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 2009년 클래식 복원에서 710마력 DLS 터보까지
순정 재현보다 성능·소재·주문 사양 앞세우며 복원의 범위 확대
[KtN 김상기기자]1990년대 초 생산된 포르쉐 911 한 대가 작업장에 들어온다. 좌석과 대시보드가 먼저 철거되고, 차체 외판과 엔진·변속기·서스펜션이 차례로 분리된다. 바닥에는 강철 모노코크만 남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자동차 복원업체 싱어가 포르쉐 911을 다시 만드는 출발점이다. 남은 차체의 상태를 점검하고 세척·보강한 뒤 탄소섬유 외판과 새 동력계, 현대식 제동장치와 서스펜션을 장착한다. 실내와 차체 색상은 차량 소유자의 주문에 따라 정한다.
작업을 마친 차는 출고 당시의 964형과 외관부터 다르다. 차체는 1960~1980년대 911의 형태를 섞어 다시 만들고, 엔진 출력은 원래 사양을 넘어선다. 순정 부품이 있던 자리에는 탄소섬유와 마그네슘, 현대식 전자제어 장치가 들어간다.
싱어는 해당 작업을 ‘복원’이라고 부른다. 원래 차량의 강철 모노코크를 유지하고 소유자의 의뢰를 받아 작업한다는 이유에서다. 변경되는 부품과 성능을 보면 전통적인 복원보다 재설계에 가깝다. 2009년 자연흡기 공랭식 911에서 출발한 서비스는 2026년 최고출력 710마력의 DLS 터보까지 확대됐다.
17년 동안 달라진 것은 출력만이 아니다. 출고 상태를 재현하던 복원의 기준이 제작업체의 기술과 주문자의 취향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2009년 몬터레이에서 시작
싱어는 2009년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됐다. 같은 해 몬터레이 카 위크에서 첫 복원 차량을 공개했다. 작업 대상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생산된 964형 포르쉐 911이었다.
964형은 이전 세대 911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ABS와 파워스티어링, 자동으로 작동하는 뒤쪽 날개 등 당시의 신기술을 적용한 세대다. 포르쉐가 생산한 물량은 6만 대를 넘었다. 싱어는 비교적 확보 가능한 964형의 차체를 작업 기반으로 삼고, 완성 차량의 외관에는 그보다 앞선 공랭식 911의 디자인을 반영했다.
싱어의 초기 클래식 서비스는 자연흡기 공랭식 엔진을 사용한 쿠페에 집중했다. 소유자가 제공한 964형을 해체한 뒤 차체를 보강하고 탄소섬유 외판을 장착했다. 엔진은 3.8ℓ 또는 4.0ℓ로 구성하고, 변속기와 제동장치·서스펜션도 새 사양으로 바꿨다.
2014년에는 사륜구동 차량과 타르가 차체의 복원을 완료했다. 쿠페와 후륜구동 중심이던 작업 범위가 964형의 다른 차체와 구동 방식으로 넓어졌다.
초기부터 순정 복원과는 다른 길이었다. 포르쉐가 964형을 생산할 때 사용한 외판과 실내를 재현하지 않았다. 더 오래된 911의 외형을 가져오고 탄소섬유와 현대식 부품을 적용했다. 차량의 연식은 1990년대에 남았지만 완성된 형태는 어느 한 시기의 출고 사양과 일치하지 않았다.
싱어가 선택한 방식은 원형을 정확히 되살리는 것보다 여러 세대 911에서 선호되는 요소를 한 차에 모으는 작업이었다.
2018년, 복원에 모터스포츠 기술을 넣다
변화의 폭은 2018년 공개한 DLS에서 더 커졌다. DLS는 ‘다이내믹스 앤드 라이트웨이팅 스터디’의 약칭이다. 싱어는 윌리엄스 어드밴스드 엔지니어링과 함께 엔진과 차체, 공기역학과 서스펜션을 개발했다.
DLS 차량에는 4.0ℓ 자연흡기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이 들어갔다. 실린더당 4개의 밸브를 사용해 최고출력 500마력을 내고 분당 9000회 이상 회전했다. 마그네슘 6단 수동변속기와 중앙 잠금 방식 마그네슘 휠, 탄소세라믹 브레이크도 적용됐다.
앞쪽 서스펜션은 더블위시본 방식으로 바뀌었다. 기존 964형의 구조와 다른 설계다. 차체 외판과 내장재 곳곳에는 탄소섬유와 마그네슘, 티타늄을 사용해 무게를 줄였다.
