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가까워진 수트에 흰 바지·해링턴·퀼팅 재킷까지
오버사이즈 대신 1980~90년대 남성복 비례로 돌아간 SS27
[KtN 임우경기자]발목이 드러나는 팬츠와 양말 없이 신은 로퍼가 Gucci SS27 남성복에서 반복됐다. 재킷은 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고, 어깨는 형태를 분명하게 잡되 몸판은 비교적 좁게 정리됐다. 검정과 흰색을 중심으로 맞춘 수트에서도 같은 변화가 나타났다. 커다란 재킷과 긴 바지가 신체를 덮는 방식보다 재킷의 허리선과 바지 길이, 로퍼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비례가 앞에 섰다.
뎀나(Demna)가 발렌시아가에서 오랫동안 사용했던 오버사이즈와 비교하면 차이는 크다. Vogue는 SS27의 피크드 숄더 테일러링을 두고 과거라면 크게 부풀렸을 부분을 몸에 가깝게 줄였다고 평가했다. 어깨 자체는 날카롭지만 재킷 전체를 크게 만드는 방식은 피했고, 허리를 좁히면서 상체와 하체의 경계를 또렷하게 잡았다.
흰색 수트는 변화된 비례를 가장 간결하게 드러낸다. 재킷과 팬츠를 같은 색으로 맞추고 검정 로퍼를 붙이면서 장식보다 옷의 길이와 폭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검정 수트에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 넓은 어깨와 긴 밑단으로 몸 전체를 크게 만드는 수트가 아니라, 재킷과 팬츠가 각각 어디에서 끝나는지를 분명하게 정리한 형태다.
수트가 몸에 가까워졌다고 해서 전통적인 비즈니스 정장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다. 재킷의 어깨는 평평하게 가라앉지 않고 각을 세웠고, 바지는 신발 위로 길게 쌓이지 않는다. 로퍼를 가리지 않는 길이가 유지되면서 발목과 신발이 전체 비례에 들어온다. 상체의 재킷과 하체의 팬츠, 신발이 각각 분리돼 보이는 방식이다.
뎀나는 이번 남성복을 준비하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구찌를 다시 살폈다고 밝혔다. 당시 구찌를 정비했던 돈 멜로(Dawn Mello)의 시기를 직접 언급했다. 짧은 팬츠와 맨발에 가까운 발목, 로퍼 차림이 자신의 익숙한 취향과 상당히 멀었다는 설명도 내놨다. 뎀나는 이런 남성복을 두고 자신에게는 “comfort zone” 밖에 있던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
1980~90년대 참조는 옷을 복원하는 방식보다 남성의 몸을 다루는 비례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어깨가 지나치게 넓지 않은 수트, 발목 부근에서 정리되는 바지, 로퍼를 그대로 노출하는 착장은 당시 상류층 남성복이나 이탈리아식 캐주얼 테일러링에서 익숙했던 조합과 맞닿는다. 뎀나가 자신의 과거 작업에서 자주 사용했던 거대한 외투와 끌리는 바지를 그대로 구찌에 옮기지 않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정장에서 벗어난 옷들은 더 일상적이다. 흰 바지에 브라운 해링턴 재킷을 입고, 네이비 퀼팅 재킷이나 블레이저를 같은 흰 바지와 맞췄다. 스트라이프 폴로셔츠와 니트도 들어갔다. Hypebeast는 이런 구성을 아이비와 프레피 계열로 분류하면서 화이트 팬츠, 해링턴 재킷, 퀼팅 재킷, 블레이저를 주요 품목으로 짚었다.
흰 바지는 여러 옷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수트와 블레이저의 정돈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해링턴 재킷과 퀼팅 아우터를 붙일 수 있고, 검정 팬츠가 지배하던 테일러링보다 훨씬 가벼운 인상을 만든다. 상의가 브라운이나 네이비로 바뀌어도 하체의 색을 밝게 유지하면서 재킷의 형태와 로퍼가 또렷하게 남는다.
