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000만~4000만 달러 기대가에서 2360만 달러 낙찰로 조정된 고가 경매의 현실
[KtN 임민정기자]에곤 실레(Egon Schiele)의 1909년작 ‘Danaë’가 런던 소더비 루이스 컬렉션 세일에서 수수료 포함 1790만 파운드, 2360만 달러에 낙찰됐다. 루이스 컬렉션은 이날 25점 가운데 24점이 팔리며 2억9630만 파운드, 3억9260만 달러를 기록했고, 이어 열린 모던·컨템퍼러리 이브닝 세일까지 더한 소더비의 밤 총액은 5억2070만 달러에 이르렀다. 숫자는 기록적이었지만, 실레의 가격은 고가 미술시장이 여전히 작품별 조건을 차갑게 따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검은 장식적 배경 앞에 웅크린 인물은 붉은 머리와 옅은 피부색으로 먼저 시선을 붙든다. 신체는 편안하게 누운 자세가 아니라 좁은 공간 안에서 비스듬히 접혀 있다. 팔과 다리의 선은 단단하게 조여 있고, 어두운 문양은 인체 주변을 감싸면서 몸의 윤곽을 더 날카롭게 밀어낸다. 실레 특유의 인체 표현은 매끄러운 이상화와 거리를 둔다. 구부러진 자세, 드러난 관절, 긴장된 선이 작품의 힘을 만든다.
‘Danaë’의 낙찰가는 루이스 컬렉션 전체 결과와 따로 읽어야 한다. 작품은 이번 세일에서 상한 추정가 1800만 파운드에 가까운 1790만 파운드에 거래됐다. 달러 기준 최종가는 2360만 달러다. 낮은 가격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2017년 소더비 뉴욕 주요 인상파·모던 세일에서 3000만~4000만 달러 추정가로 나왔다가 철회된 이력이 있다. 9년 전 기대가와 비교하면 이번 거래는 가격을 낮춰 시장과 다시 만난 결과에 가깝다.
루이스 컬렉션의 밤은 외형상 강했다. 모딜리아니의 ‘Nu assis au collier’는 6390만 달러에 팔리며 컬렉션 최고가를 기록했고,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Bildnis Gertrud Loew (Gertha Felsőványi)’는 4790만 달러에 낙찰됐다.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의 ‘Sleeping by the Lion Carpet’도 3880만 달러를 기록했다. 상위 작품은 모두 검증된 작가, 강한 주제, 장기 보유 이력, 컬렉션 서사를 앞세웠다.
실레의 ‘Danaë’도 미술사적 이름값과 조형적 강도를 갖춘 작품이다. 1909년이라는 제작 시기, 신화적 제목, 신체를 밀도 있게 다룬 구성은 경매장에서 충분히 설명 가능한 요소였다. 다만 구매자는 작가명만으로 과거의 기대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낙찰은 성사됐지만, 가격은 조정됐다. 고가 시장에서 “팔렸다”는 사실과 “과거 기대를 넘어섰다”는 평가는 다른 말이다.
미판매작 1점도 같은 흐름 안에 놓인다. 루이스 컬렉션 25점 가운데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1880년작 한 점은 300만~400만 파운드 추정가에서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전체 낙찰률은 높았고 총액은 컸지만, 구매자는 모든 작품을 같은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록적인 세일 안에서도 가격이 맞지 않으면 거래는 멈췄고, 과거 기대가가 높았던 작품도 시장의 현재 눈높이에 맞춰야 했다.
보증 없는 판매 구조는 이런 가격 감각을 더 분명하게 드러냈다. 루이스 컬렉션 25점에는 보증이 붙지 않았다. 고가 경매에서 보증은 작품이 일정 금액 이상 팔리도록 경매사나 제3자가 위험을 나눠 갖는 장치다. 보증 없는 세일은 경매장이 작품 자체의 수요와 컬렉션의 힘으로 가격을 만들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지만, 개별 작품의 가격은 구매자들이 현장에서 다시 매겼다.
단일 컬렉션 세일의 힘도 분명했다. 작품 한 점을 따로 내놓을 때보다, 한 컬렉터가 오랫동안 구축한 소장품을 묶어 제시할 때 경매장은 더 강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구매자는 작품의 이미지뿐 아니라 작품이 머문 컬렉션의 이름, 보유 기간, 함께 제시된 다른 작품과의 관계까지 함께 본다. 루이스 컬렉션은 이런 방식으로 모딜리아니, 클림트, 프로이트, 실레를 하나의 밤에 묶었다.
그러나 단일 컬렉션이라는 이름이 모든 작품의 가격을 같은 방향으로 밀지는 못했다. 모딜리아니는 1995년 1240만 달러에 매입된 뒤 6390만 달러에 팔리며 강한 가격 변화를 만들었다. 클림트 초상은 희소한 전신 초상과 전시 이력, 정리된 출처를 앞세워 추정가를 넘어섰다. 실레는 낙찰됐지만 과거 기대가보다 낮은 가격대에서 거래됐다. 같은 컬렉션, 같은 밤, 같은 경매장 안에서도 가격의 논리는 작품마다 달랐다.
고가 미술품은 감상 대상이면서 동시에 유동성이 낮은 자산이다. 경매장에 나오기 전까지는 시장 가격이 눈에 보이지 않고, 거래가 성사될 때마다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진다. 수수료, 세금, 보험, 보관, 운송, 환율, 장기 보유 비용까지 고려하면 낙찰가와 실제 경제성 사이에는 간격이 생긴다. 실레의 ‘Danaë’는 바로 그 간격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기록적인 밤에 팔렸지만, 가격은 과거의 기대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한국 미술시장에도 남는 대목은 낙찰 총액보다 가격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해외 블루칩 경매의 고가 기록은 국내 작품 가격을 곧장 끌어올리는 신호가 아니다. 국제 시장에서 가격을 견디려면 작가명과 유행만으로는 부족하다. 전시 이력, 기관 소장, 문헌화, 출처 정리, 보존 상태, 장기 소장 이력이 함께 쌓여야 한다. 루이스 컬렉션의 성공은 돈이 다시 들어왔다는 사실보다, 돈이 들어갈 작품의 조건이 더 분명해졌다는 사실에 가깝다.
실레의 ‘Danaë’는 루이스 컬렉션 세일의 성공을 흔드는 작품이 아니라, 성공의 안쪽을 읽게 하는 작품이다. 런던의 밤은 5억2070만 달러라는 기록을 만들었고, 최상위 자금의 존재를 확인했다. 동시에 과거 3000만~4000만 달러 기대가를 가졌던 실레 작품은 2360만 달러에 거래됐다. 고가 미술시장은 다시 움직였지만, 가격은 더 엄격해졌다. 앞으로 경매장에서 힘을 받을 작품은 유명 작가의 이름만 단 작품이 아니라, 출처와 시간, 시장의 현재 눈높이를 함께 통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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