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달러 지폐, 욕설과 속옷 이미지로 채운 2026 FW 협업… 뉴욕 언더그라운드 패션의 변신

스케이트 문화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슈프림, 바케라의 실험성과 만난 반항의 상업적 가치

[KtN 박인경기자]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형상 뒤로 달러 지폐가 겹쳐졌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후디의 등에는 'JESUS FUCKING CHRIST'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새겨졌다. 종교적 이름을 이용한 거친 욕설이다. 다른 후디에는 붉은 립스틱 자국이 남았고, 흰색 티셔츠에는 브래지어의 형태가 인쇄됐다. 성인 광고 전단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문구는 데님을 넘어 이불과 베개까지 채웠다. 11월 3일 공개된 슈프림(Supreme)과 바케라(Vaquera)의 2026 FW 협업 컬렉션이다.

뉴욕의 거리에서 성장한 슈프림과 패션의 관습을 뒤집어 온 바케라는 반항적인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에서 닮았다. 슈프림은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예술가들의 그래픽을 후디와 티셔츠에 담았고, 바케라는 속옷과 정장, 고급 패션의 상징을 과장하거나 변형했다. 두 브랜드가 함께 만든 컬렉션에는 종교와 성, 자본과 소비, 대중문화의 이미지가 한꺼번에 등장한다. 일상적으로 입는 옷에 기존의 미적 기준과 사회적 금기를 건드리는 표현을 적용한 것이다.

슈프림과 바케라의 2026 FW 협업 크라이스트 집업 후디. 붉은색 몸판에 십자가의 예수 형상과 달러 지폐를 연상시키는 녹색 그래픽을 결합하고, 검은색 후드와 소매로 대비를 이뤘다. 사진=Supreme.
슈프림과 바케라의 2026 FW 협업 크라이스트 집업 후디. 붉은색 몸판에 십자가의 예수 형상과 달러 지폐를 연상시키는 녹색 그래픽을 결합하고, 검은색 후드와 소매로 대비를 이뤘다. 사진=Supreme.

1994년 뉴욕에서 출발한 슈프림은 스케이트보드와 거리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성장했다. 티셔츠와 후디, 야구모자는 익숙한 의류였지만 여기에 적용한 문구와 그래픽은 기존 패션 브랜드의 표현과 달랐다. 예술가의 작품과 음악, 영화와 정치적 이미지가 제품에 등장했고, 간결한 박스 로고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랜드의 상징이 됐다. 거리의 하위문화에서 출발한 슈프림은 이제 글로벌 패션산업의 주요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24년 10월에는 글로벌 안경·광학 기업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가 VF코퍼레이션으로부터 슈프림을 인수했다. 기본 인수가격은 15억 달러였다. 뉴욕의 스케이트보드 매장에서 시작한 브랜드가 대규모 글로벌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것이다. 슈프림이 오랫동안 활용해 온 거리의 문화와 반항적인 표현은 이제 기업의 브랜드 자산이기도 하다. 스케이트보드와 예술가들의 이미지는 제품의 차별성을 만들고, 협업은 새로운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소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바케라는 2013년 패트릭 디카프리오(Patric DiCaprio)가 뉴욕에서 설립했다. 2015년 합류한 브린 타우벤시(Bryn Taubensee)와 함께 현재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초기에는 뉴욕 지하철 승강장에서 컬렉션을 선보이고, 미국의 국기와 익숙한 작업복, 고급 패션의 상징을 과장된 의류로 바꾸는 작업을 펼쳤다. 패션의 권위를 동경하면서 동시에 희화화하는 태도는 바케라를 기존 디자이너 브랜드와 구별해 왔다.

디카프리오와 타우벤시는 자신들의 작업을 '패션 팬픽션(fashion fan-fiction)'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존재하는 패션과 디자이너, 대중문화의 요소를 자유롭게 인용하고, 과장과 상상을 더해 새로운 옷을 만든다는 의미다. 바케라의 디자인에서는 속옷이 겉옷으로 바뀌고, 익숙한 정장이 낯선 비례를 얻으며, 고급스러움을 상징하던 물건이 우스꽝스러운 크기나 형태로 등장한다. 전통적인 복식의 규칙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대신 규칙에서 벗어난 옷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둔다.

