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시작한 등산점, 부모 세대에서 김길재 대표로 이어진 2대 가업
장비 판매 넘어 산악인이 머물고 정보를 나누는 공간으로 확
[KtN 박준식기자]1978년 ‘청룡등산사’로 출발한 등산점이 48년째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등산화와 배낭, 의류를 진열해 판매하는 매장이 전부는 아니었다. 산을 다녀온 사람들이 머물렀고, 다음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정보를 나눴다. 부모 세대에서 시작한 등산점은 김길재 대표에게 이어졌고, 2023년 ‘도심산장’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했다. 대구 달서구 성당동에 자리 잡은 매장에는 반세기 가까운 가족의 산행 경험과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변화가 함께 쌓여 있다.
김길재 대표에게 산은 사업보다 먼저였다. 부모가 등산점을 운영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세 살이나 네 살 무렵부터 어머니를 따라 산에 다녔다. 당시에는 등산점과 산행회의 경계도 지금처럼 뚜렷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 설악산을 비롯한 전국의 산으로 떠났고, 등산점은 장비를 사는 곳이면서 산행 정보를 주고받는 장소였다.
가업을 다시 시작한 시기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때였다. 등반 중 다쳐 한동안 쉬어야 했던 시기에 어머니가 등산점을 다시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국내에서도 아웃도어 브랜드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등산 붐이 다시 일던 시기였다. 김 대표는 직접 사업자를 내고 등산용품 판매에 뛰어들었다.
매장을 키우면서도 부모 세대가 만들었던 등산점의 성격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김 대표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등산점은 물건을 많이 파는 곳과는 달랐다. 산악인들이 들러 쉬고, 어느 산을 다녀왔는지 이야기하고, 장비와 산행 정보를 주고받았다.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한곳에 머물며 경험을 나누는 공간이었다.
‘도심산장’이라는 이름도 같은 생각에서 나왔다. 산에서 사람들이 머무는 산장의 기능을 도심에 옮기자는 구상이었다. 산속에 있는 숙박시설이 아니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도심에서 만나고 정보를 나누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김 대표는 물건을 파는 일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매장 규모가 커지고 사업 영역이 넓어진 뒤에도 ‘산장’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배경에는 부모 세대부터 이어진 등산점의 성격이 자리 잡고 있다.
도심산장이 판매 과정에서 사용법 설명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오랜 산행 경험과 연결된다. 아웃도어 제품은 종류가 같아도 사용자의 체격과 산행 방식, 계절과 환경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배낭은 토르소 길이와 어깨 구조가 맞아야 하고, 스틱 역시 체격과 사용 목적에 따라 길이가 달라진다. 기능성 의류는 한 벌의 성능만큼 레이어링 방식이 중요하다.
가족 안에서도 산과 연결된 경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축적됐다. 김 대표는 국내 산행과 기술등반, 매장 운영을 거치며 장비와 의류를 익혔고, 동생은 원정등반과 등산 교육 경험을 쌓았다. 산에서 직접 사용해 본 경험과 강의를 위해 공부한 이론이 매장에서 고객에게 장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영업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대면 강의와 오프라인 방문이 제한되자 온라인 판매 비중이 커졌고, 이후 유튜브를 통해 제품 사용법과 산행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상품을 보여주는 영상보다 배낭 구조와 패킹 방법, 장비 사용법, 계절에 맞는 산행 정보를 설명하는 콘텐츠가 늘어났다.
유튜브 채널은 오래된 등산점의 정보 교류 기능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역할을 맡았다. 김 대표는 유튜브를 시작할 때부터 제품 판매를 넘어 등산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 기능을 염두에 뒀다. 인터뷰 시점 채널 구독자는 약 5000명으로, 최근에는 콘텐츠 제작과 고객 상담을 담당하는 인력도 별도로 두고 운영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온라인에서 축적한 콘텐츠는 오프라인 매장 방문으로 이어졌다. 유튜브 운영 약 1년 뒤부터 영상을 보고 매장을 찾는 고객이 생기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대구 밖에서 찾아오는 고객 비중도 늘었다. 금요일부터 주말 사이에는 다른 지역에서 차를 타고 찾아와 제품의 기능 차이와 사용법을 설명받고, 대구·경북 산행 정보까지 묻는 고객들이 매장을 찾는다.
도심산장은 그레고리(Gregory), 노로나(Norrøna), 레키(LEKI), 로시뇰(Rossignol), 맘무트(Mammut), 미스터리랜치(Mystery Ranch), 블랙다이아몬드(Black Diamond), 스카르파(SCARPA), 실바(SILVA), 오들로(ODLO), 오보즈(Oboz), 헬리녹스(Helinox) 등 여러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를 취급한다. 의류와 등산화뿐 아니라 배낭, 스틱, 물병, 캠핑·백패킹 장비까지 제품군도 넓다.
브랜드 수를 늘리는 것보다 용도에 맞는 제품을 골라 설명하는 데 무게를 둔다. 같은 배낭이라도 체형에 맞지 않으면 착용감이 달라지고, 고가의 기능성 재킷도 안에 입는 옷과 사용 환경에 따라 성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매장에서 제품을 고르는 과정과 구매 이후 사용법을 함께 다루는 방식도 여기서 출발한다.
소비자 반응도 제품 자체보다 실제 사용 경험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오들로 제로웨이트 칠텍 티셔츠 후기에는 속건성과 착용감, 땀과 냄새에 대한 사용 경험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고, 한 차례 구매한 뒤 다른 색상을 추가로 주문했다는 후기도 이어졌다. 소프트 플라스크는 가벼운 무게와 수납성, 캠프박스는 재질과 활용도, 등산화는 착화감과 배송 상태를 중심으로 평가가 남았다.
48년 동안 아웃도어 소비 방식도 달라졌다. 중장년층 중심이던 등산 인구에 젊은 층이 들어왔고, 산을 즐기는 방식은 등산에서 백패킹과 트레일러닝까지 넓어졌다. 등산복은 산에서만 입는 옷에서 일상복과 경계를 낮춘 고프코어 스타일로 영역을 확장했다. 지역 전문점을 찾는 경로 역시 간판과 입소문에서 온라인몰, 유튜브, SNS까지 늘어났다.
도심산장이 바꿔온 것은 판매 채널만이 아니다. 1978년 등산점을 드나들던 산악인들이 직접 주고받았던 정보가 지금은 매장 상담과 영상 콘텐츠를 함께 오간다. 청룡등산사에서 시작한 가업은 2023년 도심산장이라는 이름을 달았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던 등산점의 기능도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대구 본점을 기반으로 다른 지역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광주점 개설을 추진한 뒤 설악산과 지리산, 한라산 등 주요 산악지역에 숙박 기능을 결합한 거점을 두는 구상이다. 한라산에는 광주점 이후 2~3년 안에 숙박형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심에서 출발한 ‘산장’이라는 이름이 실제 산 가까운 지역으로 확장되는 계획까지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