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흰 여백에서 나비 내부의 발광으로, ‘무한’에서는 점등·점멸과 부조 결합
2017년 이후 ‘별과 별사이’, 안료와 실제 빛을 한 화면에 겹치며 회화의 시간까지 확장

나비킴(김현정)작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나비킴(김현정)작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2012년 ‘무한 7(Infinity 7)’에서는 나비가 더 이상 빛을 표현한 형상에 머물지 않는다. 산을 향해 날아가는 나비 내부에 실제 광원이 들어가고, 빛의 세기와 점멸이 달라지면서 정지된 형상에 시간이 생긴다. 밝기가 서서히 올라갔다 내려가고 따뜻한 빛이 나비의 몸과 날개를 따라 번지면서 하나의 그림이 같은 상태로 머물지 않는다. 물감으로 빛을 닮은 색을 만들고, 플렉시글라스와 RGB 광원으로 새로운 색을 실험했던 김현정의 작업은 이 시기부터 빛 자체의 움직임을 회화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김현정, ‘무한 7(Infinity 7)’, 2012, LED·포토페인팅·아크릴 부조·피그먼트 프린트, 162×108㎝. 산을 향해 비상하는 나비의 부조 내부에 LED를 설치하고 밝기와 점멸을 조절했다. 나비의 빛이 서서히 강해지는 변화가 정지된 회화에 시간과 움직임을 더한다.
김현정, ‘무한 7(Infinity 7)’, 2012, LED·포토페인팅·아크릴 부조·피그먼트 프린트, 162×108㎝. 산을 향해 비상하는 나비의 부조 내부에 LED를 설치하고 밝기와 점멸을 조절했다. 나비의 빛이 서서히 강해지는 변화가 정지된 회화에 시간과 움직임을 더한다.

‘무한 7’의 공간은 양쪽 벽이 멀리 있는 산을 향해 좁아지는 구조다. 벽면의 반복되는 수평선도 한 방향으로 빠르게 수렴한다. 다섯 마리의 나비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원경을 향한다. 디지털 공간을 연상시키는 매끈한 구조와 자연의 산이 맞물리고, 그 사이에서 나비의 실제 발광이 가장 강한 생명감을 만든다.

LED의 역할도 달라졌다. 2009년 ‘날으는 빛’에서는 RGB 광원을 투명 재료에 비추고 반사·산란된 색을 촬영해 작품으로 옮겼다. ‘무한’에서는 광원이 최종 작품 안에 남는다. 사진이나 프린트로 환원되지 않은 빛이 나비 내부에서 직접 켜지고 꺼진다. 빛은 제작 과정에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라 작품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

점멸의 속도는 단순한 장식 효과로 설정되지 않았다.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간격을 조절하면서 나비가 호흡하거나 심장이 뛰는 듯한 리듬을 만들었다. 나비라는 생명체의 운동을 날개의 형태만으로 묘사하지 않고, 빛의 변화가 움직임을 대신하게 했다. 정지된 회화에 실제 시간이 들어온 셈이다.

이보다 앞선 ‘제로(Zero)’ 연작에서는 원과 타원 안에 나비와 꽃을 놓고 자개의 반사성과 광택을 이용했다. 주변 빛과 관람자의 위치가 달라지면 물질의 색도 달라졌다. ‘무한’에서는 변화의 주체가 작품 내부로 들어온다. 외부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재료에서 스스로 빛을 발생시키는 구조로 이동했다.

2012년 ‘무한 2(Infinity 2)’와 ‘무한 1(Infinity 1)’에서는 ‘비상’이라는 의미가 공간 구성에서도 크게 나타난다. 설산을 배경으로 한 ‘무한 2’에는 강한 색을 품은 나비가 눈 덮인 공간을 가로지른다. 차갑고 비어 있는 배경과 나비의 복합적인 색이 강하게 대비된다. ‘무한 1’에서는 수직 타원의 안쪽을 비워두고 주변의 색과 나비가 원을 따라 흐르는 듯 배치됐다.

