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베니스 건축 전시에서 출발해 새로운 공간 구성…김종진 교수, 가림막과 색채·자연광으로 풀어낸 두 건축가의 작품 세계

[전시 트렌드①] 문훈·심근영 ‘탈주와 침묵’, 베니스 이후 다시 설계한 세 단계의 전시 공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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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박준식기자]구띠갤러리 전시장 입구에는 내부를 가린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가림막을 지나면 흰색 전시실이 나오고, 다시 문을 통과하면 붉은색과 흰색으로 구분된 주 전시실이 펼쳐진다. 전시장 중앙에는 실제 흙과 식물이 놓여 있다. 천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시간에 따라 흙과 식물의 밝기와 그림자를 바꾼다. 건축가 문훈(Moon Hoon)과 심근영(Shim Keunyoung)의 공동 전시 ‘탈주와 침묵(ESCAPE & SILENCE)’은 작품뿐 아니라 관람객이 이동하는 순서와 자연광까지 고려해 공간을 구성했다.

11월 6일 개막한 ‘탈주와 침묵’은 지난해 베니스에서 선보인 건축 작업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시 주제를 마련했다. 문훈의 ‘구운몽(Goo Woon Mong / BaKeD DrEaM)’과 심근영의 ‘이방인의 외출: 빛을 향하여’를 중심으로 건축 드로잉과 설계 프로젝트,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다룬다. 전시는 15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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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건축도시전문대학원 김종진 교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건국대학교 건축도시전문대학원 김종진 교수는 전시 공간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입구를 가린 스크린에서 시작해 베니스 건축 전시를 다룬 흰색 전시실을 지나고, 붉은색과 흰색으로 구분된 주 전시실로 들어가는 구성이다. 관람객이 전시장 전체를 한눈에 살펴보기보다 공간을 차례로 이동하면서 작품을 접하도록 했다.

김 교수는 입구에 스크린을 설치한 이유를 관람객의 궁금증과 연결했다. 내부를 처음부터 모두 드러내지 않고 가림막을 지나도록 해 다음 공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다는 설명이다.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시야가 제한된 입구를 지나며 전시실 안쪽을 향해 움직인다.

흰색 전시실에는 2025년 베니스에서 열린 유럽문화센터(ECC)의 국제 건축 전시 ‘Time Space Existence(시간·공간·존재)’와 관련된 내용이 배치됐다. 김 교수는 당시 전시 주제를 바탕으로 작은 규모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베니스에서 진행한 건축 작업과 올해 구띠갤러리 전시를 연결하는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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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베니스에서 문훈과 심근영은 ECC 건축 전시에 참여했다. 두 건축가는 당시 서로의 참여 사실을 알게 됐으며, 이후 심근영의 제안으로 공동 전시를 준비했다. 문훈은 개인적인 인연이 없었던 두 사람이 베니스 전시를 계기로 알게 됐고, 귀국 전시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번 작업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구띠갤러리 전시는 베니스에서 발표한 작품을 그대로 옮겨 놓는 방식과 구별된다. 김 교수는 2025년의 ‘Time Space Existence’를 출발점으로 삼되, 2026년에는 ‘탈주와 침묵’이라는 주제를 새롭게 설정했다고 밝혔다. 전시장 구성도 올해의 주제에 맞춰 다시 마련했다. 베니스 건축 전시를 다룬 흰색 공간에서 출발한 관람객은 문을 지나 두 건축가의 작품이 놓인 주 전시실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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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전시실에는 붉은색 공간과 흰색 공간이 나뉘어 있다. 붉은색은 벽면의 색채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기고, 흰색은 상대적으로 여백이 두드러진다. 두 공간은 색채와 분위기에서 차이를 드러내며 한 전시장 안에 서로 다른 건축 작업을 배치하는 바탕이 된다.

전시 제목에 사용된 ‘탈주’와 ‘침묵’은 움직임과 머무름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김 교수는 탈주를 기존의 장소나 상태에서 벗어나는 행위로, 침묵을 고요함 속에 머무는 상태로 설명했다. 두 개념은 상반된 성격을 갖고 있지만 시간과 공간, 존재라는 공통된 주제에서 출발한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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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훈은 건축의 형태와 용도를 자유롭게 결합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의 ‘구운몽’에는 어린 시절을 보낸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을 배경으로 아홉 가지 미래 건축을 구상했다. 호텔과 야구장을 결합한 ‘호디움’, 텅스텐 크리스털 온천, 시간여행터미널, 우주호텔 등이 등장한다. 고향의 기억과 지역의 특성을 바탕으로 현재 존재하지 않는 건축물을 상상한 작업이다.

