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스앤드허드슨 양장본 ‘Yohji Yamamoto Drawings’ 출간…알렉상드르 삼송 집필·피터 새빌 디자인, 남성복과 여성복을 가로지른 작업 기록

Yohji Yamamoto Opens His Private Sketchbook in a First-Ever Thames & Hudson ‘Drawings’ Book. 사진=Thames & Huds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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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임민정기자]등을 돌린 인물의 얼굴은 몇 차례의 짧은 선으로 생략됐다. 허리를 안으로 좁힌 재킷은 밑단에서 바깥으로 벌어지고, 가늘게 내려온 바지는 한쪽 다리에 실린 체중을 따라 비스듬히 꺾인다. 검은 잉크로 채운 또 다른 인물은 둥글게 부푼 소매와 허리 아래로 퍼지는 짧은 치마를 입었다. 눈과 입, 손가락의 세부보다 어깨의 폭과 허리의 위치,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옷의 부피가 먼저 들어온다.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가 작업실에 남겨온 미공개 드로잉이 양장본 ‘Yohji Yamamoto Drawings’에 실린다. 템스앤드허드슨(Thames & Hudson)이 펴내는 책은 야마모토가 직접 고른 그림을 중심으로 남성복과 여성복 작업을 함께 묶는다. 파리 패션박물관 팔레 갈리에라(Palais Galliera)의 큐레이터 알렉상드르 삼송(Alexandre Samson)이 글을 맡고,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새빌(Peter Saville)이 디자인에 참여했다.

수록작은 완성된 의상의 구조를 치수와 절개선으로 설명하는 도식과 거리가 멀다. 연필선은 여러 번 겹치고, 검은 잉크는 옷과 신체의 경계를 한꺼번에 덮는다. 매끈한 스케치 용지뿐 아니라 오래된 신문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종이도 바탕으로 사용됐다. 정돈된 결과보다 옷의 비례를 찾고 수정하던 손의 속도가 그대로 남은 그림들이다.

얼굴보다 먼저 그린 어깨와 등

허리를 좁힌 재킷을 입은 인물은 몸을 앞으로 숙인 채 한쪽 다리를 뒤로 뺐다. 재킷의 등판은 안쪽으로 휘었다가 엉덩이 아래에서 크게 벌어진다. 양쪽 바짓단의 길이와 발의 방향도 가지런히 맞지 않는다. 곧게 선 모델에게 옷을 입힌 그림보다 사람이 몸을 돌리거나 걸음을 옮기는 순간에 가깝다.

짙은 붓질로 채운 인물은 상체와 소매의 비례가 크게 과장됐다. 양팔은 몸통 양옆에서 둥근 곡선을 만들고, 가는 허리 아래에는 짧고 넓은 치마가 놓였다. 검은 면 사이에 남겨둔 흰 부분이 어깨와 가슴, 허리의 위치를 나눈다. 선으로 옷의 경계를 두르지 않고 검정의 농도와 종이의 여백으로 부피를 정리한 방식이다.

야마모토의 옷에서 검정은 단일한 색상으로 머물지 않았다. 몸의 윤곽을 감추고, 소매와 몸통 사이의 간격을 넓히며, 직물의 겹침과 빈 공간을 강조하는 구조로 사용됐다. 드로잉에서도 검은 잉크는 재킷이나 치마의 색을 지정하는 수단보다 무게가 모이는 부분을 결정하는 재료에 가깝다.

1980년대 초 파리에 등장한 야마모토의 컬렉션은 당시 유럽 패션이 중시하던 신체 중심의 재단과 정돈된 좌우 균형에서 벗어나 있었다. 몸보다 큰 재킷, 비대칭으로 떨어지는 밑단, 완전히 마감되지 않은 듯한 가장자리와 검정 중심의 색채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의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과 함께 제시한 옷은 서구 패션이 익숙하게 사용해온 여성성과 남성성의 외곽도 다시 나눴다.

드로잉 속 인물 역시 성별이나 표정을 자세히 규정하지 않는다. 몸의 기울기와 어깨의 폭, 바지와 치마가 떨어지는 길이가 인물의 성격을 대신한다. 얼굴을 지운 자리에 옷을 입는 사람의 태도와 움직임이 남는다.

새의 목과 날개에서 찾은 옷의 부피

Yohji Yamamoto Opens His Private Sketchbook in a First-Ever Thames & Hudson ‘Drawings’ Book. 사진=Thames & Huds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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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다리와 굽은 목을 가진 새들도 같은 방식으로 종이 위에 놓였다. 몸을 앞으로 숙인 새의 등에는 짧은 연필선이 여러 방향으로 겹쳐 있고, 날개는 몸통 위에서 두꺼운 덩어리를 만든다. 목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안쪽으로 접히고, 가느다란 다리는 몇 개의 선만으로 끝난다.

