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고향, 가을로 떠나는 별별(星別) 기행’
영화·미술·음악·학계·기업계 인사들 파주에서 한자리…산성을 걷고 말을 타고 음악을 나누며 이어진 사람의 시간
[KtN 박준식기자]9월 26일 경기 파주에 영화감독과 화가, 시인, 교수, 기업인이 모였다. 이장호 감독과 이무영·신근호 감독, 김철완 화가, 유억윤 교수, 최유식 압구정포럼 회장, 류명삼 시인 등 20여 명은 문산과 전진교를 거쳐 민간인통제선 안 덕진산성을 찾았다. 산성을 걸은 뒤에는 파평면 두포리 치마대 말목장으로 이동해 승마와 음악, 식사를 함께했다.
‘별들의 고향, 가을로 떠나는 별별(星別) 기행’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앞서 압구정포럼에서 만난 인연이 파주로 이어졌고, 윤기봉·김영호·안범섭·윤태원·최상희·최순식·김양훈·임세현·하이디 손·이광호·우정제·이창기·이승주 등도 하루를 함께했다. 최유식 회장과 류명삼 시인이 일정을 준비했다.
문산에서 출발한 일행은 전진교를 지나 덕진산성으로 들어갔다. 민통선 안에 자리한 덕진산성은 2017년 사적으로 지정된 성곽 유적으로,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에 있다. 지정 면적은 17만1775㎡다. 고구려가 처음 쌓은 뒤 통일신라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보수와 증축이 이뤄진 흔적이 남아 있다.
참가자들은 성곽과 능선을 따라 걸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대열이었지만 오르막과 평지를 지나며 몇 명씩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앞선 사람들이 기다리고 뒤따르던 사람들이 다시 합류했다. 걷는 동안 대화 상대가 바뀌었고 잠시 멈춘 자리에서는 또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영화감독과 화가, 교수, 기업인이라는 직함은 각자의 일을 설명하지만 산길에서는 다른 관계가 만들어진다. 같은 속도로 걷고, 먼저 오른 사람이 뒤를 기다리고, 쉬는 자리에서 옆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름과 직책을 차례로 소개하는 공식 행사에서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 시간이 길 위에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덕진산성에 남아 있는 시간도 한 겹이 아니다. 고구려의 축성 흔적 위에 통일신라와 조선의 시간이 더해졌다. 한 시대가 이전 시대를 모두 지우지 않은 채 같은 공간에 흔적을 남겼다. 문화도 새로운 것이 등장할 때마다 과거를 밀어내는 방식으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래된 영화와 음악, 그림과 문학은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을 통해 다른 시대의 감각과 다시 만난다.
산성을 내려온 일행은 두포리 치마대 말목장으로 향했다.
류명삼 시인이 말을 키우는 치마대에서는 오전과 다른 시간이 이어졌다. 성곽을 따라 이동하던 사람들이 한곳에 앉았고, 식사를 하다 말을 보러 자리를 옮겼으며 승마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이야기가 오갔다.
류명삼에게 파주와 임진강은 생활의 터전인 동시에 시의 공간이다. ‘여울목에서’에는 임진강의 물결과 강바닥 자갈이 등장한다. 물살에 부딪히며 둥글어지는 자갈에 사람의 시간을 포갠 작품이다. 말을 키우는 목장과 시를 쓰는 일이 서로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출발점에는 같은 지역에서 보낸 시간이 놓여 있다.
오후에는 참가자들이 직접 말에 올랐다. 목장 주변을 따라 말을 타고 이동했고, 다른 사람들은 승마를 지켜보거나 식탁으로 돌아가 대화를 계속했다.
치마대에서는 시와 승마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말을 키우는 생활이 있었고, 같은 강과 들을 바라보며 써온 글이 있었다. 지역의 자연과 생활이 한쪽에서는 목장이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시가 됐다. 문화가 반드시 공연장이나 전시장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이런 생활의 축적에서 드러난다.
오후가 깊어지자 야외 공간에 음악이 더해졌다. 공연이 이어졌고 이장호 감독도 색소폰을 들었다.
