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팬 주름과 흰 수염, 정면을 비껴간 시선…1984년 색채 리놀륨 판화에서 인물의 삶을 선과 색으로 압축한 쉬가예프의 초상

[KtN 박준식기자]검은 모자를 쓴 노인이 왼쪽을 바라본다.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겹쳐 있고 눈가와 광대, 콧등과 뺨에도 수많은 선이 지나간다. 턱 아래로 길게 내려온 흰 수염은 얼굴의 어두운 선들과 강하게 대비된다.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Yuristanbek Shygaev)의 1984년작 ‘아산바이 아타(Asanbay Ata)’는 얼굴을 화면 가까이 끌어당긴다. 몸과 주변 공간을 함께 보여주던 초기 인물 작업과 달리, 한 사람의 얼굴과 상반신이 작품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Yuristanbek Shygaev), ‘아산바이 아타(Asanbay Ata)’, 1984, 색채 리놀륨 판화, 40×50㎝, 작가 소장.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Yuristanbek Shygaev), ‘아산바이 아타(Asanbay Ata)’, 1984, 색채 리놀륨 판화, 40×50㎝, 작가 소장.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눈이다. 시선은 관람자를 향하지 않는다. 얼굴은 왼쪽으로 조금 돌아가 있고 두 눈도 같은 방향을 향한다. 눈동자보다 주변을 감싼 선이 훨씬 많다. 눈꺼풀과 눈썹, 눈 아래 주름이 여러 겹으로 쌓이면서 시선에 무게를 더한다.

쉬가예프는 표정을 과장하지 않았다. 웃거나 찡그린 얼굴도 아니다. 입은 흰 수염에 상당 부분 가려졌고 얼굴 근육의 움직임도 크지 않다. 감정을 직접 전달하는 표정보다 얼굴에 축적된 흔적이 인물의 존재를 만든다.

이마는 그 흔적이 가장 밀집된 곳 가운데 하나다. 가로로 이어지는 긴 주름과 짧은 선들이 겹쳐 있고 눈썹 위에서는 선의 방향이 달라진다. 관자놀이와 뺨에는 사선이 늘어나고, 코 주변에서는 선이 짧아진다. 얼굴을 하나의 균일한 피부로 처리하지 않고 부위마다 선의 길이와 방향, 밀도를 바꿨다.

선은 단순한 윤곽을 넘어선다.

코를 따라 내려오는 굵은 선은 얼굴의 중심을 잡지만, 실제 부피는 그 주변에 촘촘하게 새겨진 짧은 선에서 생긴다. 광대에는 비스듬한 해칭이 겹치고 콧등과 눈 아래에는 방향이 다른 선들이 맞물린다. 선이 많아지는 곳은 깊어지고, 상대적으로 비워둔 곳은 앞으로 나온다.

색채 리놀륨 판화라는 매체에서 선은 얼굴을 설명하는 동시에 표면 자체를 만든다. 쉬가예프는 매끈한 피부를 재현하려 하지 않았다. 새긴 흔적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인물의 얼굴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남겼다.

흰 수염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처리했다. 얼굴이 짙은 선의 축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수염은 밝은 면을 넓게 남겼다. 그 위에 가늘고 긴 선을 아래 방향으로 반복한다. 수염의 끝은 한 줄로 깨끗하게 닫히지 않고 여러 가닥으로 흩어진다.

얼굴과 수염 사이에서 작품의 가장 강한 명암 대비가 만들어진다. 짙은 눈썹과 눈가, 어두운 모자 아래로 얼굴의 선이 이어지다가 입 주변에서 갑자기 밝은 수염이 시작된다. 수염은 턱의 형태를 가리면서 얼굴의 윤곽 자체를 아래쪽으로 길게 확장한다.

머리를 덮은 모자 역시 하나의 검은 덩어리로 칠하지 않았다. 갈색과 짙은 선이 여러 방향으로 교차한다. 이마를 따라 내려오는 모자의 경계는 얼굴의 밝은 부분과 맞닿으면서 머리의 둥근 형태를 강조한다. 모자와 얼굴, 수염이 서로 다른 선의 밀도로 분리된다.

