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템포러리 조정 뒤 검증된 거장으로 자금 이동…소더비 블라키에 컬렉션과 한국 경매시장이 드러낸 희소성·보증·마케팅의 질서

[KtN 임민정기자]미술의 가격은 작품의 가치를 숫자로 번역한 결과가 아니다. 어느 시대에 어떤 자본이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희소하다고 여기고 어디에서 위험을 느끼는지가 경매가격에 함께 찍힌다. 최고가 기록은 미술사의 서열표라기보다 당대 자본의 심리에 가깝다. 2026년 가을 소더비가 내놓은 블라키에-아리에타 컬렉션은 그런 가격의 성격을 유난히 선명하게 드러낸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1890년작 'Châtaigniers en fleurs roses et blanches'에 약 1억8000만달러, 폴 세잔(Paul Cézanne)의 'Arlequin'에 약 1억2000만달러가 책정됐다. 작품 12점의 전체 추정가 약 4억5000만달러 가운데 두 점이 3억달러를 차지한다.

고흐가 하루아침에 더 위대한 화가가 된 것은 아니다. 세잔의 미술사적 위치가 2026년에 갑자기 높아진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시장이다. 팬데믹 이후 젊은 작가와 컨템포러리 아트에 빠르게 몰렸던 자금은 조정을 거쳤고, 시장은 오래 검증된 작가와 좀처럼 다시 나오지 않는 작품을 찾기 시작했다. 2025년 세계 미술시장 거래액은 596억달러로 전년보다 4% 늘었지만 회복은 고르게 나타나지 않았다. 1000만달러 이상 작품의 경매액은 30% 증가한 반면 5만달러 미만 거래는 금액과 건수 모두 줄었다. 돈이 미술시장 전체로 돌아왔다기보다 가장 비싼 작품으로 집중됐다는 편이 가깝다.

작가의 세대에서도 방향이 갈렸다. 포스트워·컨템포러리 경매시장은 2021년 정점 이후 수년 동안 축소됐고, 컨템포러리 아트는 2024년 큰 폭의 하락을 거친 뒤 2025년에도 뚜렷한 반등을 만들지 못했다. 반면 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 경매액은 2025년 큰 폭으로 증가했고 모던 아트도 성장했다. 한동안 시장을 달궜던 새 이름보다 이미 미술사적 위치와 거래 이력이 쌓인 작가로 자금이 옮겨간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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