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후임으로 16일 취임…뎀나 시대 남성복에 참여한 디자이너의 귀환

과장된 실루엣·정교한 테일러링·영국 서브컬처 결합…여성복·신발·가죽제품 재정비에 관심

[KtN 임우경기자]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가 영국 디자이너 마틴 로즈(Martine Rose)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했다.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가 물러난 자리에 런던의 거리 문화와 실험적인 남성복으로 명성을 쌓은 디자이너가 들어선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뎀나(Demna)와 함께 발렌시아가 남성복에 참여했던 로즈가 이제 브랜드 전체의 디자인을 맡게 됐다.

모기업 케어링(Kering)은 11월 6일 로즈의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취임일은 16일이며 근무지는 파리다. 전임 피치올리의 퇴임이 발표된 지 하루 만에 후임 인사가 확정됐다. 로즈는 발렌시아가 창립 이후 처음으로 브랜드 전체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다.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번 인사는 루카 드 메오(Luca de Meo) 케어링 최고경영자 취임 이후 이루어진 첫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선임이다. 케어링은 구찌(Gucci)의 회복과 함께 주요 브랜드의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10월에는 생로랑(Saint Laurent)의 앤서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와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의 션 맥기르(Seán McGirr)가 잇따라 퇴임했다. 발렌시아가 역시 경영 전략의 변화와 맞물려 새로운 디자이너를 맞았다.

마틴 로즈는 2007년 런던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설립했다. 축구와 레이브(rave), 레게(reggae), 클럽 문화 등 영국의 다양한 하위문화를 남성복에 담아 왔다. 전통적인 슈트와 셔츠, 스포츠웨어, 작업복을 익숙한 형태 그대로 사용하기보다 어깨와 허리, 소매의 비례를 바꾸고 서로 다른 의복의 요소를 결합하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로즈의 옷에는 런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취향과 생활방식이 배어 있다. 축구 유니폼과 트랙슈트, 넉넉한 재킷, 오래 입은 듯한 셔츠가 컬렉션의 소재가 된다. 스포츠웨어와 정장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기준을 넘나들고 남성복의 구조에 여성복의 요소를 더하는 작업도 이어 왔다. 정교한 재단을 바탕으로 익숙한 옷의 비율을 바꾸는 방식이 로즈 디자인의 특징이다.

발렌시아가와의 인연은 뎀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즈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남성복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발렌시아가가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스트리트웨어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던 시기였다. 뎀나가 럭셔리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흔드는 디자인으로 브랜드의 영향력을 넓히는 동안 로즈도 남성복의 비례와 형태에 관한 실험을 이어 갔다.

뎀나가 발렌시아가를 떠나 구찌로 옮긴 뒤에는 피치올리가 브랜드를 맡았다. 발렌티노(Valentino)에서 오랜 기간 오트쿠튀르(haute couture)를 발전시킨 피치올리는 화려한 색채와 드레이핑, 정교한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발렌시아가의 역사적인 조형성을 다시 강조했다. 2025년 7월 취임한 뒤 세 차례의 레디투웨어 컬렉션과 한 차례의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였으나 16개월 만에 물러났다.

피치올리가 쿠튀르의 정교함과 우아한 실루엣에 무게를 뒀다면 로즈는 일상적인 의복에서 출발한다. 재킷과 바지, 운동화처럼 익숙한 옷을 새로운 비율로 재구성하고 착용하는 사람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두 디자이너가 다뤄 온 의복과 표현 방식의 차이는 발렌시아가의 다음 컬렉션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발렌시아가의 창립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는 옷의 재단과 구조를 새롭게 해석한 디자이너였다. 몸을 조이지 않으면서도 풍성한 부피를 만드는 코트와 드레스, 독특한 어깨와 소매, 입체적인 실루엣으로 20세기 쿠튀르의 변화를 주도했다. 인체와 의복 사이의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지금도 브랜드의 중요한 디자인 자산으로 남아 있다.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로즈 역시 옷의 형태와 비례를 바꾸는 작업에 집중해 왔다. 접근하는 의복의 종류와 문화적 배경은 다르지만 재단과 구조를 통해 새로운 실루엣을 만든다는 점에서 발렌시아가의 조형적 전통과 연결할 여지가 있다. 남성복에서 발전시킨 비례에 대한 실험을 여성복과 오트쿠튀르로 넓히는 과정이 앞으로의 디자인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6 FW 컬렉션에는 로즈의 특징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가죽 코트에는 부피가 큰 인조 모피 칼라와 소매를 결합했고, 서로 다른 색과 질감의 나일론을 사용한 트랙 재킷에도 인조 모피를 연결했다. 소재를 단순히 덧대지 않고 의복의 구조에 맞춰 결합하면서 어깨와 소매의 부피를 강조했다.

