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사법재판소 법무관, AI 답변의 기사 재사용에 법적 책임 가능성 제시…원문 접근·복제 방식과 언론사 권리 보호에 주목
[KtN 홍은희기자]구글의 인공지능(AI) 서비스 제미나이(Gemini)가 언론 기사를 검색하고 답변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법률 의견이 유럽연합(EU)에서 나왔다. AI가 언론사의 기사를 이용해 답변을 작성할 때 원문의 표현을 어느 정도 재사용했는지, 기사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제한을 우회했는지에 따라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검색 결과를 통해 언론사 홈페이지로 독자를 연결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AI가 기사 내용을 직접 전달하는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언론 콘텐츠의 이용 범위를 둘러싼 법적 논의도 구체화되고 있다.
유럽연합 사법재판소(Court of Justice of the European Union)의 마치에이 슈푸나르(Maciej Szpunar) 수석법무관은 11월 3일 룩셈부르크에서 헝가리 온라인 매체 운영사 라이크 컴퍼니(Like Company)와 구글 사이의 분쟁에 관한 의견을 발표했다. 사건번호는 C-250/25다. 라이크 컴퍼니는 자사 웹사이트에 게재한 기사가 제미나이의 AI 모델 학습과 답변 생성에 이용되면서 언론사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헝가리 법원은 관련 행위에 유럽연합 저작권법을 적용하는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사법재판소에 법률 해석을 요청했다.
슈푸나르 수석법무관은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과정과 이용자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기사를 가져오는 과정을 구분했다. AI가 언론사 웹사이트의 기사를 검색해 내용을 가져오고, 해당 기사의 표현을 답변에 재사용하는 경우에는 언론사의 복제권이나 공중이용제공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다. 특히 언론사가 유료 구독이나 기술적 조치로 접근을 제한한 콘텐츠를 AI 서비스가 우회해 이용했는지, 생성된 답변에 원문의 표현이 어느 정도 포함됐는지가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언론 기사의 저작권은 기사에 담긴 사실 자체와 구체적인 표현을 구별해 보호한다. 기업의 실적이나 사건 발생 날짜, 공공기관의 발표 내용처럼 누구나 전달할 수 있는 사실은 특정 언론사가 독점할 수 없다. 반면 취재를 통해 작성한 기사의 문장과 구성 가운데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에 해당하는 표현을 허락 없이 복제하거나 재사용하는 행위는 별도의 법적 판단을 받는다. AI가 기사의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답변을 생성하는 행위와 원문의 표현을 실질적으로 재현하는 행위에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 이유다.
제미나이와 같은 대화형 AI 서비스는 이용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검색 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 검색증강생성(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기술은 외부에서 확보한 정보를 대규모언어모델의 답변 생성 과정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언론사의 최신 기사를 검색해 관련 내용을 가져오고, 이용자가 요구한 정보에 맞춰 답변을 작성하는 기능에도 활용된다. 이용자는 여러 언론사 홈페이지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하나의 AI 서비스에서 필요한 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언론사의 기사 유통 방식은 이러한 기술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기존 웹검색에서는 검색 결과에 노출된 기사 제목과 요약을 보고 이용자가 언론사 홈페이지로 이동하는 방식이 주요 유입 경로였다. 기사 원문을 읽기 위해 언론사 사이트를 방문하면 광고가 노출되고, 유료 콘텐츠를 이용하려는 독자는 구독이나 개별 결제 절차를 거치게 된다. 검색 서비스와 언론사 사이에는 검색 결과의 노출이 실제 사이트 방문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형성돼 있었다.
대화형 AI가 기사 내용을 직접 정리해 답변으로 제공하면 독자의 정보 소비 경로가 달라진다. 언론사가 생산한 정보가 AI 답변에 활용되더라도 이용자가 반드시 원문을 방문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 홈페이지를 방문하지 않은 채 필요한 정보를 얻는 이용자가 늘어날 경우 기사 열람을 기반으로 하는 광고 수익과 구독 전환 기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검색 결과에서 기사를 발견하는 과정과 실제 언론사 사이트에서 기사를 읽는 과정이 분리되는 것이다.
