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카드·챌린지·팝업·컨벤션이 캠페인을 구매와 공유로 바꾸는 방식
[KtN 전성진기자]KCON LA 2025에는 사흘 동안 12만5000명이 모였다. 참여 기업은 107곳, 부스는 358개, 출연진은 37팀이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팬들은 컨벤션장에서 화장품을 체험하고, 식음료 부스를 돌고, 굿즈를 구매하고, 포토카드를 교환하고, 현장 영상을 SNS에 올렸다. K-팝 팬덤은 미국 브랜드 시장에서 단순 광고 수용자가 아니라 구매와 인증, 확산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소비 집단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LA)비즈니스센터는 미국 K-팝 시장을 공연·브랜드·영상 IP·커머스·디지털 플랫폼이 연결된 산업 포맷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KCON LA를 공연, 컨벤션, 브랜드 전시, 굿즈 판매, 체험형 콘텐츠, 라이프스타일 소비가 결합된 한류 플랫폼으로 봤다. K-뷰티와 K-푸드 기업이 KCON을 미국 Z세대와 아시아계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마케팅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점도 짚었다.
브랜드가 K-팝 팬덤을 찾는 이유는 노출량보다 행동 밀도에 있다. 팬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IP가 등장하는 캠페인을 보고 지나치지 않는다. 한정판을 사고, 포토카드를 모으고, 해시태그를 달고, 춤을 따라 하고, 팝업 현장을 방문하고, 커뮤니티에 후기를 남긴다. 일반 광고가 관심을 확보하는 데서 출발한다면, K-팝 팬덤형 캠페인은 참여와 소유, 공유를 한꺼번에 설계한다.
올리브영은 KCON LA 2025에서 K-뷰티의 팬덤형 접점을 보여줬다. 430㎡ 규모 부스에는 66개 한국 뷰티 브랜드의 164개 제품이 전시됐고, 사흘 동안 3만6000명이 방문했다. 부스는 단계별 스킨케어, 피부 진단 서비스, 제품 체험을 앞세운 공간으로 꾸며졌다. K-팝 행사를 찾은 팬들이 화장품을 직접 바르고 비교하고 촬영하면서 K-뷰티는 공연장 주변의 부가 상품이 아니라 현장 경험의 일부가 됐다.
K-뷰티 브랜드에 KCON은 미국 시장 반응을 확인하는 테스트베드에 가깝다. 대형 유통망 입점 전에도 제품 패키지, 제형, 향, 가격대, 설명 방식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현장에서 볼 수 있다. 팬들은 단순 방문객이 아니라 제품을 사용한 뒤 SNS에 올리고, 같은 팬덤 커뮤니티에 추천하거나 비교하는 2차 유통자 역할을 한다. 광고비를 써서 도달률을 높이는 방식과 달리, 팬덤 행사에서는 체험과 확산이 같은 자리에서 발생한다.
맥도날드와 넷플릭스의 ‘KPop Demon Hunters’ 협업은 K-팝 팬덤 문법이 패스트푸드 캠페인으로 옮겨간 사례다. 맥도날드는 헌트릭스(HUNTR/X)와 사자보이즈(Saja Boys)를 앞세운 협업 메뉴를 내놓고, 각 메뉴에 가상 그룹 포토카드와 ‘Derpy’ 액세스 카드를 넣었다. 팬들은 카드의 QR코드를 스캔하고 맥도날드 앱에 고유 코드를 입력해 독점 콘텐츠와 캠페인 결과 공개에 접근할 수 있었다. 포토카드 수집, QR 인증, 앱 접속, 독점 콘텐츠 해금이 한 번의 식음료 구매 안에 묶였다.
패스트푸드 캠페인에서 중요한 것은 메뉴 자체만이 아니다. 팬덤은 어떤 포토카드가 나오는지, 어느 매장에서 재고가 남아 있는지, 카드 디자인이 어떤지, QR 콘텐츠가 무엇인지 공유한다. 구매 행위가 식사로 끝나지 않고 수집과 인증으로 이어진다. 브랜드는 제품을 한 번 팔고 끝내는 대신 팬덤 커뮤니티 안에서 반복 노출을 얻는다. K-팝 팬덤형 캠페인이 강한 이유는 팬들이 광고를 콘텐츠처럼 소비하고, 콘텐츠를 다시 구매 동기로 바꾸기 때문이다.
