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핀 이후 유리스탄벡 쉬가예프가 선택한 회화의 질서
[KtN 박준식기자]중앙아시아 현대미술에서 아카데미 교육은 흔히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형식적 완성도를 확보하는 통로이자, 토착 언어가 희미해지는 관문이기도 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레핀 미술대학은 이 양면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엄격한 데생 훈련과 사실주의 전통은 작가의 손을 단단하게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의 감각이 탈색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Yuristanbek Shygaev의 선택은 분명하게 갈린다. 레핀을 통과했으되, 레핀에 머물지 않았다.
쉬가예프의 초기 훈련은 정확했다. 인체 비례, 공간 구성, 빛과 명암의 질서가 화면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데생은 장식이 아니라 구조를 지탱하는 뼈대였다. 회화는 감각의 분출이 아니라 축적의 결과였다. 이러한 훈련은 이후 작업 전반에 남아 있다. 선은 흔들리지 않고, 화면은 무너지지 않는다. 우연에 기대지 않는 태도는 이 시기 형성됐다. 그러나 쉬가예프의 작업은 아카데미적 사실주의로 귀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해당 형식이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을 인식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레핀 이후 쉬가예프가 마주한 문제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었다. 기술은 이미 확보돼 있었다. 문제는 세계를 어떤 질서로 바라볼 것인가였다. 서구 아카데미가 제공하는 사실주의는 가시적 세계를 설명하는 데에는 유효했지만, 중앙아시아 유목 문화가 지닌 시간 감각과 관계의 구조를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직선적 시간,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구도, 인간을 화면의 주체로 세우는 전통은 유목 세계관과 충돌했다.
쉬가예프는 이 충돌을 회피하지 않았다. 대신 형식을 해체했다. 사실주의를 버리지도, 모방하지도 않았다. 선과 면을 남기되 서술을 줄였고, 묘사를 유지하되 위계를 지웠다. 그 결과 화면에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풍경이 배경으로 밀려나지 않고, 사물은 상징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으나, 기능은 바뀌었다. 설명을 위한 기술에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로 이동했다.
이 이동은 단절이 아니라 전환이었다. 쉬가예프의 회화에는 여전히 데생의 긴장이 남아 있다. 선은 느슨하지 않고, 면은 방만하지 않다. 그러나 화면은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사건은 전개되지 않고, 상태가 유지된다. 이러한 태도는 중앙아시아 유목 문화가 지닌 순환적 시간 인식과 맞닿아 있다. 시작과 끝이 명확한 이야기 대신 반복과 축적이 작동한다. 레핀에서 습득한 형식은 이 구조를 지탱하는 내부 장치로 기능한다.
쉬가예프가 귀환한 대상은 특정 장소가 아니다. 키르기스스탄이라는 지리적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자리다. 유목 문화가 형성해 온 세계 이해 방식, 인간과 자연의 관계 설정, 공동체 기억의 축적 방식이 작업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이 귀환은 향수의 표현이 아니다. 과거를 재현하지도 않는다. 현재의 회화 언어로 다시 구축한다. 전통은 보존 대상이 아니라 재구성의 자원으로 다뤄진다.
이 지점에서 쉬가예프의 선택은 국제 미술계의 흐름과도 겹친다. 서구 중심의 형식 표준이 절대적 기준으로 작동하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지역성과 고유한 인식 구조를 지닌 작업이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흐름은 민속적 이미지의 소비로 이어질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쉬가예프는 그 함정을 비껴간다. 토착성을 전면에 내세우되 설명하지 않는다. 문화적 맥락은 화면에 스며들어 있지만, 해설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는 아카데미를 통과한 작가만이 취할 수 있는 거리다.
쉬가예프의 회화에는 의도적인 낯설음이 없다. 이국적 효과를 노린 색채나 과장된 기호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화면은 차분하게 구성된다. 이러한 절제는 기술의 결핍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레핀에서 체득한 형식적 안정감이 있기에 가능한 태도다. 화면은 무너질 걱정이 없기에 장식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래픽 작업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이어진다. 리노컷과 드로잉은 아카데미적 회화와 거리를 두는 매체로 선택됐다. 그러나 이 선택은 회피가 아니라 확장이다. 선의 밀도와 구조는 오히려 더 명확해진다. 색채는 제한되고, 화면은 응축된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조형 원리는 매체를 바꿔도 유지된다. 형식의 전환이 곧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진다.
쉬가예프의 귀환은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국제 전시와 미술관 소장 이력은 이 선택이 폐쇄적이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서구 미술 언어를 거부하지 않았기에 국제적 가독성을 확보했고, 토착 인식 구조를 유지했기에 차별성을 얻었다. 이 이중 구조는 동시대 미술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보편적 형식을 흉내 내는 방식은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않는다. 고유한 세계관을 형식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작업만이 지속성을 획득한다.
레핀 이후 쉬가예프가 선택한 길은 안전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적 성공 경로에서 벗어났고, 민속적 이미지로 쉽게 소비되는 길도 택하지 않았다. 대신 느린 축적을 선택했다. 화면은 급하게 말하지 않고, 작업은 서두르지 않는다. 이 태도는 시장의 속도와 어긋나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작품의 생명력을 연장한다.
쉬가예프의 작업에서 아카데미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면에 나오지도 않는다. 내부에서 구조를 지탱하는 역할로 남아 있다. 중앙아시아로의 귀환은 형식의 후퇴가 아니라 인식의 확장이었다. 레핀을 통과한 뒤 선택한 회화의 질서는 서구와 토착, 기술과 기억,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 위에 세워졌다.
이 균형이 쉬가예프 작업의 핵심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태도, 설명보다 구조를 중시하는 선택, 유행보다 지속성을 택한 판단. 레핀 이후 쉬가예프가 보여준 경로는 중앙아시아 현대미술이 나아갈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아카데미를 통과하되 종속되지 않는 길, 지역으로 돌아오되 고립되지 않는 길. 쉬가예프의 회화는 그 가능성을 차분하게 증명하고 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