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멈췄고, 경제는 방치됐다

내란은 끝났지만, 경제 시스템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사진=더불어민주당,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내란은 끝났지만, 경제 시스템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사진=더불어민주당,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 윤석열의 파면으로 정치 권력의 정점은 공석이 되었지만, 더 깊은 위기는 ‘기능하는 경제 리더십’의 실종에서 드러난다. 단지 수치로 요약되는 주가 하락과 환율 폭등이 아니라, 지금 한국 경제는 통화정책, 재정운용, 통상외교, 산업전략이라는 네 축이 모두 멈춰 선 상태에 가깝다.

이재명 대표가 지적했듯, “숫자로 보이는 고통”은 지표가 아니라 실물 경제의 심층에서 민생의 붕괴를 드러내는 전조다. 문제는 정부가 이 위기 앞에서 무기력하다는 점, 그리고 이 무기력은 ‘권력의 공백’이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라는 점이다. 파면 이후 정부의 대책은 없다. 추경은 여전히 “검토 중”이며, 한덕수 총리 대행 체제는 실질적 컨트롤타워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구조적 위기, 리더십 없는 재정정책

1분기 동안 ‘조기 집행’을 해보고 추경을 논의하겠다는 기획재정부의 발언은 경제정책이 위기대응이 아니라 행정 절차로 전락했음을 시사한다. 이재명 대표는 이미 1월에 해당 방침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3개월이 흘렀다. 한국은행조차도 추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정부는 말뿐인 ‘검토’를 반복하며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과거 외환위기처럼 단일 변수의 실패가 아닌, 구조 전체의 피로 누적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가계부채는 금융시장을 압박하고, 건설경기와 수출은 동시에 꺾였다. 미국발 금리·관세 압력과 중국 경제의 위축이 겹쳐지면서, 한국 경제는 글로벌 균열의 한복판에 서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위기를 추경 한 줄로 대응하려 한다. ‘재정 정상화’라는 고정된 이념만을 반복하며 민생정책의 확장, 투자유인 구조의 전환, 사회안전망 보강 등 근본적 개혁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재정 무책임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기능하지 않는 증거다.

‘예외 없는 관세’의 도입: 규칙이 아닌 무기로서의 관세.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예외 없는 관세’의 도입: 규칙이 아닌 무기로서의 관세.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통상·외교의 실종: 관세 전쟁에 방치된 국가

이언주 최고위원의 분석처럼, 현재의 통상 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이라는 구조적 도전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 실패로 드러난다. 미국은 자국 제조업 보호를 명분으로 한국 제품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비단 전략산업뿐 아니라 OEM 중심의 비전략 노동집약 산업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압력에 대한 대응 시스템의 부재다. 통상 외교가 사라진 지금, 국회 차원의 통상특위조차 구성되지 못했고, 외교부는 전략적 개입보다는 ‘형식적 대응’에 머무르고 있다. 민주당은 의원 외교라도 하자고 제안했지만, 국민의힘은 “이재명이 말했기 때문에 싫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외교 리더십의 실종을 넘어, 경제 안보 자체를 정치 게임의 도구로 취급하는 심각한 위험을 내포한다. 현대차의 31조 원 투자, 미국 내 생산 확대는 단기적으로 ‘우호적 제스처’로 비칠 수 있으나, 이면에는 철강·부품·물류 등 국내 산업 생태계가 해체되는 구조적 이행이 존재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스스로 경제주권의 핵심 요소를 전략적 고려 없이 양도하고 있다는 신호다.

금융·산업정책의 부재: 자율적 대응에 내몰린 기업들

지금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정부 정책의 그늘 없이, ‘무정부 상태’에서 글로벌 위기를 자율적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에너지, AI 등 전략산업은 미국과의 교차 압력 속에서 ‘국가 대 국가’의 전략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과의 정책 연계 없이 개별 대응만을 강요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이를 우려하며 “정부 없이 민간이 선물 보따리부터 풀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홍성국 최고위원은 “경제지표 중 일부는 IMF 당시 수준까지 추락했다”고 경고한다. 주가 급락, 환율 폭등, 외인 매도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시스템에 대한 신뢰 상실의 징후로 읽힌다. 파면 이후 오히려 혼란이 증폭되고 있는 이유는, 시스템이 새 리더십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란은 끝났지만, 경제 시스템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내란은 종식 선언이 아니라 복원의 출발점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대통령 파면이라는 초유의 상황 이후, 오히려 더욱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다. 정치가 리더십 공백을 채우지 못하는 사이, 경제는 구조적 파열음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추경이 아니다. 경제 시스템 전반의 리셋, 곧 통화정책·재정정책·외교전략의 총체적 재조정이다. 정치가 이를 설계하지 못하면, 경제는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국가는 그 외곽에서 붕괴하게 된다.

정치가 경제를 방치하면, 경제는 정치를 떠난다. 지금이 바로 그 분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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