슈프림과 바케라의 만남에서 주목할 부분은 서로 다른 브랜드의 이름보다 두 브랜드가 상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슈프림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의류의 형태와 유통 기반을 갖추고 있고, 바케라는 익숙한 옷을 낯설게 만드는 표현을 발전시켜 왔다. 실험적인 그래픽은 후디와 티셔츠, 데님과 모자처럼 일상에서 착용하는 제품으로 옮겨졌다. 특별한 착용법을 요구하지 않는 의류에 도발적인 이미지가 들어간 것이다.

크라이스트 집업 후디의 등판에 'JESUS FUCKING CHRIST'라는 붉은색 대문자 문구가 크게 배치됐다. 검은색 후드와 소매, 밝은 갈색으로 변하는 몸판이 글자와 대비를 이룬다. 사진=Supreme.
크라이스트 집업 후디의 등판에 'JESUS FUCKING CHRIST'라는 붉은색 대문자 문구가 크게 배치됐다. 검은색 후드와 소매, 밝은 갈색으로 변하는 몸판이 글자와 대비를 이룬다. 사진=Supreme.

크라이스트 집업 후디(Christ Zip Up Hooded Sweatshirt)는 종교적 상징과 화폐, 욕설을 한 벌에 결합했다. 십자가는 기독교에서 신앙과 구원의 의미를 지니고, 달러 지폐는 경제적인 교환과 소유를 상징한다. 등판의 욕설은 종교적 이름을 일상적인 비속어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상징이 의복에 겹쳐지면서 신앙과 자본의 관계를 풍자하는 이미지로 읽힐 수 있고, 종교적 상징을 상업적인 디자인에 이용한 도발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종교적 이미지를 패션에 사용하는 일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 십자가는 장신구와 의류의 장식으로 활용돼 왔으며 현대미술에서는 종교적 상징을 기존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하는 작업도 이어졌다. 슈프림 역시 2017년 미국 예술가 안드레스 세라노(Andres Serrano)의 작품을 의류에 적용한 전례가 있다. 2026년 바케라와의 협업은 기존 예술 작품을 가져온 당시와 제작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논쟁적인 상징을 스트리트웨어에 사용하는 흐름과 연결된다.

종교적 상징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 비판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와 달러 지폐를 겹치는 행위가 자본과 신앙의 관계를 생각하게 할 수는 있지만, 의복에 사용된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을 담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욕설도 마찬가지다. 거친 표현이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강한 문구를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디자인의 독창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슈프림과 바케라의 크라이스트 후디는 종교적 상징을 바라보는 태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까지 제품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누군가에게는 도발적인 그래픽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불편하게 만드는 표현일 수 있다. 착용자가 문구의 뜻을 알고 선택했는지, 그림의 형태만 마음에 들어 구매했는지에 따라서도 의복에 부여하는 의미가 달라진다. 옷에 인쇄된 상징과 실제로 옷을 입는 사람의 생각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도발적인 그래픽을 내세운 의류가 판매되는 순간 문화적 표현은 상품의 가치와 연결된다. 어떤 이미지가 사용됐는지, 다른 제품과 얼마나 뚜렷하게 구별되는지, 소비자가 그것을 자신의 취향으로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해진다. 과거에는 거리의 전단이나 예술 작품에 등장했던 거친 문구가 일정한 가격과 발매일을 갖춘 의류로 제작되는 것이다. 반항적인 표현을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 표현은 새로운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지만 처음 등장했던 사회적 맥락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생긴다.

붉은 입술 자국을 더한 밝은 회색 집업 후디와 입술 모티프가 반복된 슈프림 뉴에라 모자. 얼굴 주변에 그래픽을 집중시키고 몸통은 단색으로 정리했다. 사진=Supreme.
붉은 입술 자국을 더한 밝은 회색 집업 후디와 입술 모티프가 반복된 슈프림 뉴에라 모자. 얼굴 주변에 그래픽을 집중시키고 몸통은 단색으로 정리했다. 사진=Supreme.