DLS가 내세운 것은 964형의 출고 상태가 아니라 공랭식 911에서 끌어낼 수 있는 최대 성능이었다. 작업 기준도 복원 부품의 정확성보다 엔진 출력과 경량화, 공기역학과 섀시 성능으로 옮겨갔다.
2018년 이전의 클래식 서비스가 오래된 911의 형태와 도로 주행 성능을 조합했다면 DLS는 모터스포츠 기술을 적용한 개발 사업에 가까워졌다. 복원업체가 완성차 제조사나 경주차 개발사에서 다룰 법한 영역까지 들어간 것이다.
자연흡기 넘어 터보로
싱어는 2022년 클래식 터보 서비스를 공개했다. 자연흡기 엔진만 다루던 기존 서비스에서 벗어나 930형 911 터보의 외형과 성능을 재해석한 작업이다.
3.8ℓ 공랭식 수평대향 6기통 엔진에 터보차저 두 개와 수랭식 인터쿨러를 달았다. 출력은 주문에 따라 450마력 또는 510마력으로 구성했다. 6단 수동변속기와 후륜구동 방식을 유지하면서 트랙션 컨트롤과 전자식 차체자세제어 장치를 적용했다.
차체는 초기 911 터보의 넓은 뒤쪽 펜더와 웨일 테일 형태 날개를 반영했다. 탄소섬유 외판과 탄소세라믹 브레이크, 현대식 서스펜션도 들어갔다. 순정 930형을 복원한 차가 아니라 964형 차체 위에 930형의 외관과 현대식 터보 기술을 결합한 차량이다.
2022년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는 싱어의 세 서비스가 나란히 등장했다. 클래식과 DLS, 클래식 터보였다. 자연흡기 도로용 복원차에서 고회전 경량 모델과 터보 그랜드투어러까지 하나의 964형 차체에서 갈라진 결과였다.
같은 해 싱어는 캘리포니아 토런스의 새 본사로 클래식 서비스 작업장을 옮겼다. DLS 작업은 영국 옥스퍼드셔에서 진행했다. 서비스 종류에 따라 미국과 영국에서 별도의 개발·제작 체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23년 DLS 터보, 2026년 첫 고객 차량
싱어는 2023년 DLS 터보 서비스를 발표했다. DLS에서 개발한 고회전 엔진에 터보차저를 더하고 1970년대 포르쉐 934.5 경주차의 외형을 반영한 서비스다.
첫 고객 차량 ‘소서러’는 2026년 1월 공개됐다. 964형 엔진을 바탕으로 배기량을 3.8ℓ로 늘리고 실린더당 4개의 밸브와 가변 터빈 터보차저 두 개를 적용했다. 실린더 헤드는 수랭식, 실린더는 공랭식으로 구성했다.
최고출력은 710마력, 최고 회전수는 분당 9000회다. 6단 수동변속기와 후륜구동 방식을 사용하면서 ABS와 트랙션 컨트롤, 전자식 차체자세제어 장치, 주행 모드를 넣었다. DLS 터보 작업은 싱어의 영국 시설에서 진행된다.
2009년 첫 차량과 비교하면 기반이 같은 964형이라는 사실을 제외한 대부분이 달라졌다. 자연흡기 엔진은 트윈터보로, 도로 중심의 서스펜션은 경주 기술을 반영한 구조로 바뀌었다. 탄소섬유 외판과 마그네슘 부품, 전자제어 장치도 늘었다.
복원이라는 이름 아래 허용되는 변경 범위가 17년 동안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300번째 클래식 복원, 600명 규모로
싱어는 2024년 2월 클래식 서비스를 통한 300번째 복원 차량을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1990년형 911 타르가를 기반으로 탄소섬유 차체와 4.0ℓ 자연흡기 엔진, 탄소세라믹 브레이크, 티타늄 배기장치를 적용한 차량이었다.
당시 싱어가 밝힌 미국과 영국의 고용 인원은 600명 이상이었다. 2009년 첫 차를 공개한 업체가 차체와 엔진, 실내를 개발하고 두 나라에서 작업장을 운영하는 조직으로 커졌다.
300대는 클래식 서비스에 한정된 수치다. DLS와 클래식 터보 등 다른 서비스를 포함한 전체 완성 대수는 해당 발표에서 제시되지 않았다. 연도별 매출과 평균 작업 가격, 전체 고객 수도 공개 자료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확인되는 변화는 사업의 분화다. 싱어는 하나의 클래식 복원 사양을 반복하지 않았다. 자연흡기 클래식과 고회전 DLS, 클래식 터보와 DLS 터보를 별도 서비스로 나누고, 고객이 원하는 성능과 사용 목적에 따라 선택하도록 했다.
