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전에서 공급망·기후대응까지, 구조적 연계를 중심으로 떠오르는 신흥 파트너십
[KtN 최기형기자] 12일, 이재명 대통령과 베트남 르엉 끄엉 국가주석의 첫 공식 통화는 단순한 외교적 형식이 아닌, 산업·정책·사회 구조의 장기적 흐름을 반영하는 의미 있는 전환점이었다. 이 통화에서 언급된 고속철도와 원자력발전을 포함한 전략적 협력 의제는 단기적 사업 계약의 차원을 넘어, 아시아 내 산업 연계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구조적 동인을 지닌다.
아시아 산업연결망의 전환점으로서 고속철도·원전 협력
베트남 정부가 추진 중인 인프라 현대화와 도시화는 단순한 교통 확충이 아니라, 스마트시티 기반 제조 클러스터와 에너지 수요의 급증에 대응하는 구조적 필요에서 비롯된다. 한국 정부가 제안한 고속철도 및 원전 협력은 이 같은 베트남 산업 고도화 전략에 기술적·재정적 신뢰성을 보강하는 수단이다.
한국이 보유한 KTX 기반 고속철 설계·운영 능력과 APR1400 원전 기술은 단순 수출형 모델이 아닌, 현지 맞춤형 공동개발 및 기술 이전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일본이 추진한 ODA 연계형 인프라 외교와 비교할 때, 산업 생태계 전체를 이식하는 형태로 구조적으로 더 깊은 파급력을 지닌다.
한국 기업 진출과 제도적 뒷받침의 연계 구조
이번 통화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현지 진출 한국 기업의 원활한 활동 보장’은 기업 이익 보호 차원을 넘어, 국가 간 제도 연계를 통한 구조적 협력 모델 구축이라는 함의를 담는다.
한국 산업부와 외교부는 베트남 정부와의 고위급 협의체를 통해 관세·세제·인증 절차의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2023년 기준 베트남 내 등록 한국 기업 9,000여 개의 생산성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창업지원센터 협력 확대, 법률·노무 원스톱 서비스 등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중심의 ‘하방형 진출 구조’까지 포괄한다.
단순히 베트남 시장 진출을 넘어, 동남아 전역에 대한 산업 거점화를 위한 전략적 테스트베드로서 기능하고 있다. McKinsey는 2024년 'ASEAN's Infrastructure Race' 보고서에서 베트남을 “아시아의 차세대 제조허브이자 고도화된 외자 유치 메커니즘이 가능한 국가”로 평가했다.
공급망 다변화와 희토류 전략의 결합
전략협력의 핵심 중 하나는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이다. 베트남 북부에는 희토류를 포함한 비철금속 자원이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한국이 추진 중인 탈중국 전략과 구조적으로 맞물린다.
특히, 한국 산업부는 2026년까지 ‘희토류-배터리-수소’ 삼각형 산업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로 베트남과의 광물 공동조달·가공·표준인증 체계를 마련 중이다. 기존 미국, EU와의 광물안보파트너십(MSP)과 연계돼 한국의 ‘중간공급국’ 위상을 제고하는 전략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 기준을 충족하는 정제 기술 이전과 탄소배출 검증 체계를 포함할 경우, EU 역내시장에도 수출 가능한 구조가 완성된다.
방산·해양안보 협력과 동남아 안보 체계 내재화
베트남은 남중국해를 둘러싼 복잡한 안보 지형에 위치하며, 해양방위력 확충을 주요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한국은 방산 기업과 방위사업청을 중심으로 함정, 레이더, 통신체계 등에 대한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K-방산의 글로벌 수출 전략과 맞물린다.
과거 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 등과 달리 베트남과의 협력은 기술 판매에 그치지 않고, 정비·훈련·부품 공동생산 등으로 구조화되고 있다. 특히 해양경비력 강화를 통해 경제 수역 내 LNG 운송과 해양 풍력발전 프로젝트의 안정성이 확보되면서, 한국 기업의 사업 기반과 연계된 경제-안보 전략의 구조적 연결성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교육·문화 협력의 사회적 내재화 경로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미래세대 교류는 단순 인적 교류를 넘어서, 교육 커리큘럼과 문화콘텐츠 공동 개발 등 ‘사회 시스템 통합형 협력’의 시도라 할 수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베트남 현지 교과과정에 한국 IT 및 융합과학 콘텐츠를 포함시키는 프로그램을 확대 중이다.
양국 간 산업 협력의 기반을 인적 자원 교류로 확대하는 구조적 연결이자, 문화적 내재화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의 K-콘텐츠 수출이 문화적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교차성 기반 공동생산 모델’로 진화하려는 흐름과도 부합한다.
한국 사회와 산업에 주는 전략적 함의
한-베트남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구조적 진화는 한국 경제의 미래 축을 외연으로 확장하는 과제와 직결된다. 특히, 미국-중국 갈등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한국 기업은 공급망 재설계와 기술협력 다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베트남은 이 구조 전환의 허브이자, 산업·문화·기후 협력이 입체적으로 융합 가능한 파트너다.
베트남과의 협력은 단순히 ‘시장 개척’이 아니라, 한국 산업의 탄소중립 전환, 공급망 리질리언스, 첨단기술의 국제표준 정립 등 다층적 구조 전환에 필요한 실험장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이 협력을 단기적 외교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제도와 산업, 사회 구조까지 연결하는 총체적 모델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르엉 끄엉 주석 간의 통화는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의 시작점이 아니라, 아시아 산업지형의 구조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축소판이다. 전략 산업과 공급망, 교육·문화까지 포괄하는 협력은 단순한 양국 관계를 넘어, 한국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확장성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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