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 2000여 조각과 제작 기간 10개월 사이

쓸모를 넘어선 아름다움이 지위의 과시로 기우는 럭셔리의 경계

Louis Vuitton Steers Its Trunk-Making Heritage Under the Sea With the High Trunks. 사진=Louis Vuitt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Louis Vuitton Steers Its Trunk-Making Heritage Under the Sea With the High Trunks. 사진=Louis Vuitt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채빈기자]루이 비통은 자개 2000여 조각을 잘라 트렁크에 심었다. 산호초와 열대어는 35종이 넘는 가죽, 1500여 개의 조각으로 만들었다. 투명 아크릴에는 모노그램을 새기고 은색 크롬을 두 차례 입혔다. 완성품을 받으려면 약 10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가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비쌀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누구나 안다. 가격표가 나오기 전에 이미 비싸야 할 이유가 충분히 제시됐기 때문이다. 재료의 희귀성, 손으로 자른 조각의 수, 여러 공방을 거치는 제작 과정, 10개월이라는 시간이 가격의 자리를 먼저 채웠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가 2027 봄·여름 남성 컬렉션에서 선보인 ‘하이 트렁크(High Trunks)’는 여행가방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물건이다. 짐을 넣고 이동하는 기능만 따지면 자개 2000여 조각도, 크롬으로 만든 파도도 필요하지 않다. 하이 트렁크의 값은 기능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된다.

럭셔리는 본래 필요 이상의 세계에 속한다. 추위를 막는 데 필요한 수준을 넘어선 옷, 시간을 확인하는 기능을 넘어선 시계, 물건을 담는 용도에서 벗어난 가방이 럭셔리 산업을 이루고 있다. 불필요한 것에 노동과 시간을 쏟고, 쓸모로 환산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인간의 오래된 문화이기도 하다.

모든 낭비가 천박한 것은 아니다.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생존에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왕실의 태피스트리와 옻칠 공예, 자개장과 청화백자도 효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은 필요가 끝난 뒤에도 만들었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술과 공예가 태어났다.

하이 트렁크에 들어간 장인의 노동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색과 결이 다른 가죽을 골라 1500여 조각으로 자르고, 자개 2000여 조각을 훈연한 낙엽송에 끼워 넣는 작업에는 오랜 숙련이 필요하다. 아크릴을 파도 형태로 깎고 크롬을 고르게 입히는 과정도 단순한 장식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교하게 만든 물건이 모두 품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가치 판단을 대신하지 못한다. 조각이 많다는 사실은 작업량을 알려줄 뿐 아름다움을 증명하지 않는다. 제작 기간이 길다는 사실도 품질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복잡함과 아름다움, 비쌈과 고귀함 사이에는 언제나 간격이 남는다.

하이 트렁크의 럭셔리 마케팅은 바로 그 간격에서 작동한다. 자개 2000여 조각이라는 숫자는 소비자가 제품을 보기 전에 경외심부터 갖게 한다. 10개월이라는 제작 기간은 불편함보다 희소성을 떠올리게 한다. 선택된 매장과 고객 행사를 통한 주문은 구매를 경제 행위가 아니라 자격 심사에 가까운 경험으로 바꾼다.

소비자는 트렁크만 사지 않는다. 트렁크를 주문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지위, 10개월을 기다릴 수 있는 여유, 다른 사람이 쉽게 갖지 못한 물건을 먼저 선택했다는 만족까지 함께 산다.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말한 과시적 소비는 비싼 물건을 드러내는 행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당장 쓸 필요가 없는 물건을 사고, 생산성을 따지지 않는 시간을 누리며, 경제적 제약에서 벗어나 있음을 나타내는 행위도 포함한다. 하이 트렁크의 10개월은 단순한 납기가 아니다. 기다릴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재력의 표식으로 만든다.

일반 소비자는 배송이 늦으면 주문을 취소한다. 생필품과 업무용품은 필요한 시점에 도착해야 가치가 있다. 하이 트렁크는 늦게 도착할수록 특별해진다. 물건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사람만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른 배송에서 배제된 제품이 아니라 빠른 배송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위한 제품이다.

줄을 세우는 명품 마케팅도 같은 원리에서 움직인다. 줄은 제품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이면서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다. 앞에 선 사람은 곧 소유할 사람이고, 뒤에 선 사람은 아직 허락받지 못한 사람이다. 줄이 길어질수록 제품의 실용적 가치는 달라지지 않지만 사회적 가치는 높아진다.

르네 지라르(René Girard)가 설명한 모방적 욕망은 타인이 욕망하는 대상을 따라 욕망하는 인간의 성향을 짚는다. 사람들은 물건 자체만 보고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고, 쉽게 구하지 못하며, 누군가는 이미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보면서 욕망을 키운다.

명품 매장 앞의 줄과 비공개 주문 명단은 욕망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공급 부족은 제품의 인기를 증명하고, 긴 대기 시간은 이미 많은 사람이 원한다는 인상을 준다. 소비자는 물건을 얻기 위해 줄을 서지만, 줄이 있기 때문에 물건을 더 원하기도 한다.

