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타원의 무게를 가르는 수직의 식물…신을 향한 인간의 거리와 흔들리는 균형
[KtN 박준식기자]왼쪽에는 검게 채운 둥근 덩어리가 놓였고, 오른쪽에는 흰 바탕을 넓게 남긴 타원이 자리한다. 두 형태 사이에서는 여러 가닥의 줄기가 종이 아래에서 솟아올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잎을 펼친다. 검정과 여백, 수평으로 놓인 덩어리와 위로 자라는 식물이 한 작품 안에서 맞선다.
최혜정(CHOI HyuJung)의 2026년작 ‘축-axis mundi’는 53.5×72.5cm 종이에 연필로 제작한 평면 작업이다. 화면 중앙에 세운 식물은 좌우를 나누는 경계에 머물지 않는다. 무게가 다른 두 영역 사이를 지나 위로 향하며 작품 전체의 수직축을 만든다.
왼쪽 덩어리는 작품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둥근 외곽 안을 연필로 여러 차례 채워 검정의 밀도를 높였다. 아래쪽이 평평하고 윗부분이 둥글어 바닥에 눌린 돌이나 씨앗을 떠올리게 하지만, 구체적인 대상을 확정할 만한 세부는 없다. 형태보다 검은 면이 만드는 무게가 앞선다.
검정 안에는 연필심이 오간 방향과 덧칠의 차이가 남았다. 단일한 색면처럼 닫히지 않고, 표면 곳곳에서 미세한 결이 드러난다. 같은 자리를 반복해 지나간 시간이 검은색의 깊이를 만든다.
오른쪽 타원은 왼쪽과 비슷한 크기를 지녔지만 내부의 밀도는 크게 다르다. 굵은 외곽선 안에 옅은 연필 자국이 퍼져 있고, 종이의 흰 바탕이 넓게 남았다. 검은 덩어리가 시선을 멈춰 세운다면 밝은 타원은 내부를 천천히 훑게 한다.
두 형태를 곧바로 밤과 낮, 음과 양, 물질과 정신으로 나누기보다 작품에서 확인되는 차이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왼쪽에는 연필이 축적됐고 오른쪽에는 여백이 남았다. 닮은 윤곽 안에 상반된 밀도를 넣으면서 좌우의 무게는 대칭을 이루지 않는다.
타원 바깥에는 옅은 곡선이 여러 겹 둘러져 있다. 가는 선은 두 덩어리의 외곽을 따라 흐르다가 흰 바탕으로 흩어진다. 짙은 윤곽으로 닫힌 내부와 달리 주변의 선은 경계를 느슨하게 풀어낸다. 정지한 두 덩어리 주위에 미세한 진동이 생기는 이유다.
작품 중앙에는 여러 줄기가 나란히 솟아 있다. 두꺼운 줄기와 가는 줄기가 아래에서 위로 길게 이어지고, 상단에서는 각기 다른 방향의 잎으로 갈라진다. 뿌리는 종이 아래쪽 밖으로 이어져 출발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줄기의 끝도 하나의 지점에서 닫히지 않고 잎의 곡선으로 분산된다.
‘Axis mundi’는 라틴어로 ‘세계의 축’을 뜻한다. 신화와 종교에서는 땅과 하늘, 인간이 살아가는 영역과 그 너머의 세계를 잇는 중심선이나 줄기를 가리키며, 나무·산·기둥 같은 수직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혜정은 단단한 기둥 대신 자라는 식물을 중심축으로 선택했다. 직선에 가까운 줄기는 위를 향하지만 잎은 휘어지고 접히며 좌우로 퍼진다. 세계의 중심을 움직이지 않는 구조물로 고정하지 않고, 성장하면서 방향을 바꾸는 생명체로 옮긴 구성이다.
위쪽 잎은 서로 다른 형태와 농도를 갖는다. 왼쪽의 넓은 잎에는 검정과 회색, 흰색의 띠가 겹쳐 있고, 가운데 잎은 길고 좁은 형태로 수직 방향을 강조한다. 오른쪽 잎은 넓게 펼쳐진 뒤 끝부분이 아래로 처진다. 잎의 크기와 방향이 달라 중앙축은 엄격한 좌우 대칭을 만들지 않는다.
식물의 형태도 사실적 묘사와는 거리가 있다. 섬세한 잎맥보다 넓은 면과 굵은 윤곽, 연필의 반복된 결이 강조됐다. 자연의 식물을 그대로 옮겼다기보다 수직선과 곡선, 검은 면과 밝은 면의 관계로 다시 정리한 형태다.
줄기 아래에는 짧은 선이 매듭처럼 얽혀 있다. 작품 전체에서 매우 작은 부분이지만 곧게 뻗은 줄기의 흐름을 잠시 끊는다. 자연스럽게 자라는 식물에 인간의 손이 닿은 흔적처럼 남아 중앙축을 완전히 순수한 자연의 형상으로 읽기 어렵게 한다.
작품의 무게는 왼쪽으로 뚜렷하게 기운다. 검은 덩어리가 차지하는 시각적 압력이 크고, 오른쪽의 밝은 타원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가운데 줄기는 두 덩어리 사이에 서 있지만 좌우를 안정된 대칭으로 정리하지는 못한다.
불균형은 제목의 ‘축’을 흔들리지 않는 중심에서 긴장을 견디는 중심으로 바꾼다. 세계의 축이 세워졌다고 해서 양쪽이 곧바로 조화에 도달하지 않는다. 가느다란 식물은 서로 다른 밀도 사이에서 위를 향해 자라며 균형을 유지한다.
