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리 위크 2026 기간 쿠퍼 스퀘어서 ‘Wesselmann x Matsuyama’…1963년 정물과 2025년 슈퍼마켓 회화 병치
[KtN 임민정기자]로열 크라운 콜라 상자가 캔버스 중앙을 가득 채운다. 62년 뒤 제작된 회화에서는 럭키 참스 시리얼과 애드빌이 빼곡한 슈퍼마켓에 여러 인물이 모여 앉았다. 톰 웨셀만(Tom Wesselmann)의 ‘Still Life #35’와 토모카즈 마츠야마(Tomokazu Matsuyama)의 ‘We The People’이 오는 9월 뉴욕 쿠퍼 스퀘어에서 마주 선다.
톰 웨셀만 재단과 알민 레쉬(Almine Rech)는 아모리 위크 2026에 맞춰 ‘Wesselmann x Matsuyama’를 연다. 전시 장소는 웨셀만이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생애 마지막 시기의 작품을 제작한 쿠퍼 스퀘어 작업실이다. 2004년 웨셀만이 세상을 떠난 뒤 일반 관람객에게 문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웨셀만은 ‘Great American Nude’ 연작과 사람의 신체보다 크게 확대한 정물로 미국 팝아트의 한 축을 세웠다. 립스틱과 선글라스, 담배, 과일, 음료수병처럼 일상에서 접하는 물건을 기념비적인 크기로 키웠고, 사물의 윤곽에 맞춰 캔버스를 자르거나 여러 구조물을 벽과 바닥에 나눠 배치했다.
붉은 립스틱과 금빛 원통, 검은 선글라스, 붉은 구슬 장식이 바닥 가까이 이어진 대형 입체 정물은 웨셀만이 크기를 다루는 방식을 압축한다. 선글라스는 가구처럼 넓게 펼쳐지고 립스틱은 하나의 기둥처럼 솟아 있다. 빨강과 금색, 청록색의 강한 대비와 매끄러운 광택은 화장대 위 소지품을 독립된 조형물로 바꾼다.
웨셀만이 추구한 ‘슈퍼 리얼리티(super reality)’도 정밀한 재현보다 크기와 색채의 과장에 가까웠다. 실제 사물보다 더 크고 선명한 형태를 만들어 익숙함을 흔드는 방식이다. 광고와 포장지에서 가져온 원색, 단순한 윤곽, 반짝이는 표면은 생활용품에 강한 물리적 존재감을 부여했다.
전시의 중심에는 웨셀만이 1963년 제작한 ‘Still Life #35’가 놓인다. 가로 192인치, 약 4.88m에 이르는 네 폭의 캔버스에는 콜라병과 운반 상자, 포장된 식빵, 식품 광고, 레몬과 오렌지, 여객기와 해안 풍경이 한꺼번에 들어간다. 유화와 콜라주를 결합한 대형 정물이다.
로열 크라운 콜라(Royal Crown Cola) 상자의 붉은 바탕과 흰색 활자는 작품 중앙을 점유한다. 상품명은 정보를 전달하는 글자에서 벗어나 넓은 색면과 굵은 윤곽을 구성한다. 상자 뒤로 솟은 콜라병과 왼쪽의 식빵, 아래쪽의 레몬과 오렌지도 실제 비례를 따르지 않는다. 식료품이 인물이나 건물처럼 커지면서 전통 정물화가 다루던 사물의 위계가 뒤집힌다.
여객기와 휴양지 풍경, 어린이가 등장하는 식품 광고, 콜라 운반 상자는 하나의 주방이나 식료품점을 재현하지 않는다. 잡지와 광고판, 상품 포장지에서 잘라낸 듯한 이미지가 겹치며 1960년대 미국의 가정과 유통 공간을 압축한다. 상품이 생활의 배경에 머물지 않고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다.
마츠야마가 2025년 제작한 ‘We The People’은 소비 환경을 인물 군상까지 넓힌다. 시리얼과 의약품이 진열된 슈퍼마켓 통로 중앙에 여러 사람이 앉거나 서 있다. 한쪽 팔을 든 중심 인물과 주변 인물들의 자세는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소크라테스의 죽음(The Death of Socrates)’을 바탕으로 짜였다.
다비드의 역사화에서 감옥에 모였던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은 마츠야마의 작품에서 대형 유통 매장의 소비자로 바뀐다. 독배가 놓인 고전 회화의 자리를 식료품과 의약품, 쇼핑카트가 대신한다. 체크와 꽃무늬, 기하학적 문양이 뒤섞인 의상은 상품 포장의 색채와 맞부딪히며 인물과 진열대의 경계를 흐린다.
1976년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마츠야마는 에도·메이지 시대 미술부터 서양 고전 회화, 전후 미술, 패션과 대중문화까지 서로 다른 시각 언어를 결합해 왔다. 특정 문화권을 대표하는 도상을 선택하기보다 국경과 시대를 건너 유통되는 이미지를 한 작품에 중첩한다.
웨셀만의 작품에서는 콜라병과 식빵, 과일이 굵은 윤곽과 넓은 색면으로 분리된다. 마츠야마의 슈퍼마켓에서는 인물과 상품, 고전 회화와 현대 패션이 촘촘하게 얽힌다. 웨셀만이 하나의 사물을 거대하게 확대했다면 마츠야마는 수많은 이미지가 동시에 밀려드는 환경을 회화 안에 옮겼다.
1963년 ‘Still Life #35’에서 상품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한다. 2025년 ‘We The People’에서는 상품 진열대가 사람들을 둘러싼 생활공간이 된다. 콜라와 식빵을 앞세운 전후 미국의 소비 풍경은 시리얼과 의약품, 건강관리 제품이 한 통로에 쌓인 오늘날의 유통 구조로 이어진다.
두 작품 사이에 놓인 62년은 소비재의 종류뿐 아니라 이미지가 이동하는 범위의 변화를 담는다. 웨셀만은 미국 내부에서 생산된 광고와 상품 포장을 확대했다. 마츠야마는 미술사와 브랜드, 패션과 대중문화가 국가와 시대를 넘나드는 조건을 복잡한 인물 구성으로 풀어낸다.
두 작가의 작품은 2024년 10월 프랑스 루이비통재단(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개막한 ‘Pop Forever, Tom Wesselmann &…’에서도 함께 소개됐다. 웨셀만의 작품 150점과 서로 다른 세대·국적의 작가 35명이 제작한 작품 70점을 아우른 전시였다. 마츠야마는 웨셀만 이후 달라진 팝의 시각 언어를 보여주는 동시대 작가로 참여했다.
파리 전시가 팝아트의 계보를 여러 세대에 걸쳐 펼쳤다면 뉴욕 전시는 웨셀만과 마츠야마 두 사람에게 집중한다. 장소도 미술관에서 웨셀만의 실제 작업실로 옮겨진다. 벽과 바닥을 함께 점유하는 웨셀만의 대형 작업은 쿠퍼 스퀘어의 건축 구조와 맞물리며 일반 전시장과 다른 크기 관계를 만든다.
‘Wesselmann x Matsuyama’는 9월 19일 개막한다. 쿠퍼 스퀘어 작업실은 전시 기간 중 사흘간 시간대별 예약 관람을 받는다. 1960년대의 콜라 상자와 2025년의 슈퍼마켓 사이에 놓인 62년의 간격은 웨셀만이 마지막 10년을 보낸 공간에서 다시 맞춰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