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바탕과 둥근 밝음 사이로 뻗은 가지…정지된 존재 안에 쌓인 갈망
나비가 등장하기 직전, 외부의 빛에서 내면의 빛으로 옮겨가던 2006년
[KtN 박준식기자]거칠게 솟은 나무 한 그루가 왼쪽 아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줄기는 곧게 서지 않고 오른쪽으로 몸을 틀며 위로 뻗는다. 여러 갈래의 가지 끝은 작품 상단의 둥근 밝은 형상을 향한다. 땅을 떠날 수 없는 나무와 닿을 수 없는 밝음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남아 있다. 나비킴(Navikim·김현정) 작가의 2006년작 ‘기다림(Waiting)’은 바로 그 거리를 작품의 긴장으로 삼는다.
작품 전체를 채우는 색은 황금빛에 가깝다. 황토와 갈색, 주황이 겹쳐진 바탕에는 종이의 결이 그대로 살아 있고, 아크릴과 닥종이가 만들어낸 요철은 빛을 한 방향으로 고르게 반사하지 않는다.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미세하게 갈리면서 평면의 색이 아니라 표면 자체에서 깊이가 생긴다.
왼쪽의 나무는 바탕보다 훨씬 짙다. 갈색과 흑갈색이 겹친 줄기는 뿌리에서 시작해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고, 굵은 가지는 오른쪽 위를 향해 손을 내미는 듯 이어진다. 나무의 형태는 완전히 사실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줄기와 가지 사이에는 종이와 색이 뒤엉킨 흔적이 남아 있어, 생명체의 외형보다 안쪽에서 밀려 올라오는 힘이 먼저 전해진다.
오른쪽 상단의 둥근 형상은 작품에서 가장 밝은 영역이다. 주변의 짙은 황금색과 구별되는 옅은 크림빛이 원을 이루며 놓이고, 가장자리에서는 바탕색과 자연스럽게 섞인다. 날카로운 윤곽선으로 고정된 원이 아니라 주변 색 속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밝음에 가깝다.
나무와 둥근 밝음은 서로 마주보지만 직접 닿지 않는다. 나뭇가지는 원의 가장자리까지 다가가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남긴다. ‘기다림’이라는 제목은 이 간격에서 더욱 구체적인 의미를 얻는다. 기다림은 정지와 같은 말이 아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방향은 존재하고, 나무의 몸 전체는 이미 한쪽을 향해 기울어 있다.
김현정 작가의 작업에서 이 나무는 이후 등장하는 나비와 대비되는 존재다. ‘기다림’에서는 자아가 현실에 뿌리내린 고정된 존재로 나타나지만, 같은 해 제작된 ‘첫 만남(First Meeting)’에 이르면 날개를 가진 나비가 들어온다. 한곳에 머무는 나무에서 공중으로 이동할 수 있는 생명체로 형상이 바뀌면서 작업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두 작품 사이에는 단순한 소재 변화 이상의 흐름이 있다.
‘기다림’의 나무는 위쪽의 빛을 바라본다. ‘첫 만남’의 나비는 날개를 얻는다. 이후 나비는 자유와 평화, 초월을 향한 감각을 품으며 김 작가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는 형상으로 자리 잡는다.
‘기다림’의 밝음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작가의 작업은 나비보다 먼저 빛에서 출발했다. 프라하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빛을 경험한 뒤 그 빛을 회화로 옮기기 시작했고, 이후 달빛과 나비로 작업이 이어졌다. 작가 스스로도 오랜 작업을 되짚으며 나비가 시작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앞서 빛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다림’에는 아직 나비가 없다. LED도 없고, 후기 ‘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서 나타나는 중심 광원이나 방사형 구조도 없다. 대신 한 그루 나무와 하나의 밝은 원, 황금빛으로 가득 찬 표면만으로 빛을 향한 방향을 만든다.
장지 위에 더해진 닥종이는 단순한 바탕 재료에 머물지 않는다. 울퉁불퉁한 표면이 줄기와 땅, 주변 공간을 하나의 질감으로 묶고, 아크릴의 색은 그 굴곡을 따라 밝기와 농도를 달리한다. 평평한 화면에 색을 올리는 방식보다 재료의 두께와 표면을 이용해 빛의 깊이를 만들려는 시도가 이 시기부터 시작됐다. 이후 김현정 작가가 투명 재료와 플렉시글라스, LED까지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의 앞쪽에 이 물성 실험이 자리한다.
황금빛 역시 단순한 배경색으로 머물지 않는다. 화면 대부분을 같은 계열의 색으로 채우면서 나무의 짙은 갈색과 원의 옅은 밝음을 사이에 놓는다. 색의 대비를 크게 벌리기보다 한 계열 안에서 명도와 질감의 차이를 쌓아 공간을 만든다. 밝은 원 주변에는 황금색이 번지듯 이어지고,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갈색과 흙빛이 짙어진다.
밝음은 위에 있고, 뿌리는 아래에 있다.
수직적인 관계가 작품의 구조를 단순하게 보이게 하지만 나무의 방향은 완전히 수직이 아니다. 줄기가 비틀리고 가지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면서 안정된 축이 흔들린다. 뿌리는 붙잡고, 가지는 벗어나려 한다. ‘기다림’에 머무름과 이동의 감각이 함께 남는 이유다.
이후 ‘첫 만남’에서 등장한 나비는 이 갈망에 날개를 부여한다. ‘날으는 빛(Flying Light)’에서는 빛 자체가 적극적인 조형 재료로 들어오고, ‘무한(Infinity)’과 ‘인터스텔라’에서는 실제 광원이 작품 내부로 이동한다. 김현정 작가의 작업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빛에서 내부에서 발생하는 빛으로 이동하는 긴 흐름의 앞부분에 ‘기다림’이 놓여 있다.
김 작가가 이후 정리한 ‘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 역시 단순한 밝기를 뜻하지 않는다. 외부의 광휘를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색과 재료 속에서 내면의 밝음이 드러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김 작가는 이를 생명성과 운동성을 지닌 밝음으로 확장했다.
‘기다림’에서는 그 개념이 아직 이름을 얻기 전이다. 하지만 한곳에 뿌리내린 나무와 멀리 놓인 밝음 사이에는 이후 작업에서 반복될 관계가 이미 자리한다. 빛은 단순히 비추는 대상이 아니라 향하고 싶은 곳이며, 나무는 그 빛을 바라보는 존재다.
2006년 ‘기다림’과 같은 해의 ‘첫 만남’을 연이어 놓으면 김현정 작가의 변화가 선명해진다. 하나는 뿌리를 내린 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날개를 가진 나비다. 하나는 빛을 바라보고, 다른 하나는 움직일 수 있다.
‘기다림’의 나무는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신 가지 끝마다 방향을 품고 있다. 황금빛 바탕 너머 둥근 밝음을 향해 뻗은 가지는 이후 나비의 날개로 바뀌고, 다시 실제 빛을 품은 형상으로 확장된다. 김현정 작가의 ‘빛의 나비’가 날아오르기 전, 먼저 작품 안에 존재했던 것은 빛을 향해 오래 기울어진 한 그루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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