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넘어, 시스템을 지킬 시간이다
[KtN 최기형기자] 대한민국 정치가 또 한 번 위기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대통령 파면 이후 출범한 권한대행 체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단순한 정쟁이나 권력 투쟁을 넘어 정치 시스템 전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사건이다. 헌법재판관 지명을 강행하고 외국 정상과의 외교 통화를 공개하며 차기 대선 도전설까지 흘러나오는 지금의 상황은 권한대행 체제의 본령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게 만들 정도로 헌정 질서를 흔들고 있다.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치란 권력을 행사하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을 관리하는 질서이고, 무엇보다 권력을 절제하는 규율이다. 정치는 시스템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가 보여주고 있는 풍경은 정치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권력이 얼마나 빠르게 사유화로 전락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번 사태가 남긴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결국 하나다. 왜 한국 정치 시스템은 위기 상황에서도 권력을 절제하지 못하는가. 답은 오래전부터 명확하다. 한국 대통령제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 집중 구조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고착화되면서 헌법이 보장한 견제와 균형은 형식적 장치로만 남았다. 인사권, 외교권, 국방권, 통상권, 예산권까지 거의 모든 권한이 대통령 개인에게 집중된 시스템은 평상시에는 통치 효율성을 발휘하지만, 대통령이 부재한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 시스템 전체가 권력 공백과 불안정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다.
문제는 이런 권력 집중 구조가 대통령 유고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데 있다. 한국 정치 시스템은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면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했지만, 권력 승계와 긴급 체제 관리에 대한 헌법적·법률적 설계를 방치했다. 권한대행 체제의 권한 범위를 명확하게 규율하지 않고, 긴급 상황에서도 대통령 권한을 그대로 대행할 수 있도록 방치한 결과, 권한대행 체제가 오히려 권력 사유화의 새로운 무대로 변질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냈다.
이번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가 보여준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 사례, 외교권 행사, 정치적 행보는 한국형 대통령제의 구조적 결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증명하는 현실적 사례다. 이는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 실패의 결과이며, 제도적 미비가 만들어낸 헌정 질서 붕괴의 전형이다.
선진 민주국가들은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권한대행 체제의 권한 범위를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부통령 승계 이후에도 주요 정책 결정에 대해 의회의 동의와 사법적 통제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며, 프랑스와 독일, 일본 역시 권한대행 체제를 임시적·관리적 권한에 국한하는 법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한국만이 권력 집중 구조를 유지하면서 권력 공백 상황에 대한 시스템 복원을 설계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이제 한국 정치가 답해야 할 질문은 분명해졌다. 무엇을 다시 세워야 하는가. 권력을 다시 세울 것인가. 아니면 시스템을 다시 세울 것인가. 정치는 권력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정치는 시스템을 복원하는 일이다. 정치 리더십은 권력을 행사하는 능력이 아니라 권력을 절제할 수 있는 자질이다.
권한대행 체제의 정치화 사태는 그동안 한국 정치가 미루고 외면해왔던 헌법적 과제를 우리 앞에 다시 던져주고 있다. 권한대행 체제의 권한 범위를 명문화하고, 외교·인사·대권 도전 등 핵심 권한 행사를 법적으로 금지하며, 국회 동의와 사법 심사를 강화하고, 무엇보다 대통령제 권력 구조를 분산하는 제도적 개혁이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다.
한국 정치 시스템이 복원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권력 집중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리더십을 세운다고 해서 위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을 복원하지 않고 정치의 미래는 없다.
정치는 권력을 지키는 예술이 아니다. 정치는 시스템을 지키는 과학이다. 한국 정치가 지금 지켜야 할 것은 권력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한국 정치가 마지막으로 회복해야 할 원칙이 그것이다. 권력을 넘어, 시스템을 지킬 시간이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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