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시작된 단죄, 그러나 ‘정치는 복원되었는가’
이재명 대표 “내란 종식이 우선”
[KtN 최기형기자]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전원일치 파면 결정을 내린 순간, 대한민국은 정치사에서 전례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종결이 아닌 시작에 가까웠다. 헌정질서의 유린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법치주의가 막아낸 셈이지만, 정작 국가 시스템의 복원력은 아직 시험대 위에 있다.
문제는 단순한 인사교체가 아니라 정치 구조의 정비 여부다. 민주주의가 제도 속에서 작동하는 체계라면, 윤석열의 파면은 구조적 책임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치 반응은 유감스럽게도 ‘정치의 침묵’ 혹은 ‘구조 회피’에 가깝다. 권력을 잃은 대통령은 여전히 정치적 발화를 이어가고 있고, 그 정당은 단 한 번도 내란에 대한 구조적 책임을 말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의 표현대로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는 전제는, 단지 한 사건의 마무리가 아닌 ‘정치 시스템 전반의 구조 점검’을 요구하는 절박한 선언이다. 파면이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면, 그 회복은 권력의 사과, 정당의 반성, 제도의 재설계로 이어져야 한다.
구조 없는 개헌 담론, 제도 개편인가 책임 회피인가
현재 정치권은 개헌이라는 ‘거대 담론’을 다시 호출하고 있다. 4년 중임제, 5·18 광주 정신의 헌법 수록 등 그 취지는 타당하다. 그러나 ‘누가, 언제, 왜’의 문맥이 사라진 개헌 논의는 구조개선이 아닌 정치적 회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특히 이 시점에서의 개헌은 내란과 정치 시스템 실패에 대한 반성과 분리된 채 추진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지적한 대로, 국민투표법 개정이 선행되지 않으면 물리적 시행조차 불가능한 개헌을 성급히 논의하는 것은 현실적 실효성보다는 정치적 정당성 확보의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전현희, 김민석, 김병주 등 민주당 주요 인사들의 일관된 입장은 명확하다. 내란에 대한 공식적 단절 없는 상태에서의 개헌은, 민주주의의 복원이 아닌 왜곡이며, 과거 회귀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특히 윤석열을 1호 당원으로 유지하는 국민의힘이 개헌 논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헌법 파괴와 헌법 개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을 내포한다.
정당 구조의 실패: ‘책임 없는 보수’와 위헌 정당의 조건
내란의 정점에 선 윤석열이 파면된 후에도, 국민의힘은 단 한 차례의 공식 사과도, 1호 당원 제명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수 지도부 인사는 윤석열을 만나 정권 재창출을 다짐하며, 국민적 분노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선택이 아닌, 정당 구조의 윤리 실패다.
과거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서 ‘폭력혁명 강령’보다 더 중요하게 본 것이 “정당 내부의 반민주적 결정 구조”였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그보다 훨씬 명확한 사안, 즉 내란 수괴를 공식적으로 유지하며 사법적 단죄를 부정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헌법 수호 의지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며, 헌법 제8조에 명시된 ‘정당의 민주적 운영’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 지점에서 국민의힘은 단순히 정당의 형태만 남은 반헌법 세력으로서 스스로의 존재 근거를 위협받고 있다.
내란 이후 정치의 조건: 시스템의 복원이 가능한가
내란은 단죄되었지만, 정치는 복원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사라졌지만, 그 체제를 용인한 정당은 여전히 권력의 핵심부에 존재하고 있으며, 정부는 무기력한 관망에 머물고 있다. 이 상태에서 개헌을 논하는 것은 불에 탄 집의 외벽을 페인트칠하는 것과 같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 개편이 아니라 정치의 기능 복원이다. 여야 모두가 국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다시 정치적 책임을 나눌 수 있어야 하며, 그 시작은 윤석열 체제와의 분명한 결별 선언이다. 이것이 없이 진행되는 어떤 담론도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탄핵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윤석열의 파면은 역사적으로 중대한 이정표지만, 그것만으로 민주주의가 회복됐다고 말하긴 이르다. 지금 이 시점은 민주주의가 ‘제도로서’ 존속할 수 있는가를 시험받는 국면이다. 정당의 자정, 행정부 리더십의 재정립, 국회의 구조적 개편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한국 정치 시스템은 또다시 권력 집중과 시스템 붕괴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제 물어야 할 핵심 질문은 명확하다. 윤석열 이후의 국가는 과연 윤석열 체제의 구조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가.
그 물음에 정치권은 아직 응답하지 않고 있다. 침묵은 여전히 길고, 변화는 여전히 더디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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