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않는 디자인이 ‘고급’으로 유통되는 과정

Tottenham Hotspur and Nike Reveal Commemorative Retro Shirt. 사진=Tottenham Hotspu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Tottenham Hotspur and Nike Reveal Commemorative Retro Shirt. 사진=Tottenham Hotspu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미희기자]토트넘의 1901 FA컵 125주년 레트로 셔츠를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빠르게 합의에 이른 지점은 디자인이다. 장식이 없고, 색이 단순하며, 이름과 패치가 제거된 구성이 ‘깔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평가는 거의 반사적으로 반복됐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추가 설명은 필요 없어졌다. 디자인은 곧바로 ‘의도적 절제’라는 보호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디자인이 단순하다는 사실과, 그 단순함이 설득력을 가진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상품일수록 디자인 선택에는 명확한 태도가 요구된다. 무엇을 덜어냈는지보다, 무엇을 남기지 않았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번 셔츠는 철저히 비어 있다. 색상은 ‘릴리화이트’로 통일됐고, 시각적 정보는 거의 제거됐다. 전면에는 스폰서와 브랜드 로고만 남았고, 후면에는 번호만 존재한다. 이름도, 연도에 대한 설명도 없다. 이 선택은 명백히 의도된 결과다. 문제는 그 의도가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다.

미니멀리즘은 언제나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러나 해석의 여지와 설명의 공백은 다른 차원이다. 이번 셔츠에서 발생한 공백은 해석을 자극하기보다는 질문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디자인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무언은 안전하다.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틀릴 위험도 없다.

이 구조는 최근 스포츠 상품 전반에서 반복되고 있다. 레트로와 미니멀리즘이 결합한 상품은 거의 예외 없이 ‘고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평가에는 이유가 포함되지 않는다. 단순하다는 인상이 곧 세련됨으로 전환되고, 절제라는 단어가 모든 선택을 정당화한다. 설명은 필요 없는 요소가 된다.

토트넘의 레트로 셔츠 역시 그 경로를 그대로 밟았다. 디자인은 칭찬의 대상이 됐지만, 질문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왜 이런 형태여야 했는지, 왜 정보는 제거됐는지, 왜 1901년의 흔적은 숫자 외에는 남지 않았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미니멀리즘이 하나의 면죄부로 기능한 셈이다.

문제는 이런 면죄부가 디자인을 넘어 역사 해석까지 포괄한다는 점이다. 설명 없는 디자인은 설명 없는 역사로 이어진다. 셔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역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연도만 남기고 나머지를 지우는 방식은 미학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서술의 포기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역할도 명확해진다. 설명되지 않은 공백은 소비자의 감정과 상상으로 채워진다. 과거를 아는 사람은 기억을 덧입히고, 모르는 사람은 분위기로 받아들인다. 어느 쪽이든 브랜드는 책임에서 한 발 물러난다. 의미 부여는 개인의 몫이 된다.

이 구조는 편리하다. 브랜드는 역사 해석의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고, 소비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만족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반복될수록 레트로는 점점 피상적인 형식으로 굳어진다. 과거는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감상의 대상이 된다. 깊이는 선택 사항으로 밀려난다.

토트넘이라는 구단의 역사적 무게를 고려하면 이런 선택은 더욱 아쉽다. 1901년 FA컵 우승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축구 구조와 계층, 경쟁 방식의 특수성을 품고 있는 사건이다. 그 복합성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번역할 것인가는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고민돼야 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셔츠는 그 고민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모든 정보를 옷 위에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정보도 담지 않기로 한 결정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미니멀리즘이 설명을 덜어내는 방식으로만 작동할 때, 디자인은 태도를 숨기는 도구가 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중립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해석을 포기한 상태에 가깝다.

이번 레트로 셔츠는 완성도가 높고, 시장 반응도 좋았다. 그러나 그 완성도는 기술적 차원에 머문다. 디자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침묵은 의도가 될 수 있지만, 반복될 경우 책임 회피로 읽힌다.

미니멀리즘은 본래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작업이다. 그러나 무엇이 불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이 빠진 채 결과만 남으면, 그것은 절제가 아니라 공백이다. 이번 셔츠가 남긴 공백은 단순한 미학적 여백이 아니다. 역사와 맥락이 빠져나간 자리다.

레트로 상품이 계속해서 미니멀리즘에 기대는 한, 이 공백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설명하지 않아도 팔린다는 경험은 다음 기획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과거는 점점 얇아진다. 디자인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역사는 점점 가벼워진다.

토트넘의 레트로 셔츠는 그런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미니멀리즘은 이 상품을 비판에서 보호했지만, 동시에 의미를 확장할 기회도 함께 차단했다. 디자인은 성공했지만, 서술은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단정한 표면과 비어 있는 내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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