목을 길게 늘어뜨린 새는 외곽선만으로 몸의 균형을 유지한다. 머리와 부리, 목과 몸통이 하나의 긴 곡선으로 이어지고, 접힌 날개는 등 뒤에 얹힌 천처럼 내려앉는다. 깃털의 무늬를 세밀하게 옮기기보다 목이 꺾이는 각도와 날개가 겹쳐지는 순서를 따라간 그림이다.

새의 몸에서 관찰한 곡선은 인물 드로잉의 높은 칼라와 숙인 어깨, 여러 겹으로 포개진 소매와 치마로 이어진다. 날개가 몸통과 분리되지 않은 채 부피를 만드는 방식도 야마모토의 옷과 닮아 있다. 재킷과 코트는 인체의 굴곡을 그대로 감싸기보다 어깨와 등에서 한 번 부풀었다가 밑단으로 흘러내린다.

완성된 옷을 고정된 도형으로 다루지 않는 태도도 드로잉에 남아 있다. 걷는 동안 코트가 뒤로 밀리고, 치마가 몸의 회전보다 늦게 따라오는 움직임을 한 줄의 외곽선으로 확정하지 않는다. 같은 부위를 여러 차례 그은 연필선은 직물이 흔들리며 바뀌는 위치를 동시에 기록한다.

오래된 신문과 서로 다른 질감의 종이를 사용했다는 점도 야마모토의 작업 방식과 맞닿아 있다. 드로잉은 깨끗한 백지 위에서 완결된 이미지로 분리되지 않는다. 종이에 남은 문자와 얼룩, 접힌 흔적 위로 인물과 동물이 겹친다. 옷을 새것의 표면으로만 다루지 않고 시간과 사용의 흔적을 받아들이는 야마모토의 미감이 재료 선택에서도 이어진다.

1977년 도쿄에서 1981년 파리까지

1943년 도쿄에서 태어난 야마모토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어머니가 운영하던 양재점에서 일했다. 법조인의 길을 떠나 의복 제작을 택했고, 1977년 도쿄에서 첫 컬렉션을 발표했다. 1981년에는 파리에 매장을 열며 유럽 활동을 본격화했다.

양재점에서 접한 옷은 런웨이만을 위해 만들어진 의상이 아니었다. 몸을 보호하고 생활 속에서 반복해서 입는 옷, 체형과 나이에 따라 수선되는 옷이 작업의 출발점에 놓였다. 야마모토가 여성의 신체를 강조하는 재단보다 몸을 넓게 감싸는 재킷과 코트를 발전시킨 배경도 생활과 의복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파리 진출 이후 야마모토는 검정과 비대칭, 불규칙한 재단을 일시적인 충격 효과로 소비하지 않았다. 긴 코트와 넓은 바지, 한쪽으로 무너지는 재킷과 치마는 수십 년에 걸쳐 반복되고 변형됐다. 검정은 계절마다 소재와 두께를 달리했고, 비대칭은 장식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일 때 달라지는 옷의 균형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남았다.

유럽 패션이 신체에 밀착한 여성복과 단단한 남성복을 분리해온 동안 야마모토는 두 영역의 요소를 한 착장 안에 놓았다. 남성복 재킷은 여성의 몸을 드러내지 않는 넓은 외곽으로 바뀌었고, 남성복에는 치마와 긴 드레이프, 부드럽게 흔들리는 직물이 들어왔다. 성별에 따라 옷의 형태를 미리 결정하기보다 개별 신체와 자세에 따라 실루엣을 다시 조절했다.

재킷과 치마, 셔츠와 넓은 바지의 교차

Yohji Yamamoto Opens His Private Sketchbook in a First-Ever Thames & Hudson ‘Drawings’ Book. 사진=Thames & Huds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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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재킷과 넓은 바지를 입은 인물 곁에는 느슨한 셔츠와 어두운 바지를 착용한 인물이 서 있다. 재킷의 어깨는 몸보다 넓고, 허리선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셔츠는 바지 안에 단정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한쪽으로 흘러내린다. 구두와 손은 몇 개의 선으로 마무리됐지만 상체의 기울기와 바지의 폭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짙은 라펠의 재킷과 넓게 퍼지는 치마를 입은 인물은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재킷은 상체를 짧고 단단하게 묶고, 치마는 허리 아래에서 여러 겹으로 확장된다. 치맛단의 높이를 일정하게 맞추지 않아 걸음을 옮기는 동안 직물이 흔들리는 방향까지 들어온다.

