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보편 관세로 WTO 체제·글로벌 공급망 재편 압박…제조업 넘어 문화산업까지 비용 전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호르무즈(Hormuz) 해협 내 기뢰 설치 선박에 대한 사격 및 격침(Shoot and Kill) 명령을 미 해군에 하달하고, 이란과의 새로운 합의 전까지 해당 수역을 완전히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2026. 04.23  엑스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호르무즈(Hormuz) 해협 내 기뢰 설치 선박에 대한 사격 및 격침(Shoot and Kill) 명령을 미 해군에 하달하고, 이란과의 새로운 합의 전까지 해당 수역을 완전히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2026. 04.23  엑스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2025년 4월 2일, 백악관은 전 세계 교역 상대를 하나의 관세표 위에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장기 상품무역 적자를 국가안보와 경제에 대한 “이례적이고 비상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행정명령의 기본값은 모든 교역 상대 수입품에 적용되는 10% 추가 관세였다. 일부 국가는 부속서에 따라 더 높은 세율을 배정받았다. 관세는 협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미국 시장에 들어오기 전 받아들여야 할 전제 조건으로 바뀌었다.

백악관 행정명령은 무역적자를 단순한 통계 지표로 다루지 않았다. 대규모 상품무역 적자가 미국 제조업 기반을 비우고, 첨단 제조 역량 확대를 막고, 핵심 공급망을 약화시키며, 방위산업 기반을 외국 의존 구조로 몰아넣었다고 적었다. 대통령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과 국가비상법 등을 근거로 들었다. 외국의 관세·비관세 장벽과 구조적 불균형이 미국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판단이 관세 부과의 출발점이었다.

동맹국과 경쟁국은 같은 방식으로 분류됐다. 백악관은 ‘상호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교역 상대국 입장에서 발표 방식은 협의보다 통보에 가까웠다. 행정명령은 2025년 4월 5일부터 보편 관세 10%를 적용하고, 4월 9일부터 국가별 차등 관세를 시행하도록 시점을 명시했다. 기업이 생산지와 조달처, 가격 정책을 다시 계산하기 전에 관세표가 먼저 움직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통상질서는 관세를 낮추고 분쟁을 제도 안에서 조정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왔다. 미국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안에서 관세 인하와 시장 개방을 주도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질서가 미국에 불리한 적자 구조를 고착화했다고 봤다. 행정명령은 WTO 회원국들이 최혜국 대우에 따라 관세율을 묶었지만 서로 같은 수준의 낮은 관세율을 적용하기로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다자 규범과 협의 절차보다 대통령의 비상권한이 앞에 놓인 장면이었다.

중국은 곧바로 WTO 분쟁 절차에 들어갔다. WTO는 2025년 4월 8일 중국이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에 대해 분쟁 협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미국 조치가 GATT 1994, 관세평가협정, 보조금 및 상계조치 협정 등 WTO 의무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분쟁 협의 요청은 WTO 소송 절차의 첫 단계다. 양측이 60일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제소국은 패널 설치를 요구할 수 있다.

관세 비용은 국경에서 멈추지 않는다. 수입업자가 통관 단계에서 먼저 부담하지만, 비용은 납품가와 도매가를 거쳐 최종 소비자 가격에 반영된다. 제조업체는 부품 조달처를 바꾸거나 생산 기지를 옮겨야 하고, 유통업체는 마진 축소와 가격 인상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기업에는 세율의 높고 낮음보다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이 더 큰 변수로 남는다.

세계무역기구의 전망도 빠르게 어두워졌다. WTO는 2025년 4월 발표에서 세계 상품무역량이 2025년 0.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호관세가 다시 확대되고 무역정책 불확실성이 다른 교역 관계로 번질 경우 감소 폭은 1.5%까지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운송, 물류, 여행, 정보기술 서비스도 상품 교역 둔화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고 봤다.

국제통화기금도 같은 달 세계경제전망에서 성장 전망을 낮췄다. IMF는 무역 긴장 고조와 정책 불확실성이 세계경제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봤다. 2025년 세계 성장률 전망은 2.8%, 2026년은 3.0%로 제시됐고, 이는 1월 전망치였던 각각 3.3%에서 낮아진 수치였다. 관세와 정책 불확실성은 단기 성장뿐 아니라 장기 성장 전망에도 부담을 주는 변수로 지목됐다.

관세 충격은 철강, 자동차, 반도체 같은 전통 제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영화와 공연, 스트리밍, 게임, 굿즈 산업도 장비와 물류, 촬영지, 인력 이동, 소비 여력의 영향을 받는다. 카메라와 조명, 음향 장비, 무대 설비, 의상, 인쇄물, 캐릭터 상품은 국경을 넘는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항공편을 이용하고, 공연 장비는 해상 운송과 보험을 거친다. 관세가 비용을 높이면 문화상품의 가격표도 흔들린다.

미국 극장산업은 이미 공급과 비용의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 LA비즈니스센터가 정리한 ‘CinemaCon 2026’ 자료는 극장산업의 핵심 리스크가 관객 회복보다 콘텐츠 공급 안정성으로 옮겨갔다고 분석했다. 제작 편수 감소, 프랜차이즈 중심 라인업 집중, 상영 윈도우 재조정, 프리미엄 포맷과 부가 소비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영화 유통은 단일 기준이 아니라 작품별로 설계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내용이다. 관세는 재편 중인 영화산업 위에 얹히는 추가 비용이 된다.

대형 스튜디오는 비용 상승을 감당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와 검증된 지식재산권에 자본을 더 집중할 수 있다. 중간 규모 영화와 독립영화는 제작비와 배급비 상승을 더 크게 체감할 가능성이 있다. 극장은 적은 수의 대형 작품에 더 의존하고, 스트리밍 플랫폼은 글로벌 제작비와 가입자 소비심리를 동시에 계산해야 한다. 제조업 보호를 명분으로 출발한 관세가 문화산업의 제작·유통·소비 구조를 건드리는 경로다.

각국 정부의 대응도 단순하지 않다. 정면 대응은 보복관세와 통상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충돌 회피는 미국의 요구에 맞춘 시장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느 쪽이든 WTO 중심 다자질서는 약해진다. 양자 협상과 대통령 명령이 다자 규칙보다 앞서면 교역의 예측 가능성은 낮아진다.

글로벌 공급망도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가장 싼 생산지, 가장 빠른 조달망, 가장 넓은 판매망만으로는 부족해졌다. 관세 발표, 보복관세, 유예 조치, 예외 품목, 원산지 규정, 법적 분쟁 가능성이 투자 판단에 함께 들어간다. 효율을 좇던 공급망은 안전을 따지는 공급망으로 바뀌고 있다.

트럼프 관세가 시장에 던진 첫 충격은 세율표가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이 무역적자를 국가비상사태로 선언하고, 동맹과 경쟁국을 같은 방식으로 압박하며, WTO 절차보다 행정명령을 앞세운 장면이었다. 관세는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경계선에 머물지 않고 미국 시장에 들어가기 위한 정치적 통행료가 됐다.

세계경제의 혼란은 다음 통보의 내용을 예측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에서 커졌다. 기업과 국가는 비용 최적화보다 외부 충격에 덜 흔들릴 공급망 확보를 먼저 계산하고 있다. 문화산업을 포함한 산업 전반은 비용 상승과 소비 위축이라는 이중 부담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트럼프 관세는 상품에 붙는 세금으로 시작했지만, 글로벌 시장이 계산해야 할 위험의 기준 자체를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