복원업체의 이름도 차량 가치의 일부가 됐다. 2025년 싱어는 RM소더비를 자사 차량의 중고시장 거래를 위한 우선 협력사로 지정했다. 완성 차량의 제작뿐 아니라 이후 거래를 관리하는 단계로 사업 범위를 넓힌 조치다.
2025년부터 다시 넓어진 차체 선택
싱어는 2025년 카레라 쿠페 서비스를 내놓았다. 1980년대 자연흡기 카레라에 터보의 넓은 차체를 선택할 수 있었던 사양에서 외형을 가져왔다.
4.0ℓ 자연흡기 엔진은 코스워스의 엔지니어링을 반영해 420마력을 낸다. 싱어의 자연흡기 엔진 가운데 처음으로 가변 밸브 타이밍을 적용했고, 수랭식 실린더 헤드와 공랭식 실린더를 조합했다. 차체 보강에는 레드불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스의 자문이 반영됐다.
싱어가 발표한 카레라 쿠페의 주문 한도는 100대다. 2026년 공개된 카레라 카브리올레는 75대다. 기반은 여전히 소유자가 제공하는 964형이지만, 외형은 1980년대 G 모델 카레라를 참고했다.
싱어가 재현하는 대상과 실제 기반 차량의 세대가 갈리는 구조다. 964형 모노코크 위에 F 모델과 G 모델, 930 터보와 934.5 경주차의 형상을 선택적으로 올린다. 차량 한 대가 특정 연식의 복원품이라기보다 911 역사에서 고른 요소를 조합한 결과로 바뀌었다.
루이비통 협업이 놓인 자리
2026년 8월 공개된 루이비통 협업은 갑자기 등장한 외부 장식이 아니다. 고객의 주문에 따라 엔진과 차체, 색상과 실내를 바꿔 온 싱어의 방식이 패션·가죽제품·시계로 확장된 사례다.
사프란색 클래식 쿠페에는 4.0ℓ 자연흡기 엔진과 탄소섬유 차체를 적용하고 루이비통의 가죽과 문양, 탕부르 계기판을 넣었다. 클래식 터보 카브리올레에는 510마력 트윈터보 엔진과 모터보트에서 가져온 목재, 맞춤 여행가방을 결합했다.
2009년 첫 복원 차량에서 중심을 이룬 것은 공랭식 911의 외형과 주행 성능이었다. 2018년 DLS는 경량화와 고회전 엔진을 더했고, 2022년 클래식 터보는 과급 엔진을 끌어들였다. 2026년 루이비통 협업에서는 운전복과 시계, 가방까지 주문 범위에 들어왔다.
작업 대상이 엔진과 차체에서 소유자의 생활용품으로 넓어진 셈이다.
복원이라는 이름 아래 넓어진 변경 범위
싱어의 17년은 레스토모드가 전통적인 복원과 다른 산업으로 분화한 과정과 겹친다. 처음에는 오래된 911의 외형과 현대식 주행 성능을 결합했다. 이후 고회전 엔진과 경량 소재, 터보차저와 전자제어 장치를 차례로 도입했다. 최근에는 다른 산업의 브랜드와 제작 기술까지 한 차량에 넣고 있다.
기반 차량은 계속 964형으로 남았다. 완성 차량이 참고하는 시대와 차종은 F 모델과 G 모델, 930 터보와 934.5 경주차로 넓어졌다. 엔진 출력도 클래식 서비스의 390마력에서 DLS 터보의 710마력까지 올라갔다.
차량의 정체성을 연식과 순정 부품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 이유다. 등록상 출발점은 30년 이상 된 964형이지만, 완성차의 외판과 동력계, 주행장치와 실내는 최근에 설계·제작됐다.
싱어의 방식은 오래된 911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다. 대신 원래 차체를 바탕으로 여러 세대의 디자인과 현대 기술, 소유자의 취향을 조합한다. 복원의 목적도 과거 상태의 회복에서 새로운 성능과 희소성의 제작으로 이동했다.
남은 쟁점은 시장의 평가다. 순정 부품을 유지한 964형과 대규모 변경을 거친 싱어 차량은 같은 기준으로 값을 매기기 어렵다. 제작업체의 이름과 주문 사양, 기술 개발 비용이 실제 거래에서 얼마나 인정되는지는 공개 가격이 아니라 경매와 중고 거래 자료로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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