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언어가 증발한 시대, 정치 혐오를 되돌리는 첫 걸음은 ‘설득의 회복’이다

국민의힘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한데 모은 을 출간했다.  사진=2025 02.24   국민의힘 유튜브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의힘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한데 모은 을 출간했다.  사진=2025 02.24   국민의힘 유튜브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국민의힘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한데 모은 <이재명 망언집>을 출간했다. 형식은 비판이었고, 목적은 실체 폭로라 했지만, 그 결과물은 오히려 콘텐츠 정치의 역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여당이 야당 대표의 발언을 책으로 엮는다는 아이러니,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 맥락은 희미해지고, 발언의 ‘자극’만 부각되는 편집적 구조는 지금의 정치가 얼마나 소비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망언’이라 명명한 순간, 그 발언은 이미 ‘재해석’이 아니라 ‘규정’의 대상이 된다. 이는 곧 메시지의 정치가 아니라 이미지의 정치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국민의힘의 <망언집>은 정치적 비판을 정보화하고 콘텐츠화하려는 시도지만, 실제로는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언어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태로 노출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그의 메시지를 더 널리, 더 명확하게 퍼뜨리는 기이한 효과를 낳고 있다. 그것이 디지털 시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아이러니이며, 여당의 전략이 오히려 ‘홍보’를 수행하게 되는 기묘한 상황이다.

여당의 전략인가 반사신경인가: ‘야당 프레임’에 갇힌 정치 구조

정치의 기본 원리는 '행위 주체로서의 역할 수행'이다. 그러나 여당이 야당의 언행을 중심으로 정치적 에너지를 소비하기 시작할 때, 본질적 문제가 발생한다. 여당은 국정 운영의 책임자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현재 그 책임자 위치에서 이탈한 채, 반복적으로 야당 대표의 언행에 반응하는 데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리더십의 부재를 드러내는 신호이며, 더 나아가 국정 운영의 방향성과 정체성마저 모호하게 만든다.

정치가 본래 설계한 여야의 기능이 전도되고 있다. 야당은 비판하고 감시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여당이 스스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반대로 야당은 국정 전반에 대한 제안을 내놓는 역설적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적 정치 구조의 기형화이며, 국민이 느끼는 정치 피로감의 핵심 원인 중 하나다.

정치 혐오의 정착: 감정 소비의 말장난과 국민의 이탈

‘망언집’이라는 콘텐츠가 정치 혐오를 촉진하는 방식은 다층적이다. 첫째, 정치인의 언어가 오로지 실언의 틀 안에서만 해석될 때, 국민은 정치 전체를 조롱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둘째, 발언의 맥락이 삭제된 채, 감정적 레토릭으로만 소비될 때, 정치적 설득력은 소멸되고 ‘정치’라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한다. 셋째, 비판의 형식이 자극적일수록, 그것은 비판의 정당성을 잃고, 오히려 역공의 구실이 되기 쉽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시민들은 이러한 정치 콘텐츠의 편집 방식과 감정 유도 구조를 빠르게 간파한다. 단순한 ‘망언 모음집’은 결국 정치인을 풍자와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기획에 지나지 않으며,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여당에 의해 기획되었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쟁이 아니라 전망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비판의 언어로 정치의 미래를 밀어내고 있다.

정당성은 규정이 아니라 설득에서 온다

여당의 정당성은 권력을 통한 억제가 아니라, 국민을 향한 설득의 언어로 확보되어야 한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는 대신, 그것을 왜 문제가 되는지 설명하고, 어떤 정책적 대안이 있는지를 제시해야 비판은 설득으로 기능한다. 정치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라 설득이다. 망언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방식은 순간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나, 그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수차례의 정치사례에서 입증되어 왔다.

또한, 정치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에서 ‘말의 규정’은 언제나 위험한 선택이다. 어떤 정치인의 언행이 비판받을 수 있음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망언’이라 단정하고 출판물로 엮는 것은 비판과 검열 사이의 경계선을 위협하는 행위다. 이와 같은 정당의 콘텐츠화 전략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민적 불안을 자극하고, 정치권 전체에 대한 신뢰를 또 한 겹 낮추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가 설득을 회복할 때, 민주주의는 제자리를 찾는다

<이재명 망언집>은 정치의 본령이 어디까지 이탈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정치가 콘텐츠가 되고, 그 콘텐츠가 자극과 소비의 대상이 되며, 결국 정치적 메시지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다. 지금 국민의힘이 할 일은 이재명 대표의 말을 엮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떤 말을 할 것인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정치는 상대를 규정하는 기술이 아니다. 공동체의 미래를 구성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공적 대화의 예술이다. 지금 한국 정치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그 설득의 언어다. 여당은 스스로의 리더십을 상대의 언어가 아닌, 자신만의 언어로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회복이자, 민주주의의 복원이며, 무엇보다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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