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전쟁과 통신사의 선택
[KtN 김동희기자] 2025년 현재, 싱가포르 음악 시장의 가장 치열한 전장은 무대 위가 아니라 플랫폼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음악 시장이 물리적 음반 중심에서 디지털 스트리밍 중심으로 재편된 지 오래지만, 싱가포르에서 그 전환은 훨씬 더 집요하고 정교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격전지 한복판에 K-POP은 어떤 방식으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가.
2024년 기준, 세계 음반 시장의 총매출은 296억 달러를 기록하며 10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갔다. 전체 매출의 69%를 차지한 스트리밍은 처음으로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아시아 전체의 성장률은 1.3%로 둔화되었고, 실물 음반 판매 감소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싱가포르는 예외였다. 팬데믹 기간 동안 싱가포르의 디지털 및 실물 음반 매출은 약 3,500억 원에서 4,200억 원 수준으로 16% 증가하며 탄탄한 디지털 소비 기반을 증명했다.
싱가포르 스트리밍 시장의 독보적 선두는 스포티파이(Spotify)다. 이 플랫폼은 전 세계 유료 구독자의 30% 이상을 보유한 글로벌 플레이어이자, 싱가포르 내에서는 '통신사 연계' 전략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공고히 하고 있다. 스포티파이는 현지 최대 통신사인 싱텔(Singtel)과 협업해, 프리미엄 요금제 할인과 함께 ‘데이터 무과금 스트리밍’이라는 결정적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 제휴 모델은 사용자 입장에서 콘텐츠 소비와 데이터 요금 부담 사이의 갈등을 제거하며, 스트리밍 이용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싱텔과 스포티파이의 연합은 단순한 기업 간 제휴를 넘어 플랫폼 생태계의 구조적 우위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로 경쟁 플랫폼인 유튜브 뮤직과 애플 뮤직은 콘텐츠 측면에서 매력적인 요소를 다수 보유하고 있음에도, 통신사 기반의 실사용자 전환에서는 스포티파이에 밀리고 있다. 특히 유튜브 뮤직은 풍부한 UGC 기반의 팬 콘텐츠를 강점으로 내세우지만, 모바일 데이터 과금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스트리밍 주도층인 10~20대 팬덤에 불리한 구조를 안고 있다.
애플 뮤직은 전체적으로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취하고 있지만, 통신사 번들링 없이 자사 기기 생태계에 의존하는 구독 유도 방식은 동남아 시장에서는 다소 제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통신사 파트너십의 유무가 곧 플랫폼 간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으며, 스포티파이와 싱텔의 결합은 K-POP 기획사에게 매우 중요한 전략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2025년 1월 신설된 ‘The Official Singapore Chart’는 이러한 시장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차트는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 유튜브 뮤직 등의 데이터를 통합해 순위를 집계하며, 유료 구독자의 스트리밍을 무료 이용자보다 높게 평가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단순한 스트리밍 수가 아닌 ‘경제적 가치 기반’의 순위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K-POP 기획사들에게 플랫폼 전략을 넘어 통신사 전략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차트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스트리밍을 독려하는 캠페인을 넘어서, 무료 사용자들을 프리미엄 구독자로 전환시키는 정교한 프로모션이 요구된다. 특히 싱텔–스포티파이의 결합 모델은 K-POP 팬덤을 대상으로 한 타깃 마케팅에서 가장 유효한 경로로 평가된다.
하이브, SM, JYP, YG 등 주요 K-POP 기획사들은 이제 플랫폼 선택이 곧 콘텐츠 전략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위버스가 ‘슈퍼팬 플랫폼’으로 독립 생태계를 구축한 것처럼, 글로벌 플랫폼 내 점유율 확대도 생존과 직결되는 전략이 되고 있다. 스포티파이를 통해 싱텔 사용자에게 특별 혜택을 제공하거나, 아티스트 컴백 시기에 맞춘 데이터 쿠폰 이벤트 등을 싱텔과 공동 기획하는 방식은 단순히 차트 순위 확보를 넘어 장기적 소비자 충성도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현재 ‘콘텐츠–통신–데이터 융합 전략’을 중장기 산업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이 전략은 국내 콘텐츠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플랫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단순한 콘텐츠 공급자에서 벗어나 ‘네트워크 연계형 기획자’로 진화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포함한다. 싱가포르에서 관찰되는 스트리밍–통신사의 결합 구조는 이러한 정책 방향과도 일치하며, 앞으로 정부 차원의 B2B 중개 및 통신사 협력 지원이 구체화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K-POP이 단순히 ‘무대 위’ 콘텐츠가 아닌 ‘네트워크 위’ 콘텐츠로 재정의되고 있는 지금, 싱가포르는 그 실험이 가장 빠르고 치열하게 진행되는 현장이다. 플랫폼 간의 경쟁, 통신사의 선택, 팬의 참여가 교차하는 이 공간에서, K-POP은 다시 한 번 그 전략적 진화를 시험받고 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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