김현정, ‘무한 1(Infinity 1)’, 2012, 캔버스에 혼합재료, 143×114㎝. 수직 타원의 내부를 넓게 비우고 색과 나비를 주변부에 배치했다. 꽉 채우던 색에서 여백으로 이동하면서 비움과 새로운 시작을 한 화면에 담은 작업이다.
김현정, ‘무한 1(Infinity 1)’, 2012, 캔버스에 혼합재료, 143×114㎝. 수직 타원의 내부를 넓게 비우고 색과 나비를 주변부에 배치했다. 꽉 채우던 색에서 여백으로 이동하면서 비움과 새로운 시작을 한 화면에 담은 작업이다.

‘무한 1’에서 비어 있는 중심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잔여 공간과 다르다. 바깥쪽 색이 안을 둘러싸면서 비어 있는 부분 자체가 구성의 중심이 된다. 김현정은 당시 ‘비움’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흰 바탕과 밝은 여백이 ‘부활(Rebirth)’ 연작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타난다.

2014년 ‘부활 014128(Rebirth 014128)’에서는 커다란 나비가 구름 위로 솟아오른다. 날개 안쪽은 흰색에 가깝게 비워져 있고 가장자리에는 청록과 분홍, 보라와 붉은색이 얇게 남는다. 아래쪽 구름에는 살구색과 황색, 연한 분홍이 겹친다. 이전 작품에서 나비 날개를 복잡한 색과 무늬로 채웠던 방식과 다른 모습이다.

김현정, ‘부활 014128(Rebirth 014128)’, 2014, 프린트 캔버스에 아크릴, 194×130㎝. RGB 빛으로 구성한 나비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고 구름을 아크릴로 다시 채색했다. 나비의 밝은 내부와 회화적인 구름이 만나 디지털 광색과 안료의 질감을 한 작품 안에 결합했다.
김현정, ‘부활 014128(Rebirth 014128)’, 2014, 프린트 캔버스에 아크릴, 194×130㎝. RGB 빛으로 구성한 나비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고 구름을 아크릴로 다시 채색했다. 나비의 밝은 내부와 회화적인 구름이 만나 디지털 광색과 안료의 질감을 한 작품 안에 결합했다.

‘부활 014128’은 디지털 이미지와 손으로 칠한 회화가 나란히 존재한다. 나비는 RGB 빛의 색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배경의 구름에는 아크릴 붓질이 더해졌다. 나비에는 광색의 선명함을 남기면서 주변에는 안료의 밀도와 손의 흔적을 살렸다. 빛과 물감을 한쪽으로 통일하지 않고 두 재료의 차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작품 제목에 들어간 ‘부활’도 나비의 생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김현정에게 상실 이후 다시 사고가 열리고 존재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과정과 연결됐다. 닫힌 상태에서 새로운 인식으로 이동하는 변화가 나비의 비상과 흰 여백으로 옮겨졌다.

2015년의 ‘부활’ 두 점에서는 흰색의 비중이 더 커진다. 옅은 보라와 청록의 타원 안에 넓은 흰 공간을 남기고 몇 마리의 나비만 배치했다. 앞선 ‘나비의 꿈’처럼 나비와 색을 반복적으로 채우는 대신 덜어내는 쪽으로 화면이 달라졌다. 흰색은 나비를 둘러싼 배경이면서 다른 색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 된다.

이 시기 김현정의 작업에서 비움과 발광은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화면을 비울수록 나비의 색은 선명해지고, 형상 안에 들어간 LED는 주변이 어두울수록 또렷해진다. 많은 색을 더하는 것보다 어떤 색을 남기고 어느 부분을 비울지가 중요해진다.