줄기는 양쪽을 가르면서도 두 영역에 동시에 닿는다. 왼쪽으로 휘어진 잎은 검은 덩어리 위의 공간을 차지하고, 오른쪽 줄기와 잎은 밝은 타원 가까이에서 뻗는다. 경계와 연결이 하나의 수직 구조 안에서 함께 작동한다.
검은 덩어리와 밝은 덩어리도 끝까지 독립된 윤곽을 유지한다. 중앙의 식물이 두 형태를 합치거나 같은 색으로 바꾸지 않는다. 작품에서 연결은 차이를 없애는 통합보다 서로 다른 상태를 남겨 둔 채 통로를 세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최혜정이 제시한 “작가의 시선으로 해석한 신과 인간의 시(詩), 서(書), 화(畵)의 놀이터”라는 문장은 중앙의 수직 구조와 연결해 풀 수 있다. 신을 인물이나 종교적 도상으로 직접 그리기보다 인간이 보이지 않는 질서에 다가가려는 움직임을 식물의 성장으로 옮긴 해석이다.
줄기는 아래에서 위로 향하지만 시작과 끝을 모두 드러내지 않는다. 인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세계의 축 전체가 아니라 중간의 한 구간이다. 인간은 초월적 질서를 소유하거나 완전히 이해하는 위치보다 땅과 위쪽 공간 사이에서 방향을 찾는 존재로 남는다.
작품은 신에게 도달한 상태보다 신을 향해 움직이는 과정에 무게를 둔다. 연필로 세운 줄기는 위로 이어지고 잎은 더 넓은 공간을 향해 펼쳐진다. 동시에 줄기의 흔들림과 잎의 비대칭, 고르지 않은 농도는 완전한 질서에 닿지 못한 인간의 손과 시간을 남긴다.
‘시·서·화’는 각기 다른 형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좌우의 큰 덩어리와 가운데 여백은 시에서 행과 행 사이에 놓인 쉼처럼 시선의 속도를 조절한다. 아래에서 위로 길게 이어지는 줄기는 한 번에 내려 쓴 글씨의 획을 떠올리게 하고, 검정과 회색, 흰 바탕의 배치는 회화의 공간을 만든다.
‘놀이터’라는 표현도 가볍게 즐기는 장소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와 글씨, 그림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신성한 질서를 탐색하는 작업의 범위를 가리킨다. 하나의 선이 식물의 줄기이자 세계의 축이 되고, 다시 검정과 여백을 가르는 경계로 바뀐다.
다만 철학적 설명이 작품의 모든 형태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왼쪽 덩어리가 신이고 오른쪽 덩어리가 인간이라고 일대일로 나눌 수 없으며, 두 타원이 특정한 종교적 세계를 직접 묘사한다고 볼 근거도 없다. ‘축-axis mundi’에서 먼저 확인되는 내용은 서로 다른 밀도와 가느다란 수직선이 만드는 긴장이다.
왼쪽의 강한 검정과 오른쪽의 넓은 여백은 작품의 장점인 동시에 불균형을 키운다. 검은 면이 지나치게 강해 중앙의 줄기와 오른쪽 타원을 압도하고, 밝은 타원의 내부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다. 수직축이 두 영역을 단단하게 묶기보다 간신히 사이를 통과한다는 인상도 남는다.
해당 불안정성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거대한 개념을 장식적인 완성으로 처리하지 않게 한다. 중심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권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무게 사이에서 계속 유지해야 하는 상태가 된다. 식물은 두 세계를 봉합하지 못한 채 연결을 시도한다.
온라인 전시관 아뜰리에 아미스에 공개된 ‘축-axis mundi’는 멀리서 볼 때 검은 타원과 밝은 타원, 중앙의 수직선이 먼저 들어온다. 가까이에서는 검정을 쌓은 연필 결, 타원 주변의 옅은 곡선, 줄기와 잎에 남은 농도 차이가 드러난다. 단순한 전체 구도와 반복된 손의 작업이 서로 다른 거리에서 교차한다.
최근 동시대미술 시장은 초고가 작품의 위축과 새로운 작가·접근 가능한 작품군의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는 다층적 구조를 보인다. 2024~2025년에는 5만달러 이상 가격대의 거래 건수가 25% 이상 감소했지만, 1만달러 이하 작품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유지했다. 같은 기간 공개경매에 처음 진입해 작품을 판매한 동시대 작가는 6522명으로, 거래 작가 전체의 18%를 차지했다.
동시대미술의 흐름은 소수의 고가 기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새로운 작가와 다양한 매체, 서로 다른 가격대의 작품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작품을 발견하는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축-axis mundi’가 놓인 온라인 전시 역시 특정한 판매 전망보다 한 작가의 조형 언어와 철학적 사유가 관람자에게 공개되는 접점으로 기능한다.
‘축-axis mundi’의 마지막에는 합일보다 거리가 남는다. 검은 덩어리와 밝은 덩어리는 각자의 밀도를 유지하고, 식물은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 위로 자란다. 중앙축은 완성된 신성의 표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 사이에서 방향을 찾는 인간의 선에 가깝다. 시작과 끝이 종이 밖으로 이어진 줄기에는 신에게 도달한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질서를 향해 움직이는 과정이 남아 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