘별과 별사이’ 연작에서 내면의 빛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앙의 빛을 바라보는 시선은 계속 바깥으로 퍼졌다가 다시 중심으로 돌아온다. 강한 광점을 오래 바라볼수록 주변의 짙은 청록도 함께 의식하게 된다. 밝음과 어둠 가운데 하나를 지우기보다 두 영역을 함께 두면서 중심의 빛을 더 깊게 만든다.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변화는 작품의 크기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1705’와 ‘2402’는 모두 60×60㎝다. 동일한 크기 안에서 광원과 안료의 관계를 계속 바꾸고, 붓질과 색층을 더해 회화적 깊이를 넓혔다. 외형적 규모보다 같은 구조 안에서 물성과 빛의 관계를 얼마나 세밀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가 연작의 중요한 축이 됐다.

‘별과 별사이 2402’에서 가장 작은 것은 나비이고 가장 넓은 것은 나비에서 나온 빛이다. 중심의 작은 생명이 청록의 여러 겹을 통과해 사방으로 번지면서 한 점의 밝음이 작품 전체의 색과 깊이를 바꾼다.

2017년 ‘별과 별사이 1705’에서 김현정 작가는 회화 안에 실제 빛을 켰다. 2024년 ‘2402’에서는 그 빛을 수십 겹의 붓질로 받아냈다. LED가 만든 밝음과 손으로 쌓은 청록의 시간이 서로 스며들면서 나비는 광원과 형상의 경계를 넘어선다. ‘별과 별사이 2402’는 빛을 회화에 더한 작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빛과 안료가 함께 회화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단계에 들어선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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