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컬러 위에 핑크·실버·그린빛 겹쳐 색의 깊이 형성…광택은 반사의 밝기와 선명도로 평가, 같은 품종에서도 가격 차이
[KtN 박준식기자]흰 진주 한 알에도 색은 한 겹이 아니다. 바탕이 되는 흰색이나 크림색 위로 핑크빛이 얹히기도 하고, 보는 각도에 따라 은은한 녹색이나 무지갯빛이 나타나기도 한다. 미국보석학회(GIA)는 진주의 색을 보디컬러(bodycolor), 오버톤(overtone), 오리엔트(orient)로 나눠 설명한다. 모든 진주에는 기본색이 있지만 오버톤과 오리엔트는 일부 진주에서만 나타난다. 같은 크기와 형태를 가진 진주라도 색의 깊이와 광택에서 차이가 생기는 배경이다.
보디컬러는 진주 전체를 지배하는 기본색이다. 화이트와 크림이 가장 익숙하지만 진주의 색 범위는 훨씬 넓다. 검정과 회색, 실버, 노랑, 오렌지, 핑크, 라벤더, 녹색, 파랑 계열까지 나타난다. 진주를 만드는 조개의 종류와 진주층 특성이 달라지면서 품종별 색의 범위도 달라진다. 아코야진주는 화이트와 크림 계열이 대표적이고, 남양진주는 화이트·실버와 골드, 타히티진주는 회색과 짙은 계열의 기본색을 중심으로 폭넓은 색을 형성한다. 담수진주에서는 화이트와 함께 핑크·피치·라벤더 계열도 자연적으로 나타난다.
오버톤은 기본색 위에 얇게 겹치는 또 하나의 색이다. 흰색 진주 위로 핑크가 감돌거나, 짙은 진주 위에서 녹색이나 보라색이 느껴지는 방식이다. 보디컬러 자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반투명한 색이 위에 더해지면서 전체 인상이 달라진다. 같은 화이트 계열이라도 핑크빛이 강한 진주와 실버에 가까운 진주는 피부에 올렸을 때 색감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오리엔트는 오버톤보다 복합적이다. 진주 표면 또는 바로 아래에서 두 가지 이상의 색이 무지갯빛처럼 움직이는 효과를 말한다. 진주를 돌리거나 빛의 방향이 달라질 때 색이 미세하게 바뀌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주층을 이루는 미세한 층에서 빛이 반사되고 간섭하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진주층의 두께와 배열 상태에 따라 나타나는 정도도 달라진다. 비눗방울 표면처럼 한 가지 색으로 고정되지 않고 여러 색이 겹쳐 움직이는 광학적 특성이다.
색과 함께 봐야 할 요소가 광택(luster)이다. 광택은 단순히 표면이 반짝이는 정도를 뜻하지 않는다. 진주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밝기와 선명도, 진주층에서 올라오는 빛이 함께 만들어낸다. GIA는 광택을 Excellent, Very Good, Good, Fair, Poor로 구분한다. 높은 광택에서는 반사가 밝고 경계가 선명하고, 광택이 낮아질수록 반사가 흐릿하고 퍼진다. 7가지 진주 가치 요소 가운데 광택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하는 이유도 진주 특유의 시각적 깊이가 광택에서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광택을 비교할 때는 같은 종류의 진주끼리 보는 것이 정확하다. 아코야의 선명하고 또렷한 반사와 남양진주의 부드러운 새틴 계열 광택을 하나의 외형으로 맞춰 평가할 수는 없다. 진주 종류에 따라 본래 나타나는 광택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GIA도 품종별 고유한 광택 범위가 있어 한 종류에서 Excellent로 평가될 만한 광택이 다른 종류에서는 같은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흰 진주를 고를 때도 ‘더 하얀 것’만 찾으면 품질 차이를 놓치기 쉽다. 화이트 보디컬러 위에 어떤 오버톤이 올라오는지, 반사가 얼마나 또렷한지, 빛을 움직였을 때 오리엔트가 나타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핑크빛이나 크림빛이 돈다는 사실 자체가 품질의 높고 낮음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공급량과 시장의 색 선호, 광택과 표면 상태, 크기와 형태가 함께 작용해 가격이 형성된다. 특정 색의 고품질 진주가 부족하면서 수요가 몰릴 경우 가격이 높아질 수 있고, 패션과 문화에 따라 선호 색도 바뀐다.