귀의 묘사도 눈에 띈다. 화면 오른쪽에 크게 드러난 귀에는 굵은 윤곽과 짧은 곡선을 함께 사용했다. 얼굴에서 쉽게 부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쉬가예프는 귓바퀴의 굴곡까지 남겼다. 노인의 얼굴을 상징적인 몇 개의 특징으로 축약하기보다 실제 인물의 신체적 특징을 끝까지 따라간 흔적이다.

‘아산바이 아타’가 앞선 인물 작업과 갈라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림마’에서는 인물을 둘러싼 직물과 음식, 가구와 찻주전자까지 실내의 상당 부분을 함께 그렸다. 한 사람의 존재가 생활공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초상이었다.

‘아산바이 아타’에서는 주변이 크게 줄었다. 어깨 아래의 몸도 잘렸고 손도 보이지 않는다. 얼굴은 작품 상단 가까이까지 올라간다. 인물과 관람자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졌다.

배경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뒤쪽에는 수직으로 나뉜 면과 촘촘한 선이 있고 오른쪽에는 작은 형상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주변의 사물이 인물과 경쟁하지 않는다. 배경의 역할을 줄인 만큼 얼굴의 주름과 눈, 수염이 작품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초상을 구성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림마’에서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주변 생활까지 넓게 바라봤다면 ‘아산바이 아타’에서는 한 사람에게 축적된 시간을 얼굴에서 찾는다. 공간을 넓히는 대신 얼굴의 표면을 깊게 파고든 셈이다.

1984년은 쉬가예프의 초기 그래픽 작업에서 관찰과 조형적 실험이 함께 진행되던 시기다. 현실에서 출발한 인물과 풍경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선과 면, 색의 관계를 조절하면서 대상을 다시 구성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같은 시기의 ‘해가 진다’에서는 넓은 하늘과 비탈을 큰 색면으로 비우고 아이와 동물을 떨어뜨려 놓았다. ‘아산바이 아타’에서는 반대로 시야를 좁히고 얼굴 내부에 선을 집중시켰다.

두 작품은 밀도에서 거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해가 진다’의 하늘에는 넓은 여백이 있고, ‘아산바이 아타’의 얼굴에는 수많은 선이 들어 있다. 한쪽에서는 덜어냄으로써 공간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선을 축적해 시간을 만든다. 쉬가예프가 같은 시기에도 하나의 조형 방식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색 역시 자연스러운 피부색을 재현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얼굴에는 황록색에 가까운 바탕이 깔리고 모자와 옷에는 갈색, 회색, 청색이 겹친다. 작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푸른색이 넓게 퍼진다. 어깨와 옷의 실제 구조를 세밀하게 설명하기보다 색면이 인물의 하단을 하나로 묶는다.

푸른색은 특히 흥미롭다. 얼굴 주변의 황록색과 갈색이 오래된 종이나 흙에 가까운 무게를 갖는다면 아래쪽의 청색은 전혀 다른 온도를 만든다. 색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명암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초상은 사실적인 관찰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얼굴은 구체적이고 색은 자유롭다.

쉬가예프 초기 작업에서 나타나는 두 방향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나는 부분이다. 눈과 귀, 코와 주름은 한 사람의 개별적인 특징을 놓치지 않으려는 관찰에서 출발한다. 반면 얼굴과 옷을 둘러싼 색은 실제 외관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작품의 구조와 정서를 조절한다.

초상의 중심을 눈이나 입 하나에 고정하지 않은 점도 중요하다. 시선은 눈에서 시작해 이마의 주름으로 올라갔다가 코와 광대를 지나 수염으로 내려온다. 다시 귀와 모자의 선을 따라 위로 움직이고 옷깃과 어깨로 내려간다. 얼굴 전체에 퍼진 선 때문에 관람자는 한 지점에 오래 머물기보다 표면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인물의 나이를 보여주는 방식 역시 단순하지 않다. 흰 수염과 주름은 노년을 즉각적으로 알려준다. 그러나 쉬가예프는 노인을 연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얼굴의 윤곽은 굵고 눈은 또렷하다. 목과 어깨를 감싸는 선도 단단하다.