바케라의 입술 자국은 종교적 문구와 달리 친밀함과 유희적인 표현을 활용한다.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다른 표면에 닿아 남긴 흔적을 후드와 야구모자에 반복적으로 배치했다. 원래는 우연히 남는 자국이지만 상품에서는 일정한 크기와 색상을 갖춘 장식이 됐다. 바케라는 2025년 나이키와의 운동화 협업에서도 입술 모티프를 사용한 바 있다. 운동화와 모자, 후디는 기능과 착용 위치가 다르지만 같은 장식을 통해 연결된다.

입술 자국이 슈프림의 박스 로고와 만난 방식도 흥미롭다. 모자 정면에는 슈프림을 알아볼 수 있는 직사각형 로고가 남고, 그 주변에 바케라의 입술 문양이 흩어졌다. 슈프림은 자신을 대표하는 상징을 유지했고, 바케라는 반복해 온 그래픽을 다른 제품에 적용했다. 서로의 이름을 단순히 병기하는 대신 각자의 디자인 언어를 한 물건에 결합한 것이다.

협업에서 외부 디자이너의 역할은 로고를 새롭게 꾸미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기존 제품이 익숙한 이유를 이해하고 그 형태를 다른 의미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입술 자국은 형태가 단순하지만 착용자의 얼굴과 가까운 후드와 모자에 놓이면서 몸통의 프린트와 다른 인상을 만든다. 슈프림의 익숙한 모자가 바케라의 디자인을 만나 달라진 부분은 상품의 기본 구조보다 문양이 놓인 위치와 그것이 불러오는 연상에 있다.

검은색 브래지어 형태의 그래픽을 인쇄한 흰색 브라 티(Bra Tee). 넉넉한 반팔 티셔츠에 블루 데님 쇼츠를 조합해 속옷을 연상시키는 프린트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사진=Supreme.
검은색 브래지어 형태의 그래픽을 인쇄한 흰색 브라 티(Bra Tee). 넉넉한 반팔 티셔츠에 블루 데님 쇼츠를 조합해 속옷을 연상시키는 프린트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사진=Supreme.

브라 티(Bra Tee)는 몸을 감싸는 옷과 몸을 표현하는 이미지의 관계를 바꾼다. 흰색 티셔츠의 가슴에는 브래지어의 어깨끈과 컵, 안전핀을 연상시키는 그래픽이 놓였다. 실제로 속옷을 겹쳐 입은 것은 아니지만 겉으로는 다른 옷이 함께 있는 듯한 인상을 만든다. 눈속임을 뜻하는 트롱프뢰유(trompe-l'œil)를 활용한 디자인이다.

속옷의 형태를 겉옷에 적용하는 실험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코르셋과 브래지어의 구조를 바깥으로 드러내는 패션은 여러 시대와 디자이너의 작업에서 등장했다. 바케라는 복잡한 재단 대신 프린트를 선택했다. 몸에 밀착하는 속옷의 윤곽을 넉넉한 티셔츠에 옮겨 놓으면서 실제 신체의 형태와 인쇄된 의복의 형태가 일치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브래지어를 여성의 속옷으로만 인식해 온 복식 관습도 디자인의 일부가 된다. 브래지어의 이미지가 인쇄된 티셔츠를 누가 입을 수 있는지는 옷의 구조보다 사회적인 인식과 관계가 깊다. 바케라의 작업은 익숙한 의류를 다른 방식으로 착용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혔다. 동시에 특정한 그래픽을 선택하는 일이 곧 새로운 가치관의 증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착용자의 취향과 생활환경, 의복에 담긴 표현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서로 다르다.

슈프림과 바케라의 협업에서 브라 티는 특히 상업적인 가능성과 디자인의 실험성이 맞닿는 제품이다. 기존의 반팔 티셔츠를 크게 변형하지 않고도 속옷의 형태를 겉으로 드러낸 듯한 효과를 만들 수 있다. 제조와 착용의 구조는 익숙하지만 그래픽은 기존 복식의 관습을 건드린다. 바케라가 실험적인 의복을 제작해 온 방식이 슈프림의 대중적인 상품에 적용되면서 표현의 형태도 달라진 것이다.