한 인물 안에 재킷과 치마, 단단한 선과 느슨한 주름이 함께 놓였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구분하는 표식보다 어깨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길이, 허리에서 발목까지 퍼지는 직물의 양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야마모토의 드로잉이 유행하는 옷의 세부보다 신체와 의복 사이의 거리에서 출발한다는 사실도 이 대목에서 분명해진다.

인물들의 자세는 정면을 향해 정지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과 다르다. 등을 보이고, 서로 기대고, 걷거나 고개를 돌린다. 몸이 움직이면서 재킷의 한쪽 자락이 벌어지고, 셔츠와 치마의 선도 좌우가 달라진다. 야마모토에게 비대칭은 완성된 옷에 덧붙이는 장식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을 그리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였다.

영화와 스포츠웨어로 넓어진 검은 실루엣

야마모토의 작업은 런웨이 밖에서도 이어졌다. 영화 ‘브라더(Brother)’와 ‘세상 끝까지(Until the End of the World)’의 의상을 맡아 인물의 성격과 움직임을 옷으로 구성했다. 영화 속 의상에서도 장식보다 코트의 길이와 어깨의 넓이, 배우가 걷거나 몸을 돌릴 때 달라지는 직물의 흐름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2003년 아디다스(adidas)와 출범한 Y-3는 스포츠웨어의 기능적인 소재와 야마모토의 재단을 하나의 브랜드 안에 결합했다. 운동화와 기능성 의류에도 검정 중심의 색채, 넓은 바지와 긴 상의, 몸에서 떨어지는 실루엣이 들어왔다. 디자이너 패션과 스포츠웨어의 장기 협업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부터 두 영역을 독립된 컬렉션으로 운영한 시도였다.

드로잉은 런웨이와 영화, 스포츠웨어를 잇는 공통의 출발점으로 읽힌다. 인물의 자세를 먼저 정하고, 옷의 무게가 모일 부분을 검게 채우며, 움직임에 따라 밑단의 방향을 바꾸는 과정이 서로 다른 작업에서 반복된다. 완성된 의상에서는 봉제와 소재에 가려지는 판단이 종이 위에서는 연필과 잉크의 흔적으로 직접 남는다.

알렉상드르 삼송의 해설, 피터 새빌의 디자인

알렉상드르 삼송은 팔레 갈리에라에서 현대 패션과 디자이너 아카이브를 다뤄온 큐레이터다. 마르탱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와 릭 오언스(Rick Owens) 등 의복의 구조와 제작 관습을 다시 해석한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전시로 정리했다. ‘Yohji Yamamoto Drawings’에서도 완성된 컬렉션의 부속 자료가 아니라 독립된 작업으로 드로잉을 살핀다.

피터 새빌은 음악과 패션, 문화 영역을 오가며 인쇄물과 시각 이미지를 설계해온 그래픽 디자이너다. 서로 다른 크기와 재질의 종이에 남은 그림을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 여백과 활자, 이미지의 순서가 드로잉을 읽는 속도를 조절한다.

Yohji Yamamoto Opens His Private Sketchbook in a First-Ever Thames & Hudson ‘Drawings’ Book. 사진=Thames & Huds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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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짙은 회색과 검정을 수평으로 나누고, 검은 붓 자국을 중앙에 크게 배치했다. 붓질은 온전한 형태로 들어가지 않고 위아래 경계에서 잘려 있다. 제목과 저자명은 오른쪽 아래에 세로로 놓였다. 인물이나 의상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야마모토의 손이 지나간 흔적과 검정의 농도를 먼저 드러낸 구성이다.

야마모토가 직접 그림을 골랐다는 점은 책의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작업실 자료를 외부의 기준에 따라 연대순으로 정리한 전작집보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업에서 남길 선과 인물을 선택한 선집에 가깝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굽은 등과 넓은 어깨, 검게 뭉친 소매와 흔들리는 치마는 야마모토가 오랫동안 붙잡아온 비례를 압축한다.

‘Yohji Yamamoto Drawings’는 완성된 검은 옷 뒤에 남아 있던 종이 작업을 별도의 기록으로 묶는다. 런웨이에 오르기 전 야마모토가 먼저 정한 것은 장식이나 유행하는 색이 아니라 사람이 서 있는 자세, 옷이 몸에서 떨어지는 거리, 검게 채울 부분과 비워둘 여백이었다. 미공개 드로잉은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작업 세계를 완성된 의상 바깥에서 다시 읽게 하는 자료로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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