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헌재, 검찰… 위기 앞에서 침묵한 리더십의 민낯

 

[KtN 김 규운기자] 역대 최악의 산불이 대한민국 전역을 할퀴고 있다.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화재에 대응하던 진화 헬기가 추락했고, 스물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진짜 참사는 자연이 아닌, 국가 시스템의 무기력함에서 비롯됐다. 이 긴급한 위기 속에서도 정치 리더십은 공백을 노출했고, 시스템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산불 대응 실패를 ‘정치의 책임 부재’로 규정하며, 헌법재판관 미임명과 국가재난 대응의 무관심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재난 대응 실패가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공화국’이라는 더 큰 함의를 내포한다.

작동하지 않는 헌법기관, ‘공백의 정치’

헌법재판소는 지난 12월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100일이 넘도록 선고 기일조차 잡지 않고 있다. 정치 시스템의 핵심인 헌법기관이 결정의 책임을 회피한 채 침묵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태호 정책조정위원장은 이를 “정치적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구조적 리스크”로 분석했다. 환율은 급등하고, 소비자심리지수는 8분기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탄핵 선고 지연은 정치의 문제를 넘어, 경제와 국가신용에도 파급되고 있다.

국가는 지금 ‘결정하지 못하는 기관’들로 가득 차 있다. 책임 있는 총리는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미루고, 헌재는 판결을 미룬다. 국가는 말하지 않고, 정치는 행동하지 않는다. 침묵과 유예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검찰 권력의 사유화, ‘정의의 붕괴’

한편 검찰은 법치의 집행자가 아닌 정치적 행위자로 비쳐지고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항소심 무죄 판결은 정치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대한 법원의 단호한 반격이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항고를 예고하며, 권력 유지의 마지막 동력으로 ‘기소’를 사용하고 있다.

정치권은 “검찰이 야당 대표는 끝까지 쫓고, 대통령은 즉시 항고를 포기하는 선택적 정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심우정 검찰총장 자녀의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은, 법의 수호자조차 공정성의 경계를 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정의는 권력을 향해 눈감았고, 공정은 권력자의 자녀 앞에서 침묵했다. 법치주의는 원칙이 아니라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맞춤형 윤리'로 전락하고 있다.

재난은 ‘정치의 본질’을 되묻는다

채현일 행정안전위원은 “인명 피해 대부분이 대피 지연과 혼선으로 발생했다”고 말하며 국가 초기 대응 시스템의 구조적 실패를 비판했다. 노후 헬기, 고령화된 진화 인력, 부실한 대피 경보 체계—그 무엇도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를 개혁하지 않았다.

정치는 왜, 재난을 겪고도 변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명확하다. 리더십은 책임지지 않고, 시스템은 자기 수정을 멈췄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제 시간에 판결하지 않고, 검찰은 권력을 위한 칼이 되었으며, 정부는 추경조차 미루며 국민의 고통에 무심하다.

공화국의 복원은 가능한가

지금 대한민국은 세 개의 균열 위에 서 있다. 하나는 무기력한 재난 대응 체계, 하나는 침묵하는 헌법 기관, 그리고 또 하나는 정치화된 검찰 시스템이다. 이 셋이 맞물리며 공화국의 신뢰를 구조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권 교체나 정책 수정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시스템인가, 권력을 위한 기제인가?”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는 지금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산불은 결국 꺼질 것이고, 환율은 언젠가 안정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잃어버린 신뢰는 복구하기 어렵다. 이제 공화국은, 말이 아니라 결정과 실천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