인물과 문자, 불규칙한 문양을 겹친 슈프림 × 바케라 콜라주 루즈핏 데님. 짙은 블루 원단의 넓은 바지통에 옅은 그래픽과 워싱을 적용했다. 사진=Supreme.
인물과 문자, 불규칙한 문양을 겹친 슈프림 × 바케라 콜라주 루즈핏 데님. 짙은 블루 원단의 넓은 바지통에 옅은 그래픽과 워싱을 적용했다. 사진=Supreme.

콜라주 긴소매 상의와 루즈핏 데님에는 성인 광고와 대중적인 인쇄물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겹쳐져 있다. 인물의 얼굴과 문자, 서로 다른 크기의 그림이 원단을 채웠고, 데님의 워싱과 프린트는 불규칙한 색상 변화를 만들었다. 신문과 전단, 독립 잡지의 조각을 모아 붙인 듯한 디자인이다.

콜라주는 20세기 미술과 펑크 문화에서 중요한 표현 방식이었다. 서로 다른 이미지와 글자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문맥은 바뀌고, 기존 자료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다. 펑크 음악의 포스터와 음반 디자인에서도 정돈된 광고 문법을 벗어난 글자와 인쇄물의 조합이 활용됐다. 바케라의 콜라주 역시 규칙적인 패턴보다 불규칙한 배열을 택했다. 다만 모든 문구와 그림을 하나의 명확한 사회 비판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성인문화의 이미지가 지닌 자극적인 성격과 전체 디자인의 완성도는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

광고와 전단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데님에 적용하면 글자와 인물은 옷의 주름을 따라 접히고, 팬츠의 넓은 바지통은 문양이 드러나는 면적을 늘린다. 기존의 청바지에 하나의 로고를 배치하는 방식과 달리 원단 전체를 인쇄물처럼 사용했다. 소비자가 읽을 수 있는 문자와 장식적인 이미지가 한데 놓이면서 옷은 단순한 패턴 이상의 내용을 갖는다.

검은색 인물·문자 콜라주를 흰색 이불과 베개에 적용한 슈프림 × 바케라 침구. 성인 광고와 인쇄물을 연상시키는 문양이 침대 전체를 채우고, 붉은 머리카락의 인물이 침구 속에 누워 있다. 사진=Supreme.
검은색 인물·문자 콜라주를 흰색 이불과 베개에 적용한 슈프림 × 바케라 침구. 성인 광고와 인쇄물을 연상시키는 문양이 침대 전체를 채우고, 붉은 머리카락의 인물이 침구 속에 누워 있다. 사진=Supreme.

콜라주가 침구로 옮겨간 부분에서는 협업의 성격이 한층 달라진다. 후디와 데님은 외출할 때 선택하는 의류지만 이불과 베개는 침실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이다. 성인 광고를 연상시키는 문구와 인물이 몸에 입는 옷을 넘어 개인의 휴식 공간을 채운다. 의복에 새겨진 그래픽이 일상공간을 구성하는 장식으로 바뀐 것이다.

패션 브랜드가 가구와 침구, 생활용품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일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브랜드의 색상과 로고를 집 안의 물건에 적용하면서 소비자는 의류를 넘어 생활 전반에서 같은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슈프림도 다양한 생활용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협업의 침구는 브랜드의 이름을 작게 부착하는 대신 바케라의 콜라주를 넓은 면적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의복의 실험적인 그래픽을 침실까지 이어 놓았다.

