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베센트 체제의 압박: 선착순 협상의 함정

스콧 베센트의 경고와 ‘선착순 양보’ 압박. 사진=The White House X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스콧 베센트의 경고와 ‘선착순 양보’ 압박. 사진=The White House X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외교는 권력의 전시장이 아니라 국가의 품격이 집약된 공간이다. 대통령이 궐위된 정국에서 권한대행 체제가 독자적으로 대외 전략을 결정하려는 시도는, 국익을 담보로 한 정치의 사유화에 가깝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파면을 확정했다. 국회가 3월 7일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데 이어, 헌재가 파면을 선고하며 대통령직은 공식적으로 궐위됐다. 현재 국정 운영은 한덕수 국무총리의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된 상태지만, 이 체제가 추진하는 정책 방향은 ‘국정 관리’가 아닌 ‘정책 결정’에 가깝다.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미국과의 통상 협상 조기 타결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헌정 정통성이 결여된 행정부가 국가 전략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구조이며, 외교의 정당성과 지속 가능성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스콧 베센트의 경고와 ‘선착순 양보’ 압박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2025년 4월 1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베센트는 “가장 먼저 협상에 나서는 나라가 최고의 조건을 얻을 것”이라고 공개 발언하며 한국, 일본, 베트남을 직접 거론했다.

미국이 구사하는 전형적인 선착순 양보 전략이며, 무역·관세 재조정은 물론이고 안보, 에너지, 기술 공급망까지 포괄하는 일괄 협상 구상에 속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기조를 반영한 이 발언은, 한국이 조기에 응답할 경우 미국 중심의 블록에 경제 구조 전체가 종속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스콧 베센트 체제의 통상 전략은 지정학적 재편을 염두에 둔 압박형 외교이며, ‘속도’가 국익보다 우선되는 굴욕적 구도로 협상이 흘러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압박 국면에서, 대통령 궐위 상태에 있는 한국이 행정부 단독으로 협상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교 정당성의 붕괴, 대행 체제의 한계

대통령 궐위 이후의 권한대행 체제는 헌법상 국정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대외 전략을 수립할 권한은 갖고 있지 않다. 외교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민주적 위임을 통해 집행되는 국가의 총체적 결정이다.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 부총리는 윤석열 체제의 핵심 고위직이었으며, 지금의 협상은 이들이 외교적 권한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오인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국민적 위임을 받은 주권자가 아니며, 국회로부터도 실질적인 통제를 받고 있지 않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협상은 정치적 공백기 속에서 추진되는 ‘절차 없는 외교’이며, 이는 향후 정권이 교체될 경우 협상의 법적 효력 자체가 부정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전략 산업 구조에 미치는 협상 조기 타결의 파괴력

현재 미국이 요구하는 협상안에는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등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군이 집중되어 있다. 관세 재조정과 공급망 이전은 한국 산업에 구조적 타격을 가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무역 문제가 아닌 산업 주권의 문제다.

협상이 조기 타결될 경우, 고용 불안, 중소기업 도산, 수출 경쟁력 하락 등 후속 충격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더욱이 국회와의 논의 없이 비공개로 추진되고 있는 협상 구조는, 국민적 동의 없이 국익이 거래되고 있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통상 외교는 절차와 견제가 보장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굴욕 협상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지금의 국면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끌어올리는 위기적 지점에 와 있다.

협상 유예는 회피가 아니라 책임이다

대한민국은 정권 교체기의 이행 과정에 있다. 이 시점에서 추진되는 외교 협상은 향후 정권의 외교 전략과 배치될 수 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협상 주체의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올 수 있다.

한덕수 총리 체제는 협상의 명분을 마련할 수는 있으나, 결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장 정당한 선택은 협상의 유예이며, 차기 정부로의 이양이다. 국민의 선택을 거친 정권이 전략 산업과 외교 노선을 함께 설계해야만, 진정한 국익이 실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