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스탄벡 쉬가예프가 공간을 다루는 방식

쉬가예프의 예술은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키르기스스탄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현대적 언어로 재창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쉬가예프의 예술은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키르기스스탄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현대적 언어로 재창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작업실은 보통 결과를 준비하는 장소로 이해된다. 작품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공간, 완성을 향한 과정이 머무는 자리다. 유리스탄벡 쉬가예프의 작업에서 작업실은 그 정의를 벗어난다. 작업실은 결과 이전의 장소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세계로 기능한다. 회화와 그래픽, 종이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구조를 형성하며, 그 구조는 전시 공간으로 확장된다. Yuristanbek Shygaev의 작업에서 공간은 배경이 아니라 언어다.

쉬가예프의 작업실에는 질서가 있다. 그러나 정리된 질서는 아니다. 도구와 재료, 작업 중인 화면과 완성된 작품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배치되지 않고, 관계에 따라 놓인다. 이 배치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반복된다. 작업실은 무질서한 창고가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소다. 작업실에 놓인 사물은 기능을 넘어 의미를 갖는다.

작업실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 여부가 아니다. 미완의 화면, 중단된 드로잉, 겹쳐진 종이 더미는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사고의 축적이다. 쉬가예프는 과정을 숨기지 않는다. 과정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드러내야 할 구조다. 이 태도는 작업실을 하나의 환경으로 만든다. 회화가 고립된 오브제로 존재하지 않고, 생성 과정과 함께 읽히도록 한다.

이러한 작업실의 성격은 전시 방식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쉬가예프의 전시에서는 작품이 벽에 단정히 걸리는 방식만이 사용되지 않는다. 바닥에 놓이거나, 벽에 기대거나, 여러 장이 군집을 이룬다. 작업실의 구조가 전시장으로 옮겨온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연출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확장이다. 작업실과 전시장은 단절되지 않는다.

24 марта 2005 года. 2006. Бумага, смешанная техника. 54х39. Собственность автора The 24th March, 2005. 2006. 54х39. Paper, mixed technology. The Property of the artist  [갤러리 A]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4 марта 2005 года. 2006. Бумага, смешанная техника. 54х39. Собственность автора The 24th March, 2005. 2006. 54х39. Paper, mixed technology. The Property of the artist [갤러리 A]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공간을 다루는 이 방식은 설치 미술의 전통과도 닿아 있지만, 전통적 의미의 설치 작업과는 다르다. 쉬가예프의 공간은 관람자를 압도하지 않는다. 극적인 연출이나 거대한 구조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요소들이 관계를 형성한다. 종이 한 장, 드로잉 하나, 사소한 사물이 모여 전체를 이룬다. 관람자는 공간을 소비하지 않고, 천천히 읽게 된다.

쉬가예프가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에는 유목 문화의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다. 유목 생활에서 공간은 고정되지 않는다. 거처는 이동하고, 사물은 필요에 따라 재배치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명확한 질서가 존재한다. 쉬가예프의 작업실과 전시는 이러한 이동성과 질서를 동시에 품고 있다. 공간은 완성되지 않고, 항상 갱신된다.

이러한 공간 인식은 작업의 주제와도 깊이 연결된다. 쉬가예프의 회화와 그래픽에서 세계는 고정된 구조가 아니다.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반복 속에서 유지된다. 작업실은 이 관계가 실제로 작동하는 장소다. 그림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옆의 작업, 이전의 작업, 아직 끝나지 않은 작업과 함께 놓인다. 이 공존이 곧 세계관이다.

작업실을 드러내는 태도는 작가의 윤리와도 연결된다. 결과만을 전시하는 방식은 완결된 이미지와 성공한 순간만을 강조한다. 쉬가예프는 그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과정과 흔적, 중단과 반복을 함께 보여준다. 이는 작업을 신화화하지 않는 태도다. 작가는 영웅이 아니라, 세계를 기록하는 존재로 자리 잡는다.

쉬가예프의 예술은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키르기스스탄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현대적 언어로 재창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쉬가예프의 예술은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키르기스스탄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현대적 언어로 재창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러한 접근은 동시대 미술에서 점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일 작품의 가격이나 크기보다, 작가가 구축한 세계 전체가 평가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쉬가예프의 작업은 이 흐름에 자연스럽게 부합한다. 개별 작품은 독립적으로 읽히면서도, 전체 맥락 속에서 더 강한 힘을 얻는다. 작업실과 전시는 그 맥락을 드러내는 장치다.

공간을 작품으로 확장하는 방식은 관람자의 태도도 바꾼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공간 안을 이동하며 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시선은 고정되지 않고, 반복해서 되돌아온다. 이러한 관람 방식은 쉬가예프 작업이 요구하는 태도와 일치한다. 빠른 소비가 아니라, 느린 체류다.

쉬가예프의 작업실은 개인적 공간이지만, 동시에 공동체적 기억이 축적되는 장소다. 종이와 캔버스, 도구와 사물은 개인의 손을 거쳤지만, 담고 있는 세계는 개인을 넘어선다. 유목 문화의 기억, 중앙아시아의 시간 감각,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이 공간 안에서 겹쳐진다. 작업실은 사적인 장소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쉬가예프의 예술은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키르기스스탄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현대적 언어로 재창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쉬가예프의 예술은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키르기스스탄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현대적 언어로 재창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작업실과 전시 공간을 구분하지 않는 태도는 쉬가예프 작업의 일관성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회화, 그래픽, 종이, 혼합기법은 서로 다른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다. 공간은 그 요소들을 연결하는 틀이다. 이 틀은 고정되지 않고, 전시마다 새롭게 조정된다. 그러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유리스탄벡 쉬가예프의 작업에서 공간은 결과를 담는 그릇이 아니다. 공간은 사고가 축적되는 장소이며, 세계가 구성되는 방식이다. 작업실은 숨겨진 무대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작품이다. 쉬가예프가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중앙아시아 미술이 단일 오브제를 넘어 세계를 제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이 확장은 작업의 깊이를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