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코톨드 갤러리 유럽 첫 개인전 ‘Someone Like You’…회화 19점으로 펼친 도시의 밤
술집·클럽·실내에 놓인 친구와 연인들…사회적 범주보다 관계와 감정에 가까이
이민·욕망·소속의 문제도 거대한 선언 대신 생활의 표정으로…동시대 인물전의 변화

[KtN 김성은기자]술병이 빼곡하게 늘어선 바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 한 손은 테이블을 짚고 다른 손에는 레몬 조각을 들었다. 뒤쪽 사람들은 술잔을 들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한쪽에서는 두 인물이 몸을 가까이 붙인다. 짙은 초록빛은 얼굴과 옷, 병과 벽을 한꺼번에 감싸며 늦은 밤의 공기를 만든다. 살만 투르(Salman Toor)의 인물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기보다 누구와 함께 있고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로 모습을 드러낸다.

런던 코톨드 갤러리(Courtauld Gallery)의 ‘Someone Like You’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화가 살만 투르의 유럽 첫 개인전이다. 회화 19점에는 술집과 클럽, 친구들의 모임, 차 안, 침실과 실내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사람들은 춤추고 기대고 술을 마시며, 어느 순간 혼자 남는다. 이민과 소속, 욕망과 친밀함은 작품 전체를 가로지르지만 인물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표지처럼 앞에 놓이지 않는다.

술병이 늘어선 바를 배경으로 중앙 인물과 주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자세와 시선을 취한 살만 투르(Salman Toor)의 회화. 짙은 초록빛이 인물과 공간을 한데 묶으며 군중 속 친밀함과 거리감을 함께 담았다. 사진=Courtauld Gallery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술병이 늘어선 바를 배경으로 중앙 인물과 주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자세와 시선을 취한 살만 투르(Salman Toor)의 회화. 짙은 초록빛이 인물과 공간을 한데 묶으며 군중 속 친밀함과 거리감을 함께 담았다. 사진=Courtauld Gallery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중앙의 남자는 주변 사람들보다 크게 자리하지만 영웅적인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어깨는 조금 내려가 있고 시선은 정면을 비껴간다. 느슨하게 열린 옷과 힘을 뺀 자세에서는 밤이 깊어진 뒤의 피로가 묻어난다. 바로 뒤에서는 사람들이 각자의 대화와 접촉을 이어가지만 중앙 인물은 어느 관계에도 완전히 들어가 있지 않은 듯 떨어져 있다.

테이블에는 술병과 잔, 칼과 레몬이 흩어져 있다. 반듯하게 정리된 정물보다 오래 머문 시간의 흔적에 가깝다. 술병 사이로 사람들의 얼굴이 겹치고, 바깥의 군중은 뚜렷한 개인보다 밤을 함께 보내는 집단으로 이어진다. 한 사람의 초상과 도시의 풍속이 같은 공간 안에서 겹친다.

초록색은 투르의 회화에서 밤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색이기도 하다. 피부와 옷, 가구와 벽의 고유색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짙고 탁한 녹색을 넓게 덮어 인물과 공간을 같은 공기 안에 묶는다. 얼굴의 피부색과 술병의 유리가 비슷한 빛을 받고,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한 장소의 온도 안에서 연결된다. 클럽 조명의 인공적인 빛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감정을 한데 가라앉히는 색으로 작동한다.

최근 인물전에서 눈에 띄는 변화도 사람을 하나의 사회적 범주로 세우는 데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여성과 이민자, 성소수자와 다양한 인종의 인물을 미술관 중심에 세우는 흐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확대됐다. 최근 회화에서는 누가 누구를 대표하는지보다 한 사람이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감정을 지나가는지가 더 세밀하게 다뤄진다.

투르의 인물들은 사회적 소수자로서 자신을 증명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취하고,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다가 다시 혼자가 된다. 정체성은 작품에서 사라지지 않지만 생활을 설명하는 유일한 언어도 아니다. 한 사람의 삶 안에 소속감과 피로, 욕망과 외로움이 함께 들어온다.

‘Someone Like You’라는 제목도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만든다. 특별한 누군가를 바라보는 대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술집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생활은 구체적이지만,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 하는 마음과 같은 공간에서도 혼자라고 느끼는 감정은 특정한 공동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투르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이민과 욕망, 권력과 소속을 회화의 주요 주제로 다뤄왔다.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의 초상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특정 개인의 전기를 보여주기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관계를 만들고 자신의 자리를 찾는 감각이 작품에 남는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표정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어깨를 감싼 팔과 맞닿은 무릎, 등을 돌린 자세와 비껴간 시선이 관계의 상태를 드러낸다. 누가 가까운지, 누가 같은 공간에서도 떨어져 있는지는 대화를 알지 못해도 읽힌다. 투르의 인물화가 초상에서 관계의 그림으로 넓어지는 대목이다.

