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적 형태보다 자연과 인간의 경험에 주목…‘영성의 빛’과 ‘풍경이 흐르는 집’ 등 주거·체류 공간에 담긴 건축 철학

[전시 트렌드③] 심근영 ‘이방인의 외출’, 빛과 그림자로 읽는 건축의 시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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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박준식기자]빛은 하루 동안 끊임없이 달라진다. 아침과 낮, 저녁에 따라 밝기와 방향이 바뀌고 계절이 달라지면 실내로 들어오는 햇빛의 깊이와 그림자도 변한다. 건축가 심근영(Shim Keunyoung)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빛과 어둠, 자연의 변화를 건축에서 중요하게 다뤄 왔다. 건물의 외형을 보는 순간보다 공간에 머물면서 느끼는 감정과 기억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서울 구띠갤러리에서 11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탈주와 침묵(ESCAPE & SILENCE)’에서 심근영은 ‘이방인의 외출: 빛을 향하여(The Outsider’s Outing: Toward the Light)’를 선보인다. 건축가 문훈(Moon Hoon)이 고향 영월의 기억을 아홉 가지 미래 건축으로 구상한 ‘구운몽’을 소개하는 가운데, 심근영은 주택과 체류시설을 중심으로 빛과 자연,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의 관계를 다룬다.

심근영은 서울에서 건축스튜디오 아키텍츠601(ARCHITECTS601)을 운영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건축을 설계하며 눈에 보이는 건물의 형태를 넘어 공간 안에서 경험하는 감각과 정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건축물의 시각적인 인상보다 대지가 가진 특성과 거주자의 생활, 자연의 변화를 함께 고려하는 작업이다.

[전시 트렌드③] 심근영 ‘이방인의 외출’, 빛과 그림자로 읽는 건축의 시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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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영은 건축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면서 시각적 이미지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공간 인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건물의 외형이나 눈에 띄는 형태만으로 공간을 이해하기보다 사람이 실제로 머무는 동안 경험하는 감각에 주목하게 됐다는 것이다. 자연광과 그림자, 하루의 시간과 계절의 변화가 생활 속에서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도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부분이다.

특히 빛은 심근영이 건축을 구상할 때 중요하게 다루는 자연의 요소다. 햇빛은 건축물의 내부를 밝히는 역할뿐 아니라 공간의 깊이와 분위기를 달라지게 한다. 같은 장소에서도 빛이 들어오는 시간에 따라 사람의 경험이 달라진다. 심근영은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하는 조건에서 공간이 지닌 고유한 감각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이방인의 외출’에는 빛을 환대와 연결하고 어둠을 침묵에 비유한 생각이 담겨 있다. 심근영은 빛이 없으면 어둠도 인식할 수 없고, 어둠이 없다면 빛의 존재도 온전히 느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두 요소는 서로를 배제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자연의 현상이다.

[전시 트렌드③] 심근영 ‘이방인의 외출’, 빛과 그림자로 읽는 건축의 시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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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영은 “빛과 그림자는 하나의 언어”라는 표현으로 두 요소의 관계를 설명했다. 밝은 공간이 주는 개방감과 그림자가 만드는 고요함은 서로 다른 감각이지만 하나의 건축 안에서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침묵 역시 단순히 소리가 없는 상태나 어두운 공간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이 외부의 자극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과 주변 환경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상태와 연결된다.

빛과 어둠에 대한 관심은 심근영의 주거 프로젝트에서도 이어진다. 전시에는 신봉동 단독주택 ‘영성의 빛(Light of Spirituality)’, 방배동 3대 주택 ‘빛의 조각(Piece of Light)’, 이목동 단독주택 ‘붉고 흰 빛(Red and White Light)’이 포함됐다. 세 프로젝트는 모두 주거를 대상으로 하면서 빛을 작품명에 직접 사용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된 ‘영성의 빛’은 심근영이 추구하는 건축을 살펴볼 수 있는 작업이다. 심근영은 주택을 설계할 때 건축가의 생각만으로 공간을 결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의 생활 방식과 요구, 대지가 가진 조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시 트렌드③] 심근영 ‘이방인의 외출’, 빛과 그림자로 읽는 건축의 시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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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빛’에 관한 인터뷰에서는 주거공간에 담긴 종교적 경험과 거주자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심근영은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집에서 개인의 신앙과 내면적 경험이 갖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지의 특성과 빛, 그림자를 함께 고려하면서 주택 안에서 서로 다른 감각을 경험하도록 구상한 작업이다.

주택은 생활에 필요한 공간을 배치하는 것에서 설계가 시작되지만 거주자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내부 구성이 달라진다. 심근영은 건축가의 조형적 표현과 실제 거주자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을 중요하게 다뤘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과 개인의 정서, 주변 자연이 설계 과정에서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빛의 조각’은 2021년부터 진행 중인 방배동 3대 주택 프로젝트다. 하나의 주택에 여러 세대의 생활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가족의 관계와 생활 방식이 중요한 설계 조건이 된다. ‘붉고 흰 빛’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한 이목동 단독주택이다. 서로 다른 주거 조건을 가진 프로젝트들이지만 빛을 통해 공간을 이해하려는 관심은 작품명에서도 이어진다.