저작권 침해 여부는 이러한 사업상 영향과 구별해 판단해야 한다. AI 답변으로 언론사 방문이 줄어들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의 권리가 인정되는 콘텐츠를 어떤 방식으로 가져왔는지, 이용 허락이나 법률상 예외 규정이 적용되는지, 답변에서 보호 대상인 표현을 재사용했는지가 함께 검토돼야 한다. 언론사와 AI 기업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와 저작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문제는 서로 연결돼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라이크 컴퍼니와 구글의 분쟁에서는 AI 모델 학습에 관한 쟁점도 제기됐다. 라이크 컴퍼니는 자사 기사가 제미나이 모델의 학습에 사용됐다고 주장했지만, 슈푸나르 수석법무관은 해당 기사가 실제 학습에 이용됐다는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점을 고려해 관련 법률 질문을 심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모델 학습에 관한 일반적인 법률 해석과 이번 사건에서 실제로 다투는 기사 이용 행위를 구분한 것이다.
유럽연합은 저작권법에서 일정한 조건 아래 텍스트·데이터 마이닝을 허용하고 있다. 대량의 문서와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규정이다. 권리자가 적법한 방식으로 이용을 제한했는지 등 구체적인 조건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슈푸나르 수석법무관은 AI 학습과 관련한 보충적인 법률 해석에서도 이러한 예외 규정이 적용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따라서 이번 의견을 AI가 언론 기사를 학습하는 행위 전반에 대한 위법 판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언론사가 콘텐츠 이용을 제한하는 방식에도 관심이 모인다. 온라인 기사는 무료 공개, 회원 전용, 유료 구독 등 서로 다른 접근 조건으로 제공된다. 무료 기사라도 저작권 보호 대상인 표현을 누구나 자유롭게 복제하거나 재배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료 기사 역시 구독 여부에 따른 접근 권한과 저작물의 복제·이용 허락 범위를 구분해야 한다. AI 서비스가 기사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접근 제한을 우회했는지, 원문을 재현했는지는 각각의 기술적·법적 조건에 따라 판단될 수 있다.
AI 기업과 언론사 사이의 콘텐츠 이용 계약에도 관련 법률 해석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언론사가 AI 기업에 기사 이용을 허락하고 대가를 받는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허락된 콘텐츠의 범위와 이용 목적, 답변에 포함할 수 있는 표현의 수준은 별도로 정해야 한다. AI 서비스가 기사를 검색하는 기능과 모델을 학습시키는 기능, 이용자에게 답변을 제공하는 기능은 기술적으로도 구별된다. 계약에서 허용한 이용 범위를 벗어난 행위가 발생하면 권리 관계를 다시 검토해야 할 수 있다.
국내 언론사 역시 웹검색과 추천 서비스, 직접 방문, 유료 구독을 통해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일반 검색에서 기사가 노출되는 것과 독자가 실제 기사 페이지를 방문하는 것은 서로 다른 단계다. AI 검색이 확대되면 기사 내용이 외부 서비스에서 소비되는 정도와 언론사 사이트로 유입되는 독자 수를 함께 살펴야 한다. 검색 결과의 노출량만으로 언론사의 실질적인 독자 확보 성과를 판단하기 어려워지는 환경이다.
무료 기사와 유료 기사를 병행하는 매체에서는 콘텐츠 공개 범위에 따른 운영 원칙도 중요해진다. 무료 기사는 광고를 통한 수익 확보에 활용할 수 있고, 유료 기사는 구독자에게 제공하는 별도의 콘텐츠 가치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두 방식 모두 기사에 대한 저작권 보호와는 구분된다. 무료로 공개했다는 이유로 AI 기업에 무제한적인 복제 권한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며, 유료 기사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서비스에서 원문을 재배포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슈푸나르 수석법무관의 의견은 유럽연합 사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에 앞서 제시된 독립적인 법률 해석이다. 법무관의 의견은 재판부를 구속하지 않으며, 사법재판소가 유럽연합법의 해석을 내리면 헝가리 법원이 해당 분쟁을 판단하게 된다. 11월 3일 발표된 의견에서는 AI 모델 학습과 실시간 기사 이용을 구분하고, 기사에 접근하는 방식과 원문의 표현 재사용 여부를 검토할 필요성이 제시됐다. 최종 판결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