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원에서 꽃잎과 원환, 방사축으로 확장된 구조…회전대칭과 흑연 농담이 교차한 2026년 기하학적 드로잉

최혜정 CHOI HyuJung Circle1 –geometry Circle1 –geometry Year2026 Medium Pencil on paper Dimensions 91x116.8 Category flat painting
최혜정 CHOI HyuJung Circle1 –geometry Circle1 –geometry Year2026 Medium Pencil on paper Dimensions 91x116.8 Category flat painting

[KtN 박준식기자]종이 중앙에 응축된 원형 구조가 상하좌우와 대각선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여러 겹으로 포개진 꽃잎꼴 윤곽, 검정과 회색이 교차하는 원환, 사슬처럼 이어진 중첩원이 하나의 방사 체계를 이룬다. 중앙의 높은 밀도는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기고, 외곽으로 길게 뻗은 원의 배열은 응축된 힘을 넓은 여백으로 분산한다.

최혜정(CHOI HyuJung)의 2026년작 ‘Circle1–geometry’는 91×116.8cm 종이에 연필로 제작한 평면 작업이다. 제목에 적힌 ‘Circle1’은 완성된 원 하나를 가리키기보다 전체 구성을 발생시키는 최소 단위에 가깝다. 하나의 원이 다른 원과 겹치고, 교차부에서 새로운 꽃잎꼴이 생겨나며, 반복된 단위가 더 큰 원환과 방사축으로 확장된다.

중앙에는 다층의 꽃잎꼴 구조가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가장 안쪽의 작은 방사형 문양을 중심으로 크기가 다른 꽃잎들이 겹겹이 벌어지고, 각 단위 안에는 평행선과 부채꼴 선, 점과 작은 꽃 문양이 촘촘하게 배치됐다. 중심부의 높은 정보량은 장식성을 넘어 시선을 한 점에 오래 붙잡는 응축력을 만든다.

꽃잎의 외곽선은 일정한 규칙을 따르지만 내부의 선과 농도는 조금씩 다르다. 짙게 채운 부분과 가느다란 선을 반복한 부분, 종이 바탕을 넓게 남긴 부분이 교차한다. 같은 모듈을 기계적으로 복제하지 않고 내부의 밀도와 결을 달리하면서 반복 안에 미세한 변주를 남겼다.

중앙 구조를 감싸는 검은 곡선면은 바깥쪽 원환에 강한 시각적 중량을 부여한다. 곡선면 사이에는 밝은 원형과 작은 흰 점이 규칙적으로 놓여 있다. 짙은 흑연이 중심을 압축하는 동안 밝은 단위들은 검정의 연속을 끊고 시선이 이동할 틈을 만든다.

검정과 흰 바탕의 관계는 전경과 배경으로 단순하게 나뉘지 않는다. 흰 원과 곡선형 공백도 검은 면만큼 분명한 윤곽을 가지며 원환의 회전 방향을 결정한다. 채운 부분과 비운 부분이 서로의 경계를 만들면서 하나의 원형 구조를 함께 완성한다.

원환 바깥에는 삼각형이 연속된 띠가 자리한다. 곡선이 지배하는 구성에 짧고 날카로운 직선이 들어오면서 시선의 속도가 달라진다. 중심에서 부드럽게 이어지던 회전은 삼각형 띠에서 잘게 분절되고, 다시 뾰족한 꽃잎꼴 외곽으로 넘어간다.

외곽의 꽃잎꼴 단위는 중앙의 정교한 문양보다 크고 단순하다. 짧은 연필선을 여러 번 겹쳐 내부를 채웠고, 압력과 방향의 차이가 표면에 그대로 남았다. 정밀하게 계산된 윤곽과 균일하지 않은 흑연의 결이 한 단위 안에서 공존한다.

중심부와 외곽을 잇는 중첩원은 같은 크기의 원을 일정한 간격으로 포갠 구조다. 원과 원이 만나는 자리마다 렌즈꼴 교차부가 생기고, 여러 교차부가 모이면서 다시 꽃잎꼴 모듈로 바뀐다. 단순한 원 하나가 중첩을 통해 전혀 다른 형태를 생산하는 기하학적 생성 과정이다.

원형 모듈은 중앙에 가까운 짧은 군집과 바깥으로 길게 뻗은 배열로 나뉜다. 안쪽의 작은 군집은 중심부의 밀도를 이어받고, 외곽의 긴 배열은 힘을 사방으로 방출한다. 중앙에서 시작된 질서가 한 번에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크기와 간격을 바꾸며 단계적으로 확장된다.