문훈은 ‘탈주’를 건축에만 국한하지 않고 삶의 태도와 연결했다. 사회의 규칙과 관습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느낄 때 이를 넘어서고 싶은 욕망이 생기며, 그러한 생각이 창의적인 작업의 바탕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구운몽’에서 문훈은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설과 생활 방식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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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영은 주택과 체류시설을 중심으로 빛과 자연, 사람이 공간에 머무는 동안 느끼는 감각을 탐구해 왔다. ‘영성의 빛’, ‘빛의 조각’, ‘풍경이 흐르는 집’, ‘경주의 시간’ 등은 주거와 체류라는 생활 조건 속에서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다룬 프로젝트들이다.

심근영은 빛을 환대에, 어둠을 침묵에 연결했다. 밝음과 어둠을 서로 분리하기보다 함께 존재하는 자연의 요소로 생각한다. 하루 동안 변하는 빛과 그림자,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 사람의 감정과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건축물의 외형을 보는 경험보다 실제 공간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감각에 관심을 두고 있다.

문훈은 심근영의 작업을 처음 접했을 때 자신의 건축보다 조용하고 정적으로 느껴졌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내부에 많은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문훈의 작업이 형태를 적극적으로 변형한다면 심근영의 건축에는 절제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두 건축가 모두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공간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으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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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건축 세계는 전시장 중앙의 자연 공간에서 만난다. 전시 배치도에 ‘그레이존(Gray Zone)’으로 표시된 구역에는 실제 흙과 식물이 놓여 있다. 작품 사이에 자연을 들여놓으면서 건축이 시작되는 땅과 인간의 관계를 함께 생각하도록 구성했다.

김 교수는 중앙의 흙과 식물을 두 건축가의 작업을 하나로 연결하는 요소로 설명했다. 문훈의 건축은 자유로운 상상과 형태의 변화가 두드러지고, 심근영의 건축은 자연과 생활공간의 관계를 세밀하게 다루지만 두 사람 모두 건축이 놓이는 장소와 인간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레이존에는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개념도 제시됐다. 토포필리아는 사람이 특정 장소에 느끼는 애착과 정서적 유대를 뜻한다. 문훈에게 영월 상동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고향이다. 심근영은 자연과 장소에 대한 경험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건축가의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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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훈은 상동의 광산시설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와 공장의 소리, 컨베이어와 거대한 기계설비, 경사지에 자리한 건물들은 어린 문훈에게 살아 움직이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당시의 기억은 건축가가 된 이후 새로운 형태와 움직임을 상상하는 바탕이 됐다.

심근영도 장소에 쌓인 시간과 기억을 건축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대지가 가진 특성과 주변 자연,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생활 방식은 설계 과정에서 서로 연결된다. 어린 시절의 자연 경험과 개인의 기억이 건축가의 작업에 은연중에 반영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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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중앙에 놓인 흙과 식물은 두 건축가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뤄 온 장소의 기억을 실제 자연물로 연결한다. 건축 드로잉과 설계 프로젝트 사이에 흙을 놓고, 천창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들이는 구성도 건축과 자연의 관계를 직접 경험하도록 한다.

천창을 통한 자연광은 하루 동안 같은 밝기로 유지되지 않는다. 햇빛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흙과 식물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달라진다. 전시장에 별도의 조명 장치를 설치해 일정한 밝기를 유지하는 방식과 달리 시간에 따른 자연광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구조다.

김 교수는 정오부터 오후 1시 사이를 중앙의 자연 공간을 경험하기 좋은 시간대로 꼽았다. 해당 시간에는 천창에서 내려오는 햇빛이 흙과 식물이 놓인 영역을 비춘다고 설명했다. 관람객이 자연광과 실제 흙을 함께 경험하면 전시가 다루는 장소와 자연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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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의 스크린과 흰색 전시실, 붉은색과 흰색의 주 전시실은 관람객의 이동에 따라 서로 다른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중앙의 흙과 식물은 구분된 전시 영역 사이에 놓여 있다.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을 소개하면서 관람객이 머무는 전시장 자체에도 빛과 자연, 이동의 순서를 적용한 구성이다.

전시장에는 건축상회와 미디어 구역, 2025 ECC 베니스 건축 전시 관련 구역, ‘Escape & Silence Hall’도 마련됐다. 건축 드로잉과 설계 프로젝트, 영상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완공된 건물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건축 구상을 함께 소개한다.

11월 15일까지 이어지는 ‘탈주와 침묵’에는 문훈의 영월 관련 프로젝트와 심근영의 주거·체류시설 작업이 전시돼 있다. 김종진 교수가 설명한 세 단계의 전시 동선은 2025년 베니스 건축 전시에서 출발해 올해 새롭게 마련한 주 전시실로 이어진다. 중앙에는 실제 흙과 식물이 놓였으며, 정오 무렵에는 천창에서 내려오는 햇빛이 자연 공간을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