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의 기억으로 다시 짜는 동시대 회화의 질서

쉬가예프의 예술은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키르기스스탄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현대적 언어로 재창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쉬가예프의 예술은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키르기스스탄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현대적 언어로 재창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신화는 과거의 산물이 아니다. 신화는 공동체가 세계를 인식하던 방식이며, 인간과 자연이 관계를 맺던 질서의 기록이다. 키르기스스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유리스탄벡 쉬가예프의 작업은 신화를 복원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회화와 그래픽, 혼합기법을 통해 신화가 작동하던 사고 구조를 현재의 시각 언어로 전환한다. 쉬가예프의 화면에서 신화는 사라진 이야기나 장식적 소재가 아니라, 지금도 작동하는 인식 체계로 자리 잡는다.

쉬가예프 작업의 기반에는 중앙아시아 유목 문화가 지닌 세계관이 놓여 있다. 인간과 자연, 동물과 사물 사이에 위계를 두지 않는 사고 방식, 직선이 아닌 순환으로 이해되는 시간 감각, 공동체 기억이 축적되는 방식이 화면 전반을 지배한다. 화면에는 중심이 없다. 주인공도 설정되지 않는다. 인물은 자연 속에 놓이고, 동물은 상징이 아니라 동등한 존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구성은 미적 선택이 아니라 문화적 기억에서 비롯된 구조다.

작가가 반복적으로 호출하는 서사적 토대는 키르기스 민족 서사시 마나스다. 그러나 쉬가예프에게 마나스는 특정 줄거리나 영웅담을 가리키지 않는다. 공동체가 세계를 이해하던 시선, 삶의 리듬, 기억이 전달되는 방식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에 가깝다. 그래서 쉬가예프의 화면은 이야기를 따라 읽히지 않는다. 사건은 전개되지 않고, 장면은 설명되지 않는다. 화면에는 하나의 상태가 유지되고, 정서가 응축된다. 문자 이전의 신화가 지녔던 작동 방식에 가까운 태도다.

Курманжан Датка1996. Холст, акрил. 200х100. Из коллекции Таалая Бапанова, Кыргызстан Kurmanjan Datka1996. 200x100. Canvas, acrylic From the collection of Taalai Bapanov, Kyrgyzstan. [갤러리 A]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Курманжан Датка1996. Холст, акрил. 200х100. Из коллекции Таалая Бапанова, Кыргызстан Kurmanjan Datka1996. 200x100. Canvas, acrylic From the collection of Taalai Bapanov, Kyrgyzstan. [갤러리 A]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형식 또한 이러한 인식 구조를 충실히 따른다. 쉬가예프의 그래픽 작업은 명확하다. 굵고 단단한 선, 제한된 색채, 반복되는 기호가 화면을 구성한다. 색은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구조를 형성하는 요소다. 선은 묘사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경계를 설정하는 언어다. 화면은 복잡하지 않지만 가볍지 않다. 한 번의 시선으로 소모되지 않고, 반복적인 관람을 요구한다. 신화가 한 번 읽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반복 속에서 의미를 쌓는 방식과 닮아 있다.

중앙아시아 미술은 오랫동안 민속적 이미지나 이국적 장식으로 소비돼 왔다. 쉬가예프는 그 경로를 선택하지 않는다. 키르기스 문화의 상징은 화면에 등장하지만, 설명이나 과장은 없다. 기호는 맥락 안에서만 기능하고, 외부 시선을 의식한 연출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작가가 상트페테르부르크 레핀 미술대학에서 받은 정통 아카데미 교육과도 깊이 연결된다.

레핀 미술대학에서 습득한 사실주의적 기초는 쉬가예프 작업의 바탕을 이룬다. 그러나 작가는 해당 형식에 머물지 않았다. 서구 미술의 조형 언어를 통과한 뒤, 중앙아시아의 사고 체계로 돌아왔다. 화면에는 서구적 조형 감각과 유목 문화의 인식 구조가 동시에 남아 있다. 어느 한쪽을 지우지 않고 공존시키는 방식이다. 이러한 균형은 쉬가예프 작업이 지역 미술로 한정되지 않고 국제적 맥락에서 읽히는 이유다.

인물 표현에서도 작가의 태도는 분명하다. 인물은 영웅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과장된 몸짓이나 감정 표현은 배제된다. 인물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로 그려진다. 얼굴은 설명되지 않고, 자세는 절제돼 있다. 인간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의 환경 감수성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지만, 작업은 메시지를 앞세우지 않는다. 주장 대신 장면이 남는다.

Прогулка. 1990. Холст, масло. 110х80. Собственность автора Walk. 1990. Oil on canvas. 110x80. The Property of the artist  [갤러리 A]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Прогулка. 1990. Холст, масло. 110х80. Собственность автора Walk. 1990. Oil on canvas. 110x80. The Property of the artist [갤러리 A]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러한 작업 태도는 최근 동시대 미술 환경의 변화와도 겹친다. 초고가 작품과 스타 작가 중심으로 움직이던 국제 미술계는 점차 작가의 세계관과 지속성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단기적 화제성보다 오랜 시간 축적된 작업 언어가 평가 기준으로 돌아오는 흐름이다. 쉬가예프의 작업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변한 결과물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동일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그 결과 시장의 변화가 작가를 다시 읽게 만드는 구조가 형성된다.

쉬가예프의 작업은 매체 선택에서도 일관된 태도를 보인다. 종이, 그래픽, 혼합기법은 효과를 위한 선택이 아니다. 기억과 시간을 축적하기 위한 표면이다. 화면에는 완결된 서사 대신 누적된 흔적이 남는다. 작품은 단일 오브제로 소비되지 않고 하나의 세계로 읽힌다. 전시 공간에서 작품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전체 서사의 일부로 기능한다.

쉬가예프의 이미지는 빠르게 소모되지 않는다. 즉각적인 자극이나 쾌감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남는다. 전시장을 떠난 뒤에도 장면이 떠오르고, 특정 선과 색의 구조가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잔존성은 신화적 사고가 지닌 힘과 닮아 있다. 신화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반복 속에서 의미를 축적한다.

유리스탄벡 쉬가예프는 중앙아시아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작가가 아니다. 쉬가예프의 작업은 지역성을 넘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인간이 자연을 인식하던 오래된 시선, 공동체가 시간을 축적하던 방식, 말보다 이미지가 먼저였던 사고의 구조가 화면 안에서 현재형으로 작동한다. 신화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쉬가예프의 회화 속에서 신화는 지금도 살아 있는 언어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