하이 트렁크는 매장 앞에 대중적인 줄을 만드는 제품은 아니다. 일부 매장과 ‘Savoir Rêver’ 고객 행사를 통해 주문받는다. 눈에 보이는 줄 대신 고객 등급과 초청, 개별 상담, 제작 순번이 자리를 대신한다. 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조용하고 폐쇄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폐쇄된 판매 방식은 가격보다 접근 자격을 앞세운다. 돈이 있다고 바로 살 수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브랜드와 관계를 맺은 사람에게 먼저 열리는 세계를 만든다. 럭셔리는 물건의 소유보다 문턱을 통과했다는 경험을 판다.

문턱이 높을수록 구매자는 자신의 선택을 쉽게 의심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 얻은 물건에는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10개월의 기다림은 제품의 희소성을 높이는 동시에 구매자가 자신의 소비를 스스로 정당화하도록 만든다. 기다린 시간이 길수록 지불한 가격도 합당하다고 여기기 쉬워진다.

루이 비통에는 주문을 받은 뒤 생산한다는 실질적인 이익이 돌아간다. 비싼 재료와 긴 노동시간을 투입한 트렁크를 미리 여러 점 만들어 둘 필요가 없다. 판매되지 않은 제품이 재고로 남을 위험도 낮아진다. 생산의 느림은 기업의 약점이지만 주문 제작과 희소성이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판매 수단으로 바뀐다.

소비자는 기다리고, 브랜드는 이미 정해진 주문량을 만든다. 부담과 이익의 배분은 다르지만 10개월은 장인정신이라는 한 단어로 묶인다. 제작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소비자에게 유리한 계약이나 더 긴 품질보증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다림 자체가 품질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뿐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상품물신성을 말한 지 150년이 넘었다. 사람의 노동으로 만든 상품이 시장에 나오면 노동의 관계는 사라지고 물건 자체가 신비로운 가치를 지닌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설명이다. 하이 트렁크는 장인의 노동을 적극적으로 말하지만 노동의 조건보다 노동의 양을 과시한다. 누가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일했는지보다 가죽과 자개의 조각 수가 앞선다.

2000여 개라는 숫자는 장인을 드러내는 듯하면서도 가린다. 소비자가 기억하는 것은 제작자의 이름과 노동 조건이 아니라 조각의 개수다. 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노동을 존중하는 설명보다 제품 가격을 높이는 인증표처럼 사용된다.

하이 트렁크의 바다도 비슷한 모순을 안고 있다. 산호초와 열대어, 조개와 파도는 가죽과 자개, 파이톤, 아크릴, 크롬으로 표현됐다. 해양생태계를 제품 표면에 옮겼지만 각 소재가 자연과 맺는 관계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자개에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조달했다’는 설명이 붙었다. 원산지와 판정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다. Liquid Python에 사용한 비단뱀의 종과 원산지, 사육 또는 포획 여부도 알려지지 않았다. 투명 아크릴과 크롬 부품을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 손상된 뒤 수선과 교체가 가능한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자연은 럭셔리 산업에서 가장 손쉽게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이다. 바다의 색과 파도, 동물의 무늬를 가져오면 제품은 풍요롭고 생생해진다. 자연에서 가져온 이미지는 넘치지만 자연에 대한 설명은 빈약하다. 바다는 장식이 되고 생태계는 문양이 되며 동물은 표면의 질감으로 남는다.

럭셔리와 천박함은 재료의 가격으로 나뉘지 않는다. 자개와 파이톤을 사용했다고 천박한 것도 아니고, 장인이 손으로 만들었다고 고귀한 것도 아니다.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재료를 얼마나 책임 있게 다루는지, 소비자의 욕망을 어떤 방식으로 불러내는지에 따라 경계가 갈린다.

아름다운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에는 잘못이 없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문화를 만들었다. 다만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한 표식으로만 남으면 물건은 금세 천박해진다. 갖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갖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 아름다워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다린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소유하는 순간이다.

럭셔리는 쓸모를 넘어설 수 있다. 쓸모를 넘어섰다는 이유로 책임까지 넘어설 수는 없다. 높은 가격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아니라 더 많이 설명해야 하는 의무에 가깝다. 재료의 출처와 제작자의 노동, 수선 가능한 기간, 자연에 남기는 부담까지 가격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루이 비통은 하이 트렁크의 가격보다 자개 조각의 수와 제작 기간을 먼저 내세웠다. 숫자와 기다림은 제품을 비싸 보이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만 비싸 보이는 일과 품격을 갖추는 일은 끝내 같아지지 않는다.

진짜 럭셔리는 사람을 줄 세운 뒤 문턱 안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우월감을 나눠주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래 기다린 소비자가 아니라 오래 사용할 물건을 만들고, 희귀한 재료보다 재료를 대하는 태도를 남긴다. 천박함은 가격이 높아서 생기지 않는다. 가격을 높이는 일만 남았을 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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