타히티진주에서는 색의 층이 한층 복잡해진다. 흔히 ‘흑진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검정 한 가지로 구성되지 않는다. 짙은 회색이나 실버 계열의 보디컬러 위로 녹색과 분홍, 보라 등 다른 색이 올라올 수 있다. GIA가 소개한 프렌치폴리네시아산 진주에서도 짙은 회색에서 검정에 이르는 기본색 위에 핑크와 그린 오리엔트, 녹색 오버톤이 나타난다. 타히티진주의 가격을 ‘검을수록 비싸다’는 방식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남양진주와 담수진주도 색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기 어렵다. 골든 남양진주는 옅은 샴페인 계열부터 채도가 높은 골드까지 폭이 있고, 화이트 남양진주도 실버 계열의 미묘한 차이가 나타난다. 담수진주는 화이트와 핑크, 피치, 라벤더 등 자연색의 범위가 넓고 품질이 높은 제품에서는 오버톤과 오리엔트도 나타날 수 있다. 최근 양식기술이 발전하면서 담수진주의 크기와 원형도, 광택이 높아진 제품이 공급되면서 색만으로 담수와 해수진주의 품질을 나누기도 어려워졌다.
제이아이티앤코(JIT&CO)·크리스펄 임효민 대표는 진주를 선별할 때 표면의 흠을 확인한 뒤 안쪽에서 올라오는 색과 빛이 모이는 정도를 함께 살핀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상처도 보지만 안에 들어가는 컬러도 보고, 몰리는 빛도 보고”라며 오리엔트까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한 방향에서 기본색만 보는 대신 진주를 움직이며 표면과 내부에서 달라지는 빛을 함께 보는 방식이다.
목걸이에서는 한 알의 색보다 전체의 균형이 중요해진다. 화이트 진주 수십 알을 연결할 경우 각각의 보디컬러가 조금씩 다르고 오버톤과 광택에도 차이가 날 수 있다. 같은 크기만 골라서는 한 줄이 고르게 이어지지 않는다. 색과 광택, 형태를 함께 맞추는 매칭 작업이 필요하다. 반대로 최근 주얼리에서는 색과 크기를 의도적으로 달리하는 디자인도 사용된다. 어느 경우든 우연히 뒤섞인 것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은 완제품에서 차이가 난다.
매장에서 진주를 비교할 때 조명도 색의 인상을 바꿀 수 있다. 강한 조명 아래에서는 반사가 강조되고, 주변 색이 진주 표면에 비치면서 본래의 오버톤과 혼동될 수도 있다. 고가 진주일수록 한 방향에서만 보는 것보다 방향을 달리해 광택의 선명도와 표면 상태를 함께 살피는 편이 낫다. 감별 단계에서는 기본색과 오버톤, 오리엔트를 나눠 기록하고 광택은 별도의 가치 요소로 평가한다. 색과 광택을 하나의 ‘예쁜 빛’으로 묶지 않는 이유다.
흰색과 둥근 형태는 오랫동안 진주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지만 한 알의 가치는 색 이름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화이트라는 기본색 위에 핑크나 실버 계열의 오버톤이 얹히고, 진주층에서는 오리엔트가 나타날 수 있다. 여기에 반사의 밝기와 선명도를 결정하는 광택이 더해진다. 같은 흰 진주 사이에서 가격과 인상을 갈라놓는 것은 ‘얼마나 하얀가’보다 빛이 진주층을 지나 어떻게 돌아오는가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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