울 슈트와 작업복 재킷, 바지, 셔츠의 허리에는 코르셋(corset)의 지지 구조를 적용했다. 허리 부분의 형태를 단단하게 잡아 주는 제작 방식과 느슨하게 떨어지는 재킷·셔츠를 대비시켜 실루엣의 차이를 만들었다. 남성용 셔츠에 레이스 장식을 더하거나 스포츠웨어에 전통 복식의 요소를 결합한 구성에서도 기존 의복의 구분을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발렌시아가의 남성복에서는 로즈의 경험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재킷의 어깨와 허리선, 바지의 길이와 폭, 셔츠와 아우터의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은 기존 고객에게도 익숙한 브랜드의 디자인 요소다. 로즈 특유의 테일러링과 스포츠웨어를 접목하면 뎀나 시절의 실험성을 이어 가면서도 다른 형태의 남성복을 제시할 수 있다.

신발 역시 관심을 모으는 분야다. 로즈는 나이키(Nike)와 협업한 'Shox MR4'에서 스포츠 신발의 구조에 굽이 높은 구두와 뮬의 형태를 결합했다. 운동화의 밑창과 앞코, 뒤축의 비례를 바꿔 기존 제품과 다른 실루엣을 만든 디자인이다.

발렌시아가는 독특한 형태의 스니커즈로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여 온 경험이 있다. 로즈가 나이키와의 협업에서 보여준 신발 디자인은 발렌시아가의 제품 개발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강점이다. 스포츠 신발의 기능적인 요소와 격식을 갖춘 구두의 구조를 결합하거나 기존 스니커즈의 비례를 새롭게 조정하는 방향을 예상할 수 있다.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기대는 케어링의 경영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케어링의 2026년 3분기 매출은 33억4500만 유로로 전년 동기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비교 가능한 기준에서는 1% 감소했다. 패션·가죽제품 부문 매출은 27억4300만 유로로 같은 기준 3% 줄었다.

발렌시아가는 가죽제품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판매 흐름을 유지했지만 레디투웨어와 신발에서는 부진을 겪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는 브랜드의 디자인을 정비하는 일과 함께 의류·신발의 판매를 회복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다.

여성복은 향후 성장을 위해 더욱 중요한 분야다. 케어링은 2030년까지 발렌시아가 여성 레디투웨어 사업을 두 배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남성복에서 명성을 쌓은 로즈가 여성복 컬렉션을 얼마나 폭넓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로즈는 2023년부터 남녀 모델이 함께 등장하는 컬렉션을 선보이며 여성복의 비중을 넓혀 왔다. 남성용 재킷과 셔츠의 구조를 여성복에 적용하고 남성과 여성의 의복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 디자인도 발전시켰다. 발렌시아가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드레스와 스커트, 코트, 정장 등 보다 폭넓은 제품군으로 확장할 수 있다.

여성복 사업의 확대에는 런웨이에서의 독창성과 실제 상품의 경쟁력이 함께 요구된다. 과장된 실루엣을 통해 브랜드의 개성을 드러내는 제품과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의류를 균형 있게 구성해야 한다. 고객이 원하는 착용감과 소재, 가격대까지 고려한 제품 개발이 판매 회복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트쿠튀르는 로즈에게 새로운 영역이다. 피치올리가 정교한 드레스 제작과 쿠튀르에 풍부한 경험을 갖춘 디자이너였다면 로즈는 독립 브랜드와 남성복, 스포츠웨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공방이 보유한 제작 기술을 활용해 어떤 형태를 선보일지는 새로운 컬렉션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로즈가 일상복에서 발전시킨 독특한 실루엣을 쿠튀르 제작 기술로 구현한다면 새로운 조합이 가능하다. 전통적인 코트와 재킷, 드레스의 구조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소재와 재단, 의복의 부피를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이다. 실제 방향은 취임 이후 선보일 작품을 통해 구체화될 예정이다.