[전시 트렌드③] 심근영 ‘이방인의 외출’, 빛과 그림자로 읽는 건축의 시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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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영은 주택을 설계할 때 건축물이 놓이는 땅의 특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지의 형태와 주변 환경, 그곳에 축적된 시간은 건축이 시작되는 조건이다. 같은 용도의 집이라도 땅의 위치와 자연환경, 거주자의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 설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심근영은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대지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강조했다. 땅에는 오랜 시간 쌓인 역사와 기억이 있고, 건축가는 그곳에서 생활할 사람의 요구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물이 주변 풍경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사람이 내부에서 외부 자연을 어떻게 경험할지도 대지의 조건과 연결된다.

[전시 트렌드③] 심근영 ‘이방인의 외출’, 빛과 그림자로 읽는 건축의 시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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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의 스튜디오 하우스 ‘풍경이 흐르는 집(Landschaft)’은 창작 활동과 일상생활을 함께 다룬 프로젝트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진행된 작업으로, 도예가의 작업실과 주거공간을 하나의 건축 안에서 구성했다. 작품을 제작하는 시간과 생활하는 시간이 같은 장소에서 이어지는 만큼 일반적인 주택과 다른 조건을 갖는다.

창작자의 주택에서는 작업공간과 생활공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작업을 위한 기능적인 조건과 일상생활의 편안함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자연광과 주변 환경도 두 활동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심근영이 추구하는 자연과 생활의 관계를 창작자의 작업 환경까지 넓혀 살펴볼 수 있는 프로젝트다.

판교 단독주택 ‘풍경 속의 집(A House in the Landscape)’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됐다. 가평 단독주택 ‘평안재’는 2022년 작업으로 소개된다. 주택이 자리한 지역과 대지의 조건은 다르지만 자연과 가까운 생활공간을 설계한다는 관심이 이어진다.

[전시 트렌드③] 심근영 ‘이방인의 외출’, 빛과 그림자로 읽는 건축의 시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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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독채 스테이와 카페라운지로 구성된 ‘경주의 시간(Time of Gyeongju)’은 주거와 체류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는 작업이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된 프로젝트로, 일정 기간 머무는 방문객을 위한 공간을 다룬다.

주택에서는 가족이나 개인의 생활이 오랜 시간 반복된다. 스테이에서는 방문객이 낯선 장소에 머물면서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낸다. 거주 기간과 공간을 사용하는 목적이 달라지면 사람의 움직임과 생활 방식도 달라진다. 심근영은 주택과 스테이 등 여러 건축 유형을 통해 사람이 머무는 장소의 조건을 살펴왔다.

설계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전시에 포함됐다. 서초 레지던스 오피스텔 타운 ‘오큘러스(Oculus)’, 여수 관광숙박시설 및 카페라운지, 화성 단독주택 ‘액시스 하우스(Axis-House)’, 도예가의 스튜디오 하우스와 연결된 시니어 하우스 등이 2026년 진행 중인 작업으로 소개된다. 단독주택에서 숙박시설과 복합용도 건축까지 서로 다른 생활 조건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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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영의 작업에서 자연은 건축물이 놓이는 배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는 시간에 따라 변하고, 바람과 계절은 사람이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심근영은 돌과 나무, 빛 같은 물리적인 요소뿐 아니라 시간과 기억이 더해졌을 때 한 장소에 대한 경험이 깊어진다고 설명했다.

자연을 닮은 건축에 대한 생각도 여기에서 이어진다. 심근영은 사람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는 장소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인위적인 표현을 앞세우기보다 자연과 가까운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건축물의 외형에 특정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보다 사람이 오래 머물며 생활하는 공간의 성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심근영은 2025년 베니스 유럽문화센터(ECC)의 국제 건축 전시에도 초청 건축가로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여성건축가협회와 한국실내건축가협회 활동을 병행하며 주거와 체류시설 등을 설계해 왔다. 베니스에서의 전시 경험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자신의 작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전시 트렌드③] 심근영 ‘이방인의 외출’, 빛과 그림자로 읽는 건축의 시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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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영은 공동 전시에 참여한 문훈의 건축에서도 장소에 대한 기억과 자연의 영향을 발견했다. 문훈이 어린 시절을 보낸 강원도 영월 상동의 광산시설을 미래 건축으로 구상했다면, 심근영은 자연 속에서 생활했던 개인적인 경험이 건축에 영향을 미쳐 왔다고 설명했다. 두 건축가가 서로 다른 형태의 작품을 만들면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과 장소에 대한 애착을 공유한다는 점에 관심을 나타냈다.

심근영은 건축가의 기억이 설계에 반영되는 과정이 반드시 계산적이거나 논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개인의 경험과 정서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작업에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대지의 특성과 거주자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 역시 심근영의 여러 프로젝트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이방인의 외출: 빛을 향하여’는 건축을 시각적인 형태로만 이해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사람이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에 관심을 기울인다. 밝음과 어둠, 자연과 생활, 물리적인 재료와 개인의 기억이 주거와 체류시설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살펴보는 작업이다.

[전시 트렌드③] 심근영 ‘이방인의 외출’, 빛과 그림자로 읽는 건축의 시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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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띠갤러리에는 ‘영성의 빛’과 ‘빛의 조각’, ‘풍경이 흐르는 집’, ‘경주의 시간’ 등 심근영의 주요 프로젝트가 전시돼 있다. 심근영은 앞으로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건축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람이 머무는 동안 경험하는 빛과 그림자, 대지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은 심근영이 주택과 체류시설을 설계하면서 계속 다루고 있는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