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샤넬의 동화책에서 출발한 2026/27 가을·겨울 컬렉션, 환상보다 현실의 여성복에 놓인 무게
[KtN 신미희기자]2026년 7월 7일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샤넬 2026/27 가을·겨울 오트쿠튀르(haute couture·고급 맞춤복) 쇼는 작은 동화책을 든 모델의 체크 수트로 시작됐다.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가 샤넬에서 선보인 두 번째 오트쿠튀르 컬렉션은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의 서가에서 발견된 동화책 ‘Les Fées, contes des contes’와 ‘잭과 콩나무’의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블라지는 동화의 서사를 샤넬의 재단, 공방 기술, 여성복의 현실성 안으로 끌어들였다.
오프닝 수트는 거대한 콩나무와 꽃으로 꾸민 무대보다 먼저 컬렉션의 방향을 드러냈다. 재킷과 스커트는 샤넬 수트의 익숙한 형식을 유지했지만, 구성은 단단하게 닫히지 않았다. 얇은 소재가 재킷 안쪽에서 흘러나왔고, 스커트 아래에는 투명한 층이 겹쳤다. 손에 든 작은 책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컬렉션 전체의 서문에 가까웠다. 블라지는 동화의 세계를 의상 위에 장식처럼 얹지 않고, 샤넬 수트의 표면과 구조 안으로 옮겼다.
오프닝 수트에는 마법의 콩을 떠올리게 하는 기퓌르 레이스(guipure lace)와 가벼운 실크 무슬린(silk mousseline)이 쓰였다. 타이외르(tailleur), 플루(flou), 갈롱(galon) 공방의 기술도 컬렉션을 관통했다. 타이외르는 재킷과 수트처럼 구조를 세우는 영역, 플루는 흐르는 드레스와 부드러운 실루엣을 다루는 영역, 갈롱은 샤넬 재킷 가장자리의 장식적 트리밍과 맞닿아 있다. 이번 컬렉션에서 공방의 언어는 동화적 상상력을 실제 착용 가능한 옷으로 바꾸는 장치로 쓰였다.
샤넬 수트는 컬렉션 초반의 중심축이었다. 체크와 트위드, 짧은 재킷, 무릎선을 지나는 스커트가 이어졌고, 익숙한 하우스의 기호는 이전보다 가볍고 유연한 비율로 조정됐다. 블라지가 다시 꺼낸 수트는 보존된 유산처럼 고정된 형식이 아니었다. 걷고, 접히고, 흔들리는 몸을 전제로 한 옷이었다. 가브리엘 샤넬이 남성복의 실용성과 활동성을 여성복 안으로 끌어들였던 역사는 이번 컬렉션에서 다시 현재형으로 돌아왔다.
중반부로 넘어가며 콩나무와 꽃, 동물과 작은 사물의 이미지는 의상의 표면으로 번졌다. 플로럴 프린트(floral print), 깃털 장식(feather work), 비즈워크(beadwork), 입체 자수는 동화책의 삽화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질감으로 바꿨다. 밝은 장식성과 풍성한 질감은 샤넬의 트위드를 단정한 격자 안에만 두지 않았다. 공방 기술은 화려함을 과시하는 수단보다 이야기가 옷 안팎으로 스며드는 방식에 가까웠다.
구두 굽을 타고 오르는 덩굴, 곰 모양 미노디에르(minaudière), 오리에서 백조로 변하는 단추, 손으로 그린 실크 안감은 동화의 모티프가 액세서리와 의상의 안쪽까지 확장됐음을 말한다. 메모와 참, 일상 사물이 포켓과 체인 주변에 쌓이는 구성도 등장했다. 동화는 무대 배경에 머물지 않고, 입는 사람만 가까이 볼 수 있는 안감과 포켓 안쪽으로 들어갔다.
붉은 시스루(see-through) 드레스는 컬렉션 중반의 흐름을 강하게 전환했다. 얇은 레이어링(layering), 몸을 따라 흐르는 실루엣, 선명한 색은 샤넬 오트쿠튀르를 레드카펫용 드레스의 형식보다 움직임의 문제로 옮겼다. 시스루 레이어, 풀어 입은 실루엣, 흐르는 스커트, 라일락과 민트 계열의 부드러운 색조는 이번 쇼의 주요 흐름으로 제시됐다. 블라지의 쿠튀르는 판타지를 실제 생활과 분리하지 않고, 몸이 움직이는 방식 안에서 다뤘다.
옷의 안쪽 세계도 컬렉션의 중요한 축이었다. 재킷 안감에는 손으로 그린 이미지와 메모 형태의 장식이 들어갔고, 포켓과 체인 주변에는 작은 물건들이 더해졌다. 오트쿠튀르는 흔히 외부에 보이는 장식과 희소성으로 읽히지만, 이번 샤넬 컬렉션은 착용자만 알 수 있는 안쪽 세계를 세밀하게 만들었다. 관객에게 보이는 실루엣과 입는 사람의 생활을 품은 포켓이 같은 무게로 다뤄졌다.
화이트 드레스는 오트쿠튀르 쇼가 오래 다뤄온 브라이덜 코드와 맞닿아 있었다. 얇은 베일, 부드러운 볼륨, 흰색의 의례성은 컬렉션 후반부에 익숙한 기대를 만들었다. 블라지는 흰 드레스를 결말로 두지 않았다. 검은 드레스가 피날레의 무게를 가져갔고, 컬렉션은 결혼식의 환상보다 스스로 선택한 삶의 형식에 가까운 이미지로 닫혔다.
피날레의 검은 드레스는 블라지가 이번 컬렉션에서 세우려 한 샤넬을 가장 선명하게 남겼다. 장식의 양보다 선의 긴장으로 몸을 잡았고, 무대적 환상보다 절제된 태도에 무게를 뒀다. 전통적인 웨딩드레스 피날레 대신 검은 드레스가 마지막에 놓이면서, 가브리엘 샤넬의 독립성과 샤넬의 검은 드레스 유산은 동화적 무대의 결말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세웠다.
‘Gaby and the Beanstalk’로 읽힌 이번 쇼는 동화를 장식으로 소비한 컬렉션이 아니었다. 콩나무는 기퓌르 레이스의 표면으로 옮겨졌고, 꽃은 프린트와 자수, 깃털과 비즈로 흩어졌다. 동물과 작은 사물은 미노디에르, 단추, 구두, 안감, 포켓 안으로 들어갔다. 동화책은 모델이 든 작은 책에 머물지 않고, 샤넬 수트와 드레스, 움직이는 몸과 착용자의 일상으로 이어졌다.
마티유 블라지의 두 번째 샤넬 오트쿠튀르는 창립자의 신화를 공주 이야기로 포장하지 않았다. 가브리엘 샤넬의 삶에서 꺼낸 독립성, 이동성, 실용성은 수트의 재단과 드레스의 흐름, 검은 피날레 드레스의 절제로 정리됐다. 샤넬의 다음 흐름은 해당 언어가 레디투웨어와 액세서리, 공방 기술의 실제 제품군으로 이어지는 방식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