2013년 ‘무한 8(Infinity 8)’에서는 평면과 입체, 물감과 LED가 한 작품 안에서 더 직접적으로 나뉜다. 좌측에는 아크릴로 그린 타원과 나비가 있고, 우측에는 앞으로 돌출된 아크릴 박스 안에 LED가 설치된다. 광원이 켜지면 오른쪽 원이 밝아지고, 두 원이 이어지면서 무한대 기호를 연상시키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김현정, ‘무한 8(Infinity 8)’, 2013, LED·포토페인팅·아크릴 부조·아크릴 피그먼트 프린트, 84×106㎝. 평면 회화와 LED를 품은 입체 아크릴 구조를 좌우에 배치했다. 광원의 색이 순차적으로 달라지면서 원과 나비의 상태도 계속 변화한다.
김현정, ‘무한 8(Infinity 8)’, 2013, LED·포토페인팅·아크릴 부조·아크릴 피그먼트 프린트, 84×106㎝. 평면 회화와 LED를 품은 입체 아크릴 구조를 좌우에 배치했다. 광원의 색이 순차적으로 달라지면서 원과 나비의 상태도 계속 변화한다.

‘무한 8’에서 LED는 빨강과 초록, 짙은 청색, 백색으로 순차적으로 바뀐다. 한 작품을 보는 동안 같은 나비의 색이 계속 달라진다. 색채가 물감처럼 한 번 결정된 뒤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한다. 나비 내부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빛을 만들기 위해 광원을 직접 노출하지 않고 아크릴 구조 안에 넣어 확산시키는 방법도 사용됐다.

회화의 고정된 색과 LED의 변화하는 색을 한 작품 안에 놓으면서 관람자가 보는 시간도 작품의 일부가 됐다. 처음 보았을 때의 색과 몇 초 뒤의 색이 다르고, 주변 공간이 밝을 때와 어두울 때에도 작품의 인상이 달라진다.

LED의 한계도 작업을 다시 바꿨다. 광원은 어두운 환경에서 가장 선명하지만 일반 전시장처럼 주변 조도가 높아지면 발광 효과가 약해진다. 김현정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아크릴 안료를 두껍게 올리고 표면 자체가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도록 했다. LED만 강하게 보이는 작품이 아니라 불이 켜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회화의 색과 질감이 살아 있도록 물성을 다시 강화했다.

이 변화는 ‘무한-빛의 속삭임(Infinity-Whisper of Light)’ 연작에서 나타난다. LED와 아크릴 부조, 회화를 함께 사용해 고정된 나비 실루엣 안에서 빛의 밝기와 속도만 미세하게 변화하도록 했다. 색과 빛은 크게 번쩍이기보다 안쪽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2017년부터 이어진 ‘별과 별사이(Interstellar)’는 이 실험을 다시 회화 쪽으로 끌어당긴다. ‘별과 별사이 1705’에는 청록빛이 강한 바탕 가운데 작은 나비가 놓이고, 중심에서 여러 갈래의 빛이 바깥으로 뻗는다. 표면은 매끈하지 않고 안료의 결이 남아 있으며, 실제 LED가 중앙에서 빛난다.

김현정, ‘별과 별사이 1705(Interstellar 1705)’, 2017, 캔버스에 LED·혼합재료, 60×60㎝. 청록 계열의 회화적 표면 중앙에 나비와 실제 광원을 배치하고 빛이 바깥으로 퍼지는 방사 구조를 만들었다. LED와 회화의 물성을 한 작품 안에서 결합한 ‘별과 별사이’ 초기 작업이다.
김현정, ‘별과 별사이 1705(Interstellar 1705)’, 2017, 캔버스에 LED·혼합재료, 60×60㎝. 청록 계열의 회화적 표면 중앙에 나비와 실제 광원을 배치하고 빛이 바깥으로 퍼지는 방사 구조를 만들었다. LED와 회화의 물성을 한 작품 안에서 결합한 ‘별과 별사이’ 초기 작업이다.

이 작품부터 실제 광원과 안료 사이의 관계가 더 밀접해진다. 나비 뒤에서 나오는 빛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아크릴의 두꺼운 질감과 붓질이 빛을 받아 다시 색을 만든다. 광원이 물감 위에 얹힌 장치처럼 분리되지 않고 표면의 요철과 색층 사이에 묻힌다.