밝은 옷과 검은 옷을 입은 두 인물이 나란히 선 살만 투르의 작품. 가까이 서서 비슷한 손동작을 취하면서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게 해 함께 있음과 개인의 고립을 동시에 남겼다. 사진=Courtauld Gallery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밝은 옷과 검은 옷을 입은 두 인물이 나란히 선 살만 투르의 작품. 가까이 서서 비슷한 손동작을 취하면서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게 해 함께 있음과 개인의 고립을 동시에 남겼다. 사진=Courtauld Gallery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두 인물만 남은 작품에서는 군중의 소음이 사라진다. 왼쪽 인물은 밝은 옷을 입고 손을 가슴 가까이에 올렸으며, 오른쪽 인물도 비슷한 동작을 취한 채 고개를 아래로 향한다. 뒤에는 구체적인 실내 대신 베이지와 갈색의 붓질이 넓게 퍼져 있다. 술집과 클럽의 정보가 걷히면서 두 사람의 자세와 간격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두 인물은 가까이 서 있지만 서로를 마주 보지 않는다. 왼쪽의 시선은 옆으로 흐르고 오른쪽의 시선은 아래로 떨어진다. 비슷한 손동작은 두 사람을 한 관계 안에 묶으면서도 서로 다른 표정과 옷, 시선은 각자의 상태를 남긴다. 함께 있다는 사실과 각자의 고립이 한 그림 안에서 동시에 유지된다.

투르의 회화에서 소속과 고립은 반대편에 놓이지 않는다. 클럽에 들어가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은 남고, 혼자 서 있는 순간에도 공동체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친밀함과 불안, 환희와 피로가 한 사람의 밤 안에서 계속 교차한다.

소수자와 이민자의 삶을 다루는 전시도 긍정적인 대표성과 피해의 서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공동체를 찾는 기쁨과 자신을 드러내는 부담,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긴장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존재한다. 인물을 하나의 메시지로 압축하지 않을 때 오히려 삶의 현실에 가까워진다.

투르의 회화에는 정치적 배경이 분명히 존재한다. 작품의 중심에 이전 미술사에서 자주 보이지 않았던 인물들이 자리하고, 사랑과 친밀함의 모습도 넓어졌다. 정치적인 의미는 구호로 선언되기보다 누가 작품의 중심에 서 있고 누구와 관계를 맺으며 어떤 생활을 이어가는지에서 드러난다.

동시대 인물화가 받아들이는 대상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 초상화가 권력자와 귀족, 부유층과 역사적 인물을 기록하는 데 큰 비중을 뒀다면 오늘의 회화는 도시의 평범한 생활과 사적인 관계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친구들과 보내는 밤, 술집의 대화, 클럽에서의 춤, 혼자 남은 시간이 한 시대를 기록하는 장면이 된다.

미술관 벽을 차지하는 인물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영웅적 인물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평범한 밤과 사적인 감정이 큰 캔버스에 남는다. 개인의 생활이 공적인 전시장에 들어오면서 어떤 삶이 미술사의 기록 대상이 될 수 있는지도 넓어졌다.

투르가 그리는 밤에는 자유와 노출이 함께 있다. 술집과 클럽은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가까운 사람을 만나고 공동체를 확인하는 기쁨과 보이는 존재로 살아가는 긴장이 같은 공간 안에 겹쳐 있다.

코톨드 갤러리라는 장소도 전시의 의미를 넓힌다.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를 비롯한 역사적 회화 컬렉션으로 알려진 미술관에 오늘의 도시생활과 새로운 인물들이 들어왔다. 미술관이 기록하고 보여주는 삶의 범위가 과거의 귀족과 부르주아, 역사적 인물에서 현재 도시의 친구와 연인, 이민자의 일상으로 이어진다.

‘Someone Like You’의 19점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특정한 정체성을 설명하는 문구보다 사람들의 행동이다. 서로 기대고, 술을 마시고, 시선을 피하고, 어느 순간 혼자가 된다. 관계는 안정적으로 고정되지 않고 밤이 흐르는 동안 계속 달라진다.

살만 투르의 인물들은 완벽한 공동체를 만들지 않는다. 가까이 붙어 있으면서도 외롭고, 자유를 누리면서도 불안을 품는다. 미술관에 새로운 얼굴을 등장시키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얼굴이 실제로 어떤 감정을 지나며 살아가는지까지 보여준다. ‘Someone Like You’가 드러내는 전시의 변화도 정체성을 더 많이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한 사람을 하나의 상징으로 줄이지 않고 끝까지 복잡한 개인으로 남겨두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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