하지만 같은 디자인이 옷과 침구에 모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강한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를 즐겨 입는 사람도 침실에서는 차분한 색상과 단순한 무늬를 선택할 수 있다. 의복을 통해 표현하는 취향과 생활공간에서 원하는 편안함은 서로 다른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생활용품으로의 확장이 곧 브랜드의 표현을 깊게 만든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슈프림과 바케라가 선택한 제품의 기본적인 형태를 다시 살펴보면 협업의 특징이 더욱 분명해진다. 후디에는 지퍼와 주머니가 있고, 티셔츠는 일반적인 반팔 상의의 구조를 유지한다. 데님은 넉넉한 바지통을 갖췄고, 농구 반바지는 스포츠웨어에서 익숙한 길이와 배색 패널을 활용했다. 실험적인 표현이 집중된 부분은 대체로 프린트와 문양, 색상의 조합이다.

바케라의 기존 컬렉션에는 옷의 크기와 재단을 과장하거나 서로 다른 의복을 결합하는 작업도 등장했다. 슈프림과의 협업에서는 복잡한 구조를 일반적인 스트리트웨어에 맞게 바꾸고, 그래픽을 통해 브랜드의 특징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실험적인 디자인이 널리 알려진 상품으로 제작될 때 나타나는 변화다. 접근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기존에 다뤄 온 복식 구조의 실험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협업을 통한 상업적 성과와 디자인의 완성도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 새로운 소비자가 특정 디자이너를 알게 되고 익숙한 브랜드에서 다른 표현을 접할 기회를 얻는 일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두 브랜드의 이름을 함께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제품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 의류를 얼마나 새롭게 구성했는지, 협업하지 않았다면 만들기 어려웠을 결과인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독자적인 디자인으로 남을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반항적인 표현이 상품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패션의 비판적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옷은 처음부터 개인의 취향과 사회적 위치, 문화적 소속을 드러내는 물건이기도 했다. 펑크와 스트리트웨어가 상업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기존 복식의 규칙을 바꾸고 다른 스타일을 확산시킨 흐름은 이어졌다. 표현이 판매된다는 이유만으로 그 문화적 의미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도발적인 문구를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거친 언어와 종교적 상징, 성적 암시가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장식으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금기를 건드리는 표현과 실제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작업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충격을 주는 이미지가 익숙해질수록 의복의 형태와 소재, 그래픽의 구성에서 독자성을 확보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슈프림과 바케라의 협업은 서로 다른 두 브랜드의 현재 위치를 함께 드러낸다. 슈프림은 스케이트보드 문화에서 출발해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가 됐고, 바케라는 뉴욕의 실험적인 패션 프로젝트에서 국제적인 컬렉션을 발표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로 성장했다. 슈프림은 널리 알려진 상품 구조와 로고를, 바케라는 기존 복식을 비틀어 온 디자인 언어를 제공했다. 두 브랜드 모두 거리의 반항적인 문화와 패션산업의 상업적 체계 사이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6 FW 협업은 11월 5일 발매되며 아시아에서는 11월 7일 선보일 예정이다. 실제 소비자 반응과 판매 성과는 출시 이후에 드러나겠지만, 이번 컬렉션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발전한 브랜드가 디자인을 공유하는 방식을 담고 있다. 슈프림의 후디와 티셔츠, 데님과 모자는 바케라의 그래픽을 받아들였고, 바케라의 상징은 보다 익숙한 일상복으로 옮겨졌다.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에서 출발한 두 브랜드는 이제 반항적인 이미지를 상품으로 제작하는 위치에 있다. 십자가와 달러 지폐, 욕설과 입술 자국, 속옷과 성인 광고의 이미지는 정해진 제품의 형태 안에 놓였다. 소비자는 강한 문구와 그래픽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옷을 입는 행위가 곧 이미지의 원래 의미를 공유한다는 뜻은 아니다.

슈프림과 바케라의 협업이 남기는 것은 더 강한 도발을 향한 경쟁보다 익숙한 옷에 새로운 표현을 적용하는 방식에 관한 판단이다. 강한 문구와 자극적인 이미지가 유행을 만들 수는 있어도 브랜드의 디자인을 오래 지탱하는 요소는 결국 의복의 구성과 독창적인 표현이다. 스케이트보드 문화에서 성장한 슈프림과 고급 패션의 규칙을 뒤집어 온 바케라의 만남은 반항의 상징이 상품이 된 오늘날, 디자이너의 실험과 브랜드의 상업적 성장이 얼마나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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