1974년 이장호 감독의 연출 데뷔작 ‘별들의 고향’은 최인호의 소설에서 출발했다. 소설의 이야기는 영화가 됐고 이장희의 음악이 더해졌다. 문학과 영화, 대중음악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났고, 서로 다른 창작자의 작업이 1970년대 대중문화의 한 흐름을 만들었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문화가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방식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소설가가 만든 인물을 감독이 영상으로 옮기고, 배우가 몸과 목소리를 더하며, 음악가는 또 다른 감정의 층을 만든다. 각자의 영역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문성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날 때 이전에 없던 결과가 나온다.
50여 년 뒤 파주의 말목장에서 이장호 감독은 카메라 대신 색소폰을 들었다. 연주를 듣던 사람 가운데에는 젊은 시절 ‘별들의 고향’을 보았던 이들도 있었다.
소향 조남현 시인은 이날 만남을 글로 옮기며 젊은 시절 이장호 감독의 영화를 보았던 기억과 눈앞에서 연주하는 감독의 모습을 함께 담았다. 끝부분에는 “나는 / 나의 청춘을 다시 만났다”고 적었다.
영화 한 편이 오래 남는다는 것은 필름이 보존된다는 의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작품을 본 사람이 자신의 어느 시절과 영화를 함께 기억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전혀 다른 장소에서 그 기억을 다시 꺼내는 순간까지 포함한다. 창작자는 작품을 완성하지만 작품의 다음 시간은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이어진다.
이날 치마대의 식탁에는 서로 다른 일을 해온 사람들이 앉았다. 영화감독이 화가의 언어를 가져야 할 이유도 없고, 기업인이 시인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생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통의 세계를 ‘탁자’에 비유했다. 같은 탁자를 둘러싼 사람들은 하나로 섞이지 않으면서도 같은 것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본다. 치마대의 식탁도 그런 모습에 가까웠다. 각자의 영역과 이력을 그대로 가진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앉아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눴다.
압구정포럼이 말해 온 ‘문화지국’도 사람의 만남에서 출발한다. 화가와 음악가, 작가와 시민이 한 공간에서 어울렸던 19세기 파리의 살롱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예술과 생활을 나누는 교류의 공간을 지향한다. 파주에서는 덕진산성의 길과 치마대의 식탁, 말목장의 야외 공간이 사람들을 이어놓았다.
한국문화가 세계에서 ‘K컬처’라는 이름을 얻기까지의 과정도 한 장르나 한 사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영화와 음악, 문학과 미술이 각자의 영역에서 축적된 시간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 다른 창작자와 기획자, 제작자와 관객이 그 시간을 연결해왔다.
‘별들의 고향’ 역시 소설가 최인호와 감독 이장호, 음악가 이장희, 배우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가져온 작업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난 결과였다. 반세기가 지난 뒤에도 작품이 회자되는 이유는 한 시대의 흥행만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자리를 바꿔왔기 때문이다.
K문화를 만드는 사람도 스크린과 무대 위에 있는 창작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작품이 태어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다른 분야의 사람을 연결하고, 오래된 작품을 기억하며,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사람도 문화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창작과 기획, 향유와 기억이 끊기지 않을 때 문화는 한 시대의 유행을 넘어 축적된다.
덕진산성에서 치마대까지 이어진 이날 일정에서도 사람들의 역할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영화를 만든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 시를 쓰며 말을 키우는 사람, 연구하는 사람과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같은 길을 걸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지워 하나로 만드는 대신 각자의 경험을 그대로 가진 채 한자리에 머물렀다.
문화의 다음 시간도 그런 만남에서 형태를 갖춘다. 완성된 작품 이전에는 대화가 있고, 새로운 기획 이전에는 다른 사람의 세계를 발견하는 시간이 있다. 소설 한 권이 영화가 되고 음악을 만나 한 시대의 기억으로 남았듯, 새로운 문화 역시 서로 다른 경험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얻는다.
9월의 파주에서 먼저 남은 것도 거창한 선언이 아니었다. 덕진산성의 길을 함께 걷고, 치마대의 식탁에 앉고, 말을 타고,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 있었다. 문화와 사람의 관계는 작품이 완성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내어놓는 순간부터 이미 문화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