가죽제품도 중요하다. 발렌시아가는 '시티(City)'와 '로데오(Rodeo)' 등 가방 제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케어링은 가죽제품을 브랜드의 성장 분야로 육성하고 있다. 의류와 신발의 판매가 부진한 상황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해 온 제품군이다.

로즈는 의복의 비율과 소재를 변형하는 데 익숙한 디자이너다. 가방에서도 손잡이와 몸체의 크기, 가죽의 질감, 수납 구조를 새롭게 조합하는 작업을 기대할 수 있다. 기존 인기 제품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는 방식이 사업 안정성과 브랜드의 변화를 함께 고려하는 방향이 될 수 있다.

로즈의 선임은 발렌시아가의 문화적 이미지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로즈는 런던의 클럽과 거리, 지역 커뮤니티를 패션쇼의 무대로 활용해 왔다. 쇼에 등장하는 인물과 음악, 장소를 의상과 함께 구성하며 패션이 실제 사람들의 생활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축구와 음악, 클럽 문화를 컬렉션의 소재로 삼아 온 경험은 젊은 소비자와의 관계를 넓히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기존 럭셔리 브랜드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물과 문화가 공존하는 방식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루카 드 메오는 로즈의 선임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세대와의 연결성과 현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 평가했다. 발렌시아가를 젊은 럭셔리 소비자와 연결하는 브랜드로 육성하려는 케어링의 전략이 로즈의 디자인 이력과 맞닿아 있다.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브랜드의 문화적 영향력을 넓히는 일은 상품 판매와도 연결돼 있다. 런웨이와 캠페인에서 주목받는 디자인이 실제 소비자의 구매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 럭셔리 하우스에서는 창작 방향뿐 아니라 제품 개발과 생산, 유통, 글로벌 매장 운영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독립 브랜드를 운영해 온 로즈에게도 새로운 환경이다. 자신의 브랜드에서는 비교적 작은 조직을 통해 컬렉션과 디자인 방향을 결정했다. 발렌시아가에서는 남성복과 여성복, 오트쿠튀르, 신발과 가방, 액세서리를 함께 총괄하게 된다. 기존의 독립적인 디자인 감각을 유지하면서 각 제품군의 특성과 글로벌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발렌시아가가 로즈를 선택한 배경에는 뎀나 시절 확보했던 젊은 고객층과의 관계를 다시 강화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로즈는 뎀나와 비슷하게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스트리트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표현 방식은 다르다. 뎀나가 럭셔리 산업의 관습과 대중문화를 강하게 대비시키는 작업을 발전시켰다면 로즈는 런던의 실제 인물과 일상복,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을 섬세하게 변형해 왔다.

로즈의 작업에서는 옷을 입는 사람의 취향과 개성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과장된 어깨와 허리선, 의도적으로 어긋난 비례, 서로 다른 용도의 옷을 결합하는 방식은 런웨이에서 독특한 인상을 만든다. 발렌시아가에서는 그러한 실험을 정교한 제작 기술과 결합해 보다 폭넓은 컬렉션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케어링은 2026년 들어 주요 브랜드의 제품 개발과 유통망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1~9월 동안 그룹 전체의 매장은 순감 기준 105개 줄었다.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비용과 유통 구조를 관리하는 방향이다.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발렌시아가 역시 새로운 컬렉션의 창의성과 사업 실적을 함께 평가받게 된다. 남성복의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 여성복을 확대하고, 가죽제품의 성장세를 이어 가며 의류·신발 판매를 회복해야 한다. 로즈가 선보일 디자인의 독창성만큼 실제 매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얻는 제품의 구성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마틴 로즈의 취임은 오는 16일이다. 첫 발렌시아가 컬렉션의 공식 공개 일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앞으로 선보일 의상에서는 런던의 거리 문화와 스포츠웨어, 실험적인 테일러링이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제작 기술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할지 주목된다.

케어링은 여성복과 가죽제품의 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발렌시아가는 의류·신발 부문의 판매 회복을 앞두고 있다. 로즈가 독립 브랜드에서 쌓아 온 디자인 경험을 대형 럭셔리 하우스의 제품 개발로 연결하는 과정이 새 체제의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109년 역사의 발렌시아가는 런던의 거리 문화와 정교한 의복 제작 기술을 함께 다뤄 온 디자이너에게 다음 컬렉션을 맡겼다.

저작권자 © KtN (K trendy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