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3조 원대 외형 뒤 무너진 신뢰 자본…신세계·정용진 리스크까지 번진 프리미엄 브랜드의 추락
[KtN 박준식기자]스타벅스의 몰락은 매장 문이 닫히는 장면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2026년 5월 18일 오전, 스타벅스코리아 누리집에 올라온 ‘탱크데이’라는 한 줄의 문구가 브랜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프리미엄의 기반을 흔들었다. 홍보물에는 ‘5/18’ 날짜와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도 함께 배치됐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전두환 신군부의 탱크 진압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문장이 한 화면에 놓였다. 스타벅스가 팔려던 것은 텀블러였지만, 소비자가 마주한 것은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읽지 못한 브랜드의 민낯이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여전히 큰 회사다. SCK컴퍼니의 2025년 매출은 3조2380억 원으로 전년보다 4.45% 늘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1730억 원으로 9.29% 줄었고, 당기순이익도 감소했다. 매출 규모는 유지됐지만 수익성은 후퇴했다. 외형 성장과 브랜드 신뢰는 같은 말이 아니다. 많은 매장, 긴 대기 줄, 모바일 주문 건수, 시즌 굿즈 판매량이 역사 인식의 결핍까지 가려주지는 못했다.
스타벅스가 한국 시장에서 누려온 힘은 커피 맛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소비자는 스타벅스에서 음료 한 잔을 사면서 일정한 공간 경험, 안전한 이미지, 세련된 취향, 글로벌 브랜드가 주는 심리적 보증을 함께 소비했다. 비싼 가격이 받아들여진 배경도 바로 그 신뢰였다. ‘탱크데이’ 논란은 가격표가 아니라 브랜드 자격을 건드렸다. 소비자는 “비싸도 스타벅스”라고 말해온 이유를 다시 묻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비판은 사태의 성격을 소비자 불만에서 공동체 가치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이 대통령은 해당 이벤트를 두고 “공동체와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행태라고 비판했고, 도덕적·행정적·법적·정치적 책임을 언급했다. 특정 기업의 판촉 문구가 대통령의 공개 질타 대상이 된 순간, 스타벅스 사태는 마케팅 실패를 넘어 기업의 역사 인식과 사회적 책임을 묻는 사건으로 바뀌었다.
신세계그룹의 대응은 빨랐다. 정용진 회장은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즉시 해임하도록 했고, 담당 임원 해임과 관련 임직원 징계 절차도 예고됐다. 스타벅스는 공식 사과문을 내고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그러나 대표 해임은 조직 내부의 책임자를 자르는 조치일 뿐, 브랜드가 잃어버린 사회적 신뢰를 되돌리는 복원 장치는 아니다. 사과문은 사건을 멈출 수 있어도, 소비자 기억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정용진 회장의 과거 행보는 이번 논란을 더 크게 만들었다. 정 회장은 과거 SNS에서 ‘멸공’ 표현을 반복해 논란을 불렀고, 2023년에는 극우 성향으로 알려진 기독교 행사 ‘빌드업코리아’에 축하 영상을 보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MBC는 2025년 해당 행사에 스타벅스 커피가 후원됐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도 빌드업코리아 행사와 정 회장, 스타벅스 커피 제공 논란을 다뤘다. ‘탱크데이’가 단순 실수로 소비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 번의 문구 오류가 아니라, 총수의 정치적 이미지와 신세계그룹의 브랜드 운영 문화가 함께 소환됐다. 다만 정 회장이 해당 이벤트를 직접 기획하거나 지시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스타벅스코리아의 지배구조도 논란의 배경에 놓여 있다. 미국 스타벅스 본사는 2021년 한국 사업 지분 50%를 매각했고, 이마트는 추가 지분 17.5%를 인수해 스타벅스코리아 지분 67.5%를 보유하게 됐다. 나머지 32.5%는 싱가포르투자청 계열이 인수했다. 한국 스타벅스는 글로벌 간판을 달고 있지만, 운영의 핵심 책임은 신세계그룹 쪽으로 넘어와 있다. 소비자가 이번 사태를 미국 본사의 실수보다 신세계와 정용진 리스크로 읽는 이유다.
브랜드의 추락은 재무제표보다 먼저 소비자 기억 속에서 일어난다. 매출이 남아 있어도 프리미엄은 사라질 수 있다. 매장이 붐벼도 존중은 잃을 수 있다. 스타벅스의 문제는 커피를 더 팔 수 있느냐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스타벅스라는 이름에 예전처럼 신뢰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느냐에 놓여 있다. 5·18 기념일에 ‘탱크데이’를 올린 브랜드라는 기억은 할인 쿠폰이나 신제품 출시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스타벅스의 몰락이라는 표현은 폐업이나 매출 붕괴를 뜻하지 않는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공동체의 역사와 상처를 읽지 못했을 때,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빠르게 품격을 잃는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스타벅스는 대표를 바꿨고, 신세계그룹 총수는 사과했다. 그러나 추락한 브랜드 가치는 사과문 한 장으로 반등하지 않는다. 남은 쟁점은 스타벅스가 커피를 얼마나 더 팔 수 있느냐가 아니다. 한국 소비자가 다시 스타벅스를 ‘믿고 비싸게 사는 브랜드’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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