2024년 ‘별과 별사이 2402’에서는 회화적인 밀도가 더 높아진다. 중앙의 나비를 둘러싸고 청록과 짙은 청색의 원이 여러 겹 이어지며, 황색과 녹색의 짧은 선들이 동심원을 따라 놓인다. 중심부에서는 실제 빛이 나오지만 주변 색층 역시 강한 존재감을 갖는다.

김현정, ‘별과 별사이 2402(Interstellar 2402)’, 2024, 캔버스에 LED·혼합재료, 60×60㎝. 중심의 나비와 실제 광원 주변에 청록과 청색의 색층을 반복해서 쌓았다. 2017년 작업보다 붓질과 물성이 강해지면서 빛과 안료가 동시에 작품의 구조를 만든다.
김현정, ‘별과 별사이 2402(Interstellar 2402)’, 2024, 캔버스에 LED·혼합재료, 60×60㎝. 중심의 나비와 실제 광원 주변에 청록과 청색의 색층을 반복해서 쌓았다. 2017년 작업보다 붓질과 물성이 강해지면서 빛과 안료가 동시에 작품의 구조를 만든다.

2017년 작품과 2024년 작품 사이의 차이는 중심에서 퍼지는 광선에서도 나타난다. 2024년에는 빛줄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 채색하면서 안료의 층을 만들었다. 실제 LED의 밝음만으로 방사 효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붓질 자체가 빛의 방향을 이어간다. 광원에서 시작된 밝음이 회화의 색으로 넘어가는 구조다.

전시장에서는 주변 밝기에 따라 작품이 다시 달라진다. 실내가 밝으면 아크릴과 색층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조도를 낮추면 중앙의 LED가 강해지면서 원형의 깊이가 커진다. 바닥에 반사된 여러 색의 빛까지 더해지면 작품은 벽에 걸린 정사각형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2024년 ‘별과 별사이’ 13점을 함께 설치한 구성에서는 변화가 더 분명하다. 각 작품의 중앙에는 나비와 빛이 있지만 붉은색과 보라색, 청록과 녹색 등 작품마다 색이 달라진다. 전시장 조도를 낮추면 여러 광원이 바닥까지 비치면서 벽과 바닥이 하나의 색 공간처럼 이어진다.

이때 회화의 범위도 달라진다. 작품 한 점의 물감과 캔버스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조도와 설치 간격, 벽과 바닥의 반사까지 관람 경험에 들어온다. 2017년에는 네 작품을 정방형으로 배치했고, 2024년에는 여러 점을 길게 연결해 각기 다른 빛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관계를 맺도록 했다.

‘무한’에서 시작된 움직이는 빛은 ‘별과 별사이’에서 더 복합적인 회화로 돌아왔다. LED만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아크릴 안료의 두께와 붓질, 색층을 강화했다. 실제 광원과 회화적 물성이 경쟁하지 않고 서로의 밝음을 바꾸는 구조를 만들었다.

김현정(나비킴)작가.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김현정(나비킴)작가.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김현정에게 LED는 물감을 밀어낸 기술이 아니었다. 빛을 색처럼 다룰 수 있게 한 새로운 재료였고, 물감은 그 빛을 받아들이고 확산하는 표면으로 다시 역할을 얻었다. ‘무한 7’에서는 빛의 점멸이 나비의 심장처럼 작동했고, ‘무한 8’에서는 색의 변화가 시간을 만들었다. ‘별과 별사이’에서는 실제 광원과 반복된 붓질이 한 작품 안에 겹쳐졌다.

정지된 나비를 그리던 작업에서 빛나는 나비, 다시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고 전시장 전체로 반사되는 나비까지 이동하면서 김현정의 회화도 한 점의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빛은 작품 안에서 켜지고 꺼지며 색을 바꾸고, 안료의 표면을 지나 공간으로 번진다. 김현정이 오랫동안 찾아온 ‘빛나는 색채’는 이 시기에 보이는 색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빛과 회화가 만나는 상태로 한 단계 더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