갭(Gap)의 ‘Better in Denim’ 캠페인은 K-팝식 퍼포먼스가 패션 브랜드 캠페인의 언어로 쓰인 사례다. 갭은 2025년 가을 데님 캠페인에 캣츠아이(KATSEYE)를 기용했다. 캠페인은 음악과 안무, 멤버별 스타일, 데님 제품을 하나의 영상으로 묶었고, 갭은 캣츠아이와 브랜드가 대담하고 표현적인 관점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K-팝식 군무와 멤버별 개성이 패션 광고의 정적인 이미지보다 강한 확산력을 만든 셈이다.
갭 캠페인의 성과는 온라인 반응에서 확인됐다. 갭 최고경영자 리처드 딕슨(Richard Dickson)은 실적 발표에서 ‘Better in Denim’ 캠페인이 3일 동안 2000만 조회수, 누적 4억 조회수와 80억 노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같은 캠페인은 틱톡 검색에서도 높은 반응을 얻었고, 갭 브랜드의 비교 매장 매출 증가 흐름과 함께 언급됐다. K-팝형 퍼포먼스가 브랜드의 젊은 소비자 접점 회복에 쓰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캣츠아이의 갭 캠페인은 전통적 셀러브리티 광고와도 다르다. 유명 인물이 옷을 입고 서 있는 방식이 아니라, 멤버들이 음악에 맞춰 움직이고 팬들이 해당 장면을 따라 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구조였다. 브랜드는 착용 컷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숏폼 플랫폼에서 반복 재생될 퍼포먼스를 만들었다. K-팝 팬덤은 멤버별 스타일을 비교하고, 안무를 따라 하고, 브랜드 계정의 영상을 다시 퍼뜨리며 캠페인의 유통망이 됐다.
K-팝 팬덤형 캠페인은 소비재 브랜드에 세 가지 가치를 제공한다. 첫째, 팬덤은 목표 고객층이 분명하다. 미국 Z세대, 아시아계 소비자, 글로벌 문화 소비자, 뷰티·패션·음악에 민감한 온라인 이용자가 겹친다. 둘째, 팬덤은 행동 속도가 빠르다. 한정판, 선착순, 포토카드, 팝업, 챌린지 같은 장치가 붙으면 구매와 공유가 짧은 시간 안에 몰린다. 셋째, 팬덤은 커뮤니티 안에서 제품을 해석한다. 브랜드가 던진 메시지는 팬 계정, 영상 클립, 후기, 교환 게시물, 언박싱 콘텐츠를 거치며 다시 확산된다.
이 구조는 기존 광고 시장의 약점을 보완한다. 디지털 광고는 도달 수치를 빠르게 만들지만, 이용자의 피로도와 회피율이 높다. 인플루언서 광고는 구매 전환을 기대할 수 있지만, 신뢰도와 진정성 논란이 따라붙는다. K-팝 팬덤형 캠페인은 아티스트나 IP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팬덤이 납득할 만한 제품과 메시지, 한정 요소가 결합하면 광고는 방해물이 아니라 참여할 만한 이벤트가 된다.
브랜드 협업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팬덤은 상업화에 민감하다. 아티스트나 IP와 제품의 연결성이 약하면 “팬덤을 돈으로만 본다”는 반응이 나온다. 가격이 과도하거나 재고가 부족하거나, 포토카드 같은 수집형 혜택이 불공정하게 배분되면 불만이 빠르게 퍼진다. 팬덤의 확산력은 장점이지만, 운영 실패가 발생하면 비판도 같은 속도로 번진다.
K-팝 팬덤을 활용하는 브랜드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소유’의 착각이다. 팬덤은 브랜드가 불러오면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다. 팬들은 아티스트와 콘텐츠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으며, 브랜드는 그 애착의 주변에 조심스럽게 들어가야 한다. 제품 품질, 캠페인 문법, 문화적 감수성, 혜택의 공정성, 팬덤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K-팝을 붙인 광고는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다.
KCON LA, 올리브영 부스, 맥도날드의 ‘KPop Demon Hunters’ 카드팩, 갭의 캣츠아이 데님 캠페인은 같은 흐름 위에 있다. K-팝 팬덤은 음악을 듣는 소비자를 넘어 브랜드의 체험자, 구매자, 수집가, 홍보자로 움직인다. 미국 시장에서 K-팝의 가치는 차트와 공연장 밖으로 확장됐다. 2026년 이후 브랜드 협업의 관건은 팬덤을 얼마나 많이 동원하느냐보다 팬덤이 납득할 만한 경험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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