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을 설계하는 자, 정의를 규정한다
재판도 플랫폼化…AI는 ‘공정한 시스템’인가 ‘새로운 권력’인가

재판도 플랫폼化…AI는 ‘공정한 시스템’인가 ‘새로운 권력’인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재판도 플랫폼化…AI는 ‘공정한 시스템’인가 ‘새로운 권력’인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 법원이 사법 업무 전반에 인공지능(AI) 도입을 공식화했다. 2028년까지 160억 원을 투입해 사건 쟁점 정리, 행위시법 분석, 법률 검색과 재판 자료 요약 기능을 제공하는 AI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표면적으로는 재판 지연 해소와 업무 효율화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법원이 플랫폼 조직으로 진화하는 거대한 전환 전략이 숨어 있다.

플랫폼화된 법원, AI 판례 추천, 자동 생성된 쟁점 리스트. 과연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사법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시스템 권력이 등장하는 것일까.

사법정의의 본질적 조건, AI가 공정함을 설계할 수 있는가

AI가 재판을 지원한다는 것은 단순한 업무 자동화나 문서 처리의 문제를 넘어선다. AI가 법률 정보를 구조화하고 쟁점을 정리한다는 것은 곧 ‘무엇이 중요한 쟁점인가’를 기술이 먼저 규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법원의 이번 프로젝트는 재판 AI가 사건 개요를 요약하고, 행위시법(처벌 당시 법률 적용 기준)을 자동 제시하며, 화해·조정 가능성을 수치화해 보여주는 기능까지 목표로 삼고 있다.

문제는 이 ‘기준’이다. 모든 AI는 설계자가 결정한 데이터, 규칙,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한다. 결국 AI가 제안하는 체크리스트, 쟁점 목록, 대안 시나리오 등은 법률적 합리성을 담보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본질은 누군가 설계한 기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법적 해석은 원래 모호함과 해석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AI가 그 과정에 개입할수록 법적 판단의 맥락성과 인간적 고려가 배제되는 방향으로 시스템화될 가능성도 있다.

AI 사법정의의 역설, 기술적 진보가 오히려 법적 공정을 위협할 수 있다

AI 재판 시스템이 진정으로 사법정의를 실현하려면, 그 기초 설계 단계부터 공정성과 투명성이 절대적 조건이 되어야 한다. 합리적인 시스템은 공정성에서 출발한다.

현재 법원이 추진하는 재판 지원 AI는 사건 접수 후 자동으로 청구 내용, 공소장 요지, 법률 적용 가능성, 법령 구조 등을 분석해 법관에게 제시하도록 설계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법적 다툼의 핵심 논점이나 사회적 갈등의 민감한 부분들이 기술적으로 걸러지거나 단순화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AI 설계 기준이 불투명하거나 특정 입장·관점을 강화하도록 만들어질 경우다. 데이터 편향, 알고리즘의 블랙박스 문제, 법적 기준 설정의 자의성 등은 AI 시대 사법정의의 가장 깊은 역설로 남는다.

AI가 공정을 보장하려면 기준 자체를 만드는 거버넌스 구조가 먼저 정의로워야 한다. 기술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 절차라는 점에서, AI 사법 시스템은 법원 내부의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의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사법 플랫폼의 진화, 이제 법원의 공공 플랫폼 전략이 시험대에 오른다

법원의 AI 재판 지원 시스템은 사법 영역에서도 기술 플랫폼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산업 플랫폼 기업들이 ‘사용자 경험’을 재정의하며 시장 지배력을 확대했듯, 법원도 이제 ‘시민 경험’을 재구성하는 공공 플랫폼 경쟁에 진입한 셈이다.

문제는 기술 진보가 곧바로 사법정의 실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기술적 역량이 커질수록 법적 공정성, 투명성, 거버넌스 설계가 더 엄격하고 치밀하게 요구된다.

AI 사법정의 실험은 법원이 어떤 시스템 철학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법률 AI는 새로운 도구일 뿐이며, 진정한 사법정의는 그 도구의 기준을 설계하는 사람들의 공정함에서 출발한다.

법원은 지금 기술적 진화를 넘어 공공 플랫폼 조직으로서 거버넌스 혁신이라는 진짜 시험대에 올라섰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AI 시대 법원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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