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안전 시스템의 한계, 정치의 무관심이 만든 결과

전국 산불 사망자 27명…의성에서만 23명 숨져 사진=2025 03.27 희망브리지 홈페이지 갈무리( 산불 진화 작업 중인 소방대원(사진=경북소방본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전국 산불 사망자 27명…의성에서만 23명 숨져 사진=2025 03.27 희망브리지 홈페이지 갈무리( 산불 진화 작업 중인 소방대원(사진=경북소방본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 대한민국은 더 이상 재난에 놀라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반복되는 무능에 대한 학습효과다. 예고된 사고가 방치되고, 고질화된 행정 마비가 국민의 생명과 일상을 침식하고 있다. 정치가 무기력할수록 재난은 시스템의 붕괴를 확인시키는 무대가 된다. ‘재난국가’라는 표현은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라, 지금 이 땅의 일상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진단이 되고 있다.

싱크홀과 터널 붕괴, 예고된 참사의 반복

최근 광명시 신안산선 지하터널 붕괴 사고는 단순한 공사 현장 재해로 치부할 수 없다. 이미 2년 전 감사원은 해당 구간의 지반 상태가 매우 불량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경고는 있었지만, 대응은 없었다. 결국 노동자 한 명이 실종되었고, 수색은 닷새째를 넘기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 강동구, 애오개역, 삼성동 등 주요 도심 지역에서 싱크홀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강남·부산 등 도시철도 공사 현장의 사고는 단순한 우연의 연쇄가 아니다. 기후 위기, 노후화된 상하수관, 증가하는 지하 개발과 같은 구조적 리스크가 누적되어 있음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선제적 대응에 실패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보의 비공개다. 서울시는 ‘지반침하 안전지도’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민 불안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이는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행정 편의주의의 변형된 형태다. 사람의 생명보다 자산 가치가 우선되는 이 시스템에서, 안전은 정치적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

공공안전 시스템의 한계, 정치의 무관심이 만든 결과

재난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스템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정치의 문제다.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행정 시스템을 설계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며, 위험을 사전에 통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역할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 이후 반복된 재난의 양상은 국가의 기초적인 역할조차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 강릉·양산의 산불 피해까지, 유형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예방 실패, 초동 대응 부족, 구조 지연, 그리고 책임 회피로 이어지는 고질적 구조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정치권은 이 같은 재난을 감정의 문제로 다룰 뿐, 정책적 체계로 접근하지 않는다. 재난의 원인을 정치적으로 소비하고, 책임을 정파적으로 돌리는 방식은 또 다른 무책임의 반복을 낳는다. 정치가 시민의 안전에 무관심할 때, 시스템은 더는 기능하지 않는다.

“맨손에서 포크레인까지”…22m 강동 싱크홀, 실종자 15시간 수색 현장  사진=2025 03.25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맨손에서 포크레인까지”…22m 강동 싱크홀, 실종자 15시간 수색 현장  사진=2025 03.25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안전정보의 비공개와 기술 정보의 낙후성

문제는 단지 대응 체계에만 있지 않다. 대한민국은 재난 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지속적으로 실패해 왔다. 상수도관 지리정보시스템은 오류가 반복되고 있으며, 각종 공공 데이터는 부정확하거나 연계되지 않는다. 지하공간통합지도는 구축 중이라는 이름으로 수년째 미완성 상태다.

이러한 기술적 낙후성은 단지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인프라 정보의 투명성, 기술 혁신을 통한 통합 시스템 설계는 단순한 개발 예산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우선순위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정치가 안전을 국가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지 않는 한, 기술과 예산은 늘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생명보다 중요한 정치란 없다

정치란 국민의 삶을 다루는 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안전’이라는 최소한의 공공선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은 내란 이후의 정치 혼란, 권한대행 체제의 무기력, 불확실한 대선 국면 속에서 공공안전에 대한 국가의 의지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재난은 반복된다. 그러나 그 반복은 필연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무관심과 시스템 설계 실패가 낳은 결과다. 이번 대선은 단지 정권을 바꾸는 선택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기능을 복원할 수 있는 정치인지에 대한 검증이어야 한다.

정치가 다시 기능하려면, 안전을 정치의 핵심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재난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국가는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국민은 정치가 책임지는 안전을 원한다. 그 요구를 회피하는 정치에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