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의 개혁’이라는 수식어의 허위

국민연금 보험료 13%·소득대체율 43%… 18년 만의 개혁안 국회 통과  사진=2025 03.20 KB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연금 보험료 13%·소득대체율 43%… 18년 만의 개혁안 국회 통과  사진=2025 03.20 KB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지난 18년간 반복된 실패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지만, 여전히 논의는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국가 보장 명문화와 같은 ‘모수 조정’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다. 연금개혁은 단지 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기술적 조정이 아니라, 국가의 사회계약 구조를 다시 짜는 정치의 문제다.

대한민국은 지금 내란 이후 헌정질서를 복원하는 대선 정국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정치가 여전히 권력 구조에만 집착하는 사이, 국민의 삶은 노후 불안, 소득 양극화, 사회적 신뢰 붕괴라는 구조적 위기 속에 방치되고 있다. 연금개혁은 이 모든 균열을 수렴하는 핵심 축이다.

‘18년 만의 개혁’이라는 수식어의 허위

이번 여야 합의로 마련된 개혁안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 출산·군복무 크레딧 확대,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 등으로 구성돼 있다. 표면적으로는 큰 진전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상 재정 안정성과 지급 가능성 확보에만 초점을 맞춘 기술적 합의다.

문제는 지금의 연금제도가 더 이상 ‘단일 제도’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직역연금, 퇴직연금이 각각 다르게 설계되어 있고, 연계도 되지 않는다. 소득재분배 기능은 약화됐고,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청년층과 비정규직, 여성들은 사실상 연금시스템 바깥에 존재한다.

즉, 현행 연금제도는 지속 가능성뿐 아니라 정의의 측면에서도 균열 상태에 놓여 있다. 소득 분포 구조와 노동시장 변화, 기대수명 증가를 감안하면,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를 바꾸는 개혁이 아니라 시스템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정치가 미루어온 사회계약의 재정비

연금개혁이 실패해온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재정 논리와 정치 리스크가 충돌했고, 세대 간 책임 분배의 윤리적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다. 정치권은 매번 ‘합의’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유예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청년층의 부담과 고령층의 불안으로 돌아왔다.

정치가 연금개혁을 단순한 행정과제로 접근할수록, 국민은 이를 세대 간 갈등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연금은 갈등의 사안이 아니라, 사회가 공유할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그것은 소득 재분배, 노동시장 구조, 세대 책임의 공정한 조율을 포함하는 정치적 설계의 영역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적 합의가 아니라 정치적 설득이다. 숫자 조정이 아니라 철학과 비전, 책임의 재구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연금개혁은 또 다른 지연의 반복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내란 이후 정치의 본질적 과제는 ‘삶의 재정비’

12.3 내란과 윤석열 정권의 붕괴는 헌정 위기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그 위기는 정권 교체로 끝나지 않는다. 헌정질서를 복원하는 진짜 과제는 정치가 국민의 삶을 설계하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는 것이다.

연금개혁은 그 전환의 출발점이다. 정치가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실질적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연금은 단지 고령층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청년에게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다. 공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설계하는 작업이야말로 오늘 정치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핵심 과제다.

권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일

6.3 대선은 단지 내란을 정리하는 정치적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다시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선택지다. 정치가 다시 설계자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떤 권력이 들어서도 국민의 불안은 줄어들지 않는다.

연금개혁은 그 기준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정치가 미래를 책임질 준비가 되었는지, 사회적 신뢰를 재구성할 수 있는 설계 역량을 갖추었는지. 이제 대선은 권력 교체를 넘어서 국가 운영의 본령에 정치가 복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국민 앞에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