노년을 감상적인 이미지로 만드는 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고단한 삶, 지혜로운 노인, 전통의 수호자 같은 서사를 작품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쉬가예프가 직접 보여주는 것은 한 사람의 얼굴이다. 오래 살아온 시간이 남긴 신체의 변화가 선으로 기록돼 있다.

바로 이 절제가 ‘아산바이 아타’를 강하게 만든다.

노인을 어떤 개념의 대표자로 만들기 전에 한 개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깊은 주름과 흰 수염, 모자와 옷깃, 정면을 비껴간 시선이 인물을 구체적인 존재로 남긴다. 이름이 제목으로 붙어 있다는 사실도 초상의 개별성을 강화한다.

쉬가예프의 후기 작품에서는 인물의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여성과 전사, 신화적 동물과 여러 기호가 등장하고 구체적인 한 사람의 초상보다 인간과 자연, 신화적 기억 사이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얼굴 역시 개인의 외모를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 원형적인 형상으로 이동한다.

‘아산바이 아타’에 후기의 신화적 의미를 미리 덧씌우면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1984년의 쉬가예프는 여전히 한 사람의 실제 얼굴을 가까이 바라보고 있었다. 주름의 방향과 수염의 결, 귀의 굴곡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적인 관찰만으로 작품이 끝나지도 않는다. 피부의 색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선은 묘사의 수단을 넘어 독립적인 리듬을 만든다. 배경의 수직선과 얼굴의 곡선, 수염의 긴 사선이 맞물리면서 실제 인물의 초상이 하나의 조형 구조로 바뀐다.

쉬가예프가 이후 현실의 외형을 넘어 추상과 신화적 기호로 이동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런 과정이 있었다. 현실을 충분히 바라본 뒤 형태를 줄이고, 색을 바꾸고, 선에 더 많은 역할을 맡겼다. 구체적인 대상을 버리기보다 관찰한 대상을 새로운 조형언어로 옮기는 시간이 먼저 축적됐다.

‘아산바이 아타’에서 그 변화는 얼굴 안에서 진행된다.

주름은 나이를 설명하는 동시에 선의 리듬이 되고, 수염은 인물의 특징이면서 넓은 밝은 면이 된다. 모자는 실제 복식이면서 화면 상단을 누르는 어두운 덩어리가 되고, 옷은 신체를 감싸는 동시에 아래쪽의 푸른 색면으로 변한다.

한 사람의 얼굴이 점차 선과 면, 색의 관계로 읽히기 시작한다.

쉬가예프가 훗날 신화와 원형을 다루게 됐을 때도 형상을 단순한 이야기의 삽화로 두지 않았다는 점은 초기 작업과 연결된다. 후기의 인물과 동물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설명하기 전에 작품 안에서 서로 마주하고 충돌하며 하나의 구조를 만든다. ‘아산바이 아타’에서는 관계의 범위가 아직 한 얼굴 내부에 집중돼 있다.

눈과 주름, 수염과 모자, 얼굴과 배경의 관계가 한 인물을 만든다. 세월은 별도의 상징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피부 위에 겹쳐진 선으로 남아 있다.

‘아산바이 아타’가 보여주는 쉬가예프의 초기 초상은 그래서 닮은 얼굴을 남기는 작업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구체적인 개인을 놓치지 않으면서 얼굴에 축적된 시간을 판화의 선으로 바꿨다. 현실의 인물을 관찰하는 눈과 현실을 조형적인 질서로 다시 만드는 손이 한 작품에서 만난다.

1984년의 쉬가예프는 아직 신화적 인물을 그리고 있지 않았다. 한 노인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다. 깊게 팬 주름을 따라 선을 새기고, 흰 수염을 남기고, 시선이 향하는 방향까지 붙잡았다.

훗날 인간의 형상이 신화와 기억의 영역으로 넓어지기 전, 쉬가예프의 작업에는 구체적인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아산바이 아타’는 바로 그 얼굴에 시간을 새긴 초상이다.

저작권자 © KtN (K trendy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