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세장벽의 전면화, 노동·환경·환율·데이터가 통상이 되다
규칙은 약해지고 기준은 늘어난다
중견국과 기업을 압박하는 규범의 파편화

[KtN 박채빈기자]세계무역기구 체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다. 관세를 중심으로 설계된 규범은 살아 있지만, 실제 무역의 성패를 가르는 힘은 점점 그 바깥으로 이동했다. 노동 기준과 환경 규제, 환율 운용, 조세 구조, 데이터 통제 같은 요소들이 무역 결과를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통상은 더 이상 국경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의 조직 방식 전체가 무역 조건으로 작동한다.

이 변화는 갑작스럽지 않았다. 각국은 오랫동안 관세 인하를 약속하는 동시에, 관세 밖에서 경쟁력을 설계해 왔다. 임금 구조와 노동법, 환경 기준, 세제와 환율 정책은 모두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관세는 낮아졌지만, 장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장벽의 형태만 바뀌었다.

비관세장벽의 특징은 협상 난이도에 있다. 관세는 숫자로 조정할 수 있다. 비관세장벽은 사회적 합의와 정치 구조를 건드린다. 노동법을 바꾸고 환경 기준을 조정하는 일은 통상 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정치의 문제다. 한 번 합의가 이뤄져도 정권 교체나 정책 변화에 따라 언제든 다시 달라진다. 규범은 고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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