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숭배의 대상에서 미적 탐구의 본령으로 귀환한 이콘과 필사본이 전하는 시대적 화두
[KtN 박준식기자]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시각적 기록들은 대개 예술이라는 이름표를 달기 이전의 산물이었다. 박물관의 유리 벽 너머 혹은 갤러리의 정교한 조명 아래 놓인 고대의 유물들은 본래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를 담아내는 매개체이자 공동체의 질서를 지탱하는 성스러운 도구에 해당했다. 미적 감상의 대상이 되기 이전 이미지는 존재 그 자체로 신성과 연결되는 통로였으며 그 안에는 당대인들의 우주관과 영성적 고뇌가 응축되어 있었다. 현대의 미술 시장이 자산 가치와 브랜드 권력에 매몰되어 갈수록 이러한 시원적 이미지들이 전하는 묵직한 울림은 오히려 더 선명한 가치를 발휘한다. 누르 로얄 갤러리의 소장품 중에서도 특히 종교적 유산이 현대적 회화와 나란히 배치된 광경은 예술이 지닌 근원적 힘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이러한 미학적 재정립의 중심에는 십오 세기 동방 정교회의 카잔의 성모 이콘이 자리 잡고 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이 작품은 회화가 개인의 창의성을 뽐내는 수단이 되기 이전 이미지가 수행했던 성스러운 역할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템페라 기법으로 정교하게 그려진 성모의 형상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는 이로 하여금 내면의 경건함을 이끌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금박으로 장식된 배경은 지상의 빛이 아닌 천상의 영광을 상징하며 그 앞에 선 관람객은 현대 미술의 파격적인 시각 언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서적 환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콘이 갤러리라는 세속적 공간에 놓임으로써 획득하는 새로운 서사는 예술과 영성의 경계가 결코 단절된 것이 아님을 웅변한다.
종교적 유물이 예술적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은 십팔 세기 오토만 제국의 꾸란 필사본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스크 서체로 기록된 이 필사본은 문자 하나하나가 신을 향한 숭고한 찬미이자 고도의 예술적 성취라 할 수 있다. 이십사케이 금박 장식과 천연 안료를 사용한 세밀화는 당시 왕실이 예술에 쏟았던 정성과 자본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며 이는 현대의 그 어떤 화려한 설치 미술보다도 강력한 시각적 압도감을 선사한다. 꾸란 필사본은 정보 전달의 수단을 넘어 선의 율동과 색채의 조화를 통해 이슬람 미학의 정수를 공간에 투영한다. 감상의 대상이 아니었던 성전이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재맥락화될 때 관람객은 문자의 이면에 숨겨진 장인 정신과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꾸바아트센터 차효준 대표는 이미지가 지닌 영성적 에너지가 현대적 전시 공간과 만날 때 발생하는 인식의 전환에 주목한다. 차효준 대표는 예술이 세속화될수록 인류는 오히려 변치 않는 본질을 향한 갈증을 느끼게 마련이며 성스러운 유물들은 그 갈증을 채워주는 가장 확실한 미학적 정석이라 평가한다. 전시는 단순히 유물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지가 본래 지니고 있던 생명력을 현대인들의 감각에 맞게 재해석하여 전달하는 지적인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분석처럼 누르 로얄 갤러리는 종교적 유산을 단순히 고대의 흔적으로 치부하지 않고 현대 회화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유도함으로써 컬렉션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아트 마켓 리포트가 지적하듯 현대 미술 시장은 이제 자극적인 시각 효과보다는 역사적 정통성과 진정성을 갖춘 작품에 더욱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콘과 필사본 같은 종교 유물들이 다시금 주목받는 현상은 필연적이라 하겠다. 이는 불확실한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찾으려는 수집가들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이며 동시에 예술이 지닌 치유와 성찰의 기능을 회복하려는 시장의 자정 작용으로 읽힌다. 이미지가 예술이 되는 순간은 그 안에 담긴 서사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누르 로얄 갤러리의 전시는 이콘과 필사본을 통해 예술의 기원을 되짚어보는 동시에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성스러운 유물들이 현대적 조명 아래서 내뿜는 아우라는 어떤 화려한 수식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을 형성한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종교적 숭배의 대상을 넘어 인류가 오랜 시간 쌓아온 지혜와 미적 감각의 결합을 목도하게 된다. 이미지가 획득한 예술의 지위는 그 자체로 인류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며 이는 갤러리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가장 명징한 증거로 남는다.
예술과 영성의 결합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행위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십오 세기 성모의 온화한 미소와 십팔 세기 필사본의 정교한 필치는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와 오늘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미학적 화두를 던진다. 가격이라는 숫자가 시장을 지배할 때 이러한 유물들은 예술이 지닌 진정한 무게감이 어디에 있는지를 묵묵히 증명한다. 누르 로얄 갤러리가 구축한 성과 속의 공존은 미술 시장의 다음 국면을 주도할 가장 깊이 있는 기획이자 인류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을 보존하는 숭고한 기록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미지가 예술의 자리에 앉기까지 걸어온 긴 여정은 곧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해온 과정과 맞닿아 있다. 전시는 그 여정의 단면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잘라내어 보여주는 창구이며 그 안에서 발견되는 영성적 가치는 기술의 발달 속에서도 결코 퇴색되지 않을 예술의 본령이다. 이 지점에서 이미지는 비로소 완전한 예술의 지위를 획득하며 시장의 논리를 뛰어넘어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서 그 영속성을 확보한다. 누르 로얄 갤러리는 이러한 이미지의 변모 과정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중동을 넘어 세계 미술계의 새로운 미학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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