흰 바지와 로퍼 조합은 스트리트웨어의 과장이나 정장의 엄격함 어느 쪽에도 완전히 들어가지 않는다. 셔츠와 타이를 갖춘 수트에서 폴로셔츠와 짧은 아우터까지 이동할 수 있는 중간 지대를 만든다. SS27 남성복이 한 종류의 정장으로 좁혀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팬츠와 신발을 두고 상의만 바꾸면서 격식의 정도를 조절했다.
블레이저와 흰 바지의 조합에서는 재킷의 역할도 달라진다. 정장 한 벌의 일부가 아니라 셔츠와 니트, 폴로셔츠 위에 따로 입는 옷으로 쓰인다. 재킷을 수트에 묶어두지 않으면서 남성복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 해링턴 재킷과 퀼팅 재킷도 같은 자리에 들어온다. 테일러링과 캐주얼 아우터 사이의 간격을 크게 벌리지 않고 비슷한 바지와 신발을 반복한 것이 특징이다.
프레피 요소를 그대로 단정하게 마무리하지 않은 부분도 남아 있다. 스트라이프 폴로와 니트 위에 재킷을 걸치고, 가죽과 데님을 섞으면서 정돈된 흰 바지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레드·그린 스트라이프와 모노그램의 노출도 커진다. 같은 컬렉션 안에서도 아이비 스타일에 가까운 옷과 도시적인 가죽 스타일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놓였다.
로퍼는 이런 변화에서 빠지지 않는다. 구찌 홀스빗 로퍼는 1953년 처음 출시됐고, 말의 재갈에서 가져온 금속 장식을 앞코에 얹은 형태가 오랫동안 유지돼 왔다. SS27에서는 로퍼 자체를 새로운 신발로 바꾸기보다 바지 길이를 조정해 신발이 더 많이 드러나게 했다. 팬츠가 로퍼를 덮지 않으면서 금속 장식과 신발의 형태가 착장 전체에 직접 들어온다.
뎀나가 홀스빗을 벨트와 팬츠, 셔츠 등으로 옮긴 부분은 별도의 디자인 변화지만, 남성복에서는 신발을 어떻게 드러냈는지도 중요하다. 발목을 가리지 않는 팬츠와 로퍼의 조합은 수트부터 화이트 팬츠까지 반복된다. 구찌의 오래된 신발을 새로 디자인하기보다 옷의 길이를 바꿔 존재감을 높인 셈이다.
SS27 남성복에서 프레피가 등장했다고 해서 구찌가 보수적인 남성복으로 돌아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몸에 붙는 재킷과 짧은 바지 옆에는 가죽 재킷과 여러 개의 벨트, 큰 금속 장식, 데님이 놓인다. 단정한 해링턴 재킷과 흰 바지에도 뎀나가 즐겨 사용해 온 거친 스타일링이 섞인다. 기존 남성복의 품목을 가져오되 지나치게 모범적인 프레피로 정리하지 않은 구성이다.
뎀나는 올해 초 구찌에 필요한 것이 뚜렷한 실루엣이라고 말했다. SS27 남성복은 하나의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 답하기보다 재킷의 크기와 바지 길이를 줄이고, 로퍼와 흰 바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이전과 다른 남성상을 만들었다. Vogue 역시 이번 쇼에서 남성복을 특히 두드러진 부분으로 꼽으며 뎀나가 자신의 익숙한 영역과 먼 1980~90년대 구찌 남성복을 다뤘다는 점에 주목했다.
검정 수트와 흰 수트, 해링턴 재킷과 퀼팅 아우터, 블레이저와 스트라이프 폴로는 각각 오래된 남성복 품목이다. SS27에서 달라진 것은 새로운 품목의 발명보다 이 옷들을 입는 비례다. 재킷은 몸에 가까워졌고 바지는 짧아졌으며 로퍼는 가려지지 않는다. 오버사이즈를 자신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사용해 온 뎀나가 구찌에서는 크기를 키우는 대신 줄이는 쪽을 택했다. SS27 남성복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는 변화도 바로 그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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