상하좌우와 대각선으로 뻗은 배열은 강한 회전대칭을 형성한다. 각 축은 일정한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종이 끝까지 닿지 않는다. 원의 반복이 멈춘 지점 바깥에는 넓은 흰 공간이 남아 있어 구조가 완전히 닫히기보다 계속 증식할 가능성을 품는다.

중첩원 사이에 놓인 작은 회색 점들은 복잡한 선 구조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점들은 중심을 둘러싼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원주를 짐작하게 하고, 방사축 사이의 빈 공간을 조율한다. 중앙의 고밀도 구조, 중간의 반복 모듈, 외곽의 점과 여백이 서로 다른 공간적 층위를 만든다.

종이 곳곳에는 완성된 윤곽보다 훨씬 옅은 원과 방사선이 남아 있다. 곡선의 위치와 간격, 대칭축을 정하기 위해 사용한 보조선이다. 최종 형태 뒤로 감출 수도 있었던 설계의 흔적을 남기면서 완성된 질서와 제작 과정이 한 평면에 겹친다.

제목의 ‘geometry’도 매끈하게 완성된 도형만을 뜻하지 않는다. 원을 측정하고, 나누고, 겹치며 전체 구조를 찾아가는 절차가 연필선에 함께 기록돼 있다. 기하학은 결과로 제시된 공식이 아니라 반복과 수정, 조정으로 구축된 제작 방식이 된다.

연필이라는 재료는 수학적 질서를 인간의 시간으로 바꾼다. 컴퓨터 그래픽이라면 동일하게 처리됐을 검정과 회색에 손의 압력과 속도 차이가 남았다. 짧은 획이 쌓인 방향, 선을 되짚은 횟수, 흑연이 종이에 눌린 강도가 각 부분의 밀도를 달리한다.

기하학적 대칭과 수공적 편차는 서로를 상쇄하지 않는다. 대칭은 전체 구도를 단단하게 묶고, 미세한 농도 차이는 반복 구조가 평면적인 장식으로 굳는 것을 막는다. 멀리서는 정연한 방사형 질서가 먼저 들어오고, 가까이에서는 손으로 쌓은 흔적과 불균일한 표면이 드러난다.

중앙의 연화형 구조와 원환, 방사축은 만다라를 연상시키는 시각적 질서를 갖는다. 특정 종교 도상을 직접 재현한 것으로 좁히기보다 중심을 향한 집중과 외부로 향한 확산이 반복되는 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선은 중앙에 머물렀다가 원환을 따라 돌고, 중첩원의 사슬을 타고 외곽으로 이동한다.

명상적인 안정감만 이어지는 구성은 아니다. 중앙에는 꽃잎과 선, 점, 검은 곡선면이 촘촘하게 겹쳐 있어 시선이 한꺼번에 모든 세부를 읽기 어렵다. 외곽의 원형 배열도 일부 구간에서는 옅은 보조선과 겹치며 윤곽이 희미해진다.

중앙의 높은 밀도와 외곽의 희박한 공간 사이에 놓인 차이가 전체 리듬을 조절한다. 시선은 중심부에서 느려지고, 바깥쪽 중첩원을 따라 이동할 때 속도를 되찾는다. 복잡한 중앙을 넓은 여백과 규칙적인 외곽 배열이 받아내면서 과도한 밀집을 완화한다.

완벽한 균일성을 추구했다면 ‘Circle1–geometry’는 정교한 도안이나 장식 패턴에 가까워졌을 가능성이 크다. 최혜정은 연필의 결, 농도의 편차, 지워지지 않은 보조선을 남겨 기하학적 질서가 손의 반복을 통과해 만들어졌음을 드러낸다. 정확성은 흔들림을 제거한 결과가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선과 간격을 다시 맞춘 과정에서 확보된다.

‘Circle1–geometry’의 조형적 성취는 원을 완전성과 조화의 상징으로 제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원이 다른 원과 만날 때 꽃잎꼴 교차부가 생기고, 반복이 늘어날수록 더 큰 원환과 방사축이 형성된다. 질서는 동일한 단위의 반복에서 시작하지만, 중첩은 계속 새로운 차이와 관계를 만들어낸다.

중앙의 작은 원에서 시작된 구조는 꽃잎과 원환, 삼각형 띠와 중첩원의 사슬을 거쳐 넓은 흰 공간으로 번져간다. 중심은 단단히 응축돼 있지만 외연은 닫히지 않는다. 최혜정의 기하학은 완성된 원 하나보다 원과 원의 관계가 증식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