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법 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 사진=추진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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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홍은희기자] 21일, 국회의사당 소통관에서 ‘보조금법 개정 및 예술인을 위한 지원금법 제정 추진위원회’가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예술 생태계의 현실을 반영한 입법 개편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날 회견은 문화정책 전반의 방향을 좌우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지명과 맞물리며, 기초예술계의 불안과 분노를 총체적으로 표출하는 장이 되었다.

2025년 7월 1일 발족한 추진위원회는 연극계를 중심으로 34인의 예술인들이 주도했으며, 단 20일 만에 1,426명의 연대 서명을 이끌어냈다. 이날 기자회견은 김재원 국회의원실 주관으로 진행되었고, 박정의 서울연극협회 회장, 박혜선 극단 사개탐사 대표, 선명주 극단 뱃속의 나비 대표, 선욱현 극작가가 대표 발표자로 나섰다. 남정숙 먹사니즘전국네트워크 문화예술특별위원회 위원장, 방지영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이사장, 안희철 한국극작가협회 이사장 등 5인도 공동 참석자로 참여해 목소리를 보탰다.

문체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둘러싼 기초예술계의 우려

기초예술계는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최휘영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현장의 중론에 따르면, 최휘영 후보자는 기초예술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부족하며, 예술 현장을 행정 효율성이라는 단일 프레임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강한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예술계는 특정 산업 논리에 기반한 보조금 운용 체계가 문화의 다양성과 창작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박혜선 극단 사개탐사 대표는 “예술은 산업이 아니며, 기초예술의 복잡성을 외면하는 행정이야말로 오늘의 위기를 만든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보조금법 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 사진=추진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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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가 아니라 현실로 창작하는 예술, 보조금 정산은 행정과의 전쟁

선명주 극단 뱃속의 나비 대표는 공연 창작을 실제로 진행하며 마주한 행정 현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출연비 산정부터 연습비 정산, 고용보험 처리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는 창작 이전에 행정 규정과 씨름해야 했고, 비현실적인 규제로 인해 창작 본연의 시간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소진하고 있었다.

현행 보조금법은 모든 예산 항목의 집행 비율을 획일적으로 요구하며, 창작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회계 기준을 강제하고 있다. 공연 제작자는 정산의 편의성을 고려해 소품이나 의상조차 기성품으로만 구매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창작의 고유성과 독창성은 행정 효율성 앞에 무력해졌다.

선명주 대표는 “보조금의 투명한 관리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창작의 실제와 괴리된 기준은 결국 전체 시스템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예술가 전체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는 구조 속에서, 더는 예술과 범죄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서 있을 수 없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보조금법 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 사진=추진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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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를 살리려던 기부금이 법정에선 ‘유용’으로… 보조금법의 올가미

선욱현 극작가는 (사)한국극작가협회 제5대 이사장 외 3인이 겪은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의 사례를 통해, 현행 보조금법이 예술인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극작가협회는 1997년부터 한국 유일의 희곡 전문지 『한국희곡』을 간행해왔으나, 2025년 봄호 97호를 마지막으로 발간이 중단됐다. 문제의 본질은 항목 제한이었다. 문화예술위원회는 사업 취지와 무관하게 출판 인쇄비 항목 사용을 금지했고, 편집위원들이 받은 원고료를 자발적으로 기부해 인쇄를 지속했으나, 법원은 이를 ‘항목 유용’으로 간주했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사건은, 2심에서 ‘처음부터 출판비로 쓰려 했던 것’이라는 추정만으로 벌금형으로 뒤집혔고, 대법원에서도 기각되며 형이 확정되었다. 해당 판결로 인해 극작가협회는 환수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해체 위기에 놓였으며, 피해자 4인에게는 협회의 구상권 청구까지 고려되는 비극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선욱현 극작가는 “예술가의 양심과 헌신이 국가의 법에 의해 유죄로 낙인 찍히는 현실은, 곧 대한민국이 문화예술국가임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보조금은 이제 예술 지원금이 아니라 언제든 올가미로 전락할 수 있는 구조”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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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예술을 위한 국가의 응답, 지금이 유일한 기회

추진위원회는 이날 회견을 통해 세 가지 입법·행정 요구를 명확히 밝혔다. 첫째, 예술현장의 현실과 괴리된 보조금법의 전면 개정. 둘째, 예술 창작의 특수성을 보장할 별도의 ‘예술인 지원금법’ 제정. 셋째, 행정 불합리로 피해를 입은 예술 단체 및 개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즉각적 구제다.

박정의 서울연극협회 회장은 “기초예술은 타이타닉의 연주자처럼 위기 속에서도 국민을 위로하는 존재”라고 말하며, “정책 결정자들은 예술을 수치와 지표로만 해석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는 국가의 미래이고, 기초예술은 그 기반을 이루는 축이다. 예술가들이 예산 항목보다 먼저 창작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행정은 창작의 적이 아니라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국가의 품격은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스템에서 시작된다. 오늘의 기자회견은 예술계의 탄원이 아니라, 민주사회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문화적 선언이다